스펄젼의 Q.T 2352

무궁한 사랑으로 지금 사랑하심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예레미야 31:3] 주 예수님은 때때로 그의 교회에 대고 자신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교회가 듣지 않는 데서 은밀하게 그 말을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의 면전에 대고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쁘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주께서 늘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지혜롭게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언제 그의 사랑을 숨기고 또 언제 그의 사랑을 나타내야 할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 주님께서 그의 사랑을 은밀히 숨기지 않고 그의 백성들 영혼 속에 분명히 나타내실 때가 있습니다”(어스킨 목사의 설교에서). 성령은 종종 아주 은혜로운 방법으로 우리 영혼에 예수님의 사랑을 기꺼이 증거하십니..

스펄젼의 Q.T 2021.12.20

일의 작정은 하나님에게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16:33] 일을 작정하는 것이 여호와께 있다면 우리의 전인생은 누가 결정하겠습니까? 제비 뽑는 것 같은 단순한 행위마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면, 우리의 전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특히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참새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30)고 말씀하신 걸 보면 이것은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질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염려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인답게 인내하는 가운데 침착하고 명랑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염려하면 ..

스펄젼의 Q.T 2021.12.20

마음을 찢어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요엘 2:13] 옷을 찢는다든가 종교적 감정을 나타내는 다른 외적 표시들은 나타내기는 쉬운 반면 위선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참회개는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훨씬 적게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아주 복잡하고 자세하게 규정된 의식들을 준수하려 듭니다. 이런 것들은 육을 기쁘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기독교는 사람을 너무 겸손하게 만들고 그 마음의 동기까지 철저히 조사하기 때문에 세상적인 인간의 취향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겉이 화려해 보이고 세상적이며 얄팍한 것을 선호합니다. 외적인 종교 의식을 준수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만족감을 줍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자만심을 부풀려 주며, 자기 의를 세워 ..

스펄젼의 Q.T 2021.12.18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예레미야 2:2] 그리스도에게는 그의 교회를 생각하고 그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몹시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에 유념합시다. 새가 그 둥지로 자주 돌아오고 여행자가 서둘러 자기 집으로 돌아오듯, 사람의 마음도 자신이 택한 대상을 계속 추구하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무리 쳐다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항상 보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 전부터 “그는 인생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생각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자신의 택자들을 택하게 될 그때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의 예지 속에서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는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스펄젼의 Q.T 2021.12.17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28] 기독교는 “오라”고 온유하게 부르는 반면 유대교의 율법은 이렇게 거칠게 말합니다. “가서 네 걸음에 유의하며 네가 걸어야 할 길을 잘 걸어라. 계명을 어기면 멸망할 것이요 계명을 지키면 살리라.” 이처럼 율법은 공포를 자아냅니다. 사람들은 채찍 같은 그 공포에 밀려 율법 앞으로 갑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랑의 줄로 사람을 이끕니다. 예수님은 항상 그의 양들 앞서 가시며 온유하게 “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계속 인도해 주시는 선한 목자십니다. 율법은 사람을 쫓아버리지만 은혜는 사람을 끌어들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간격을 벌어지게 하지만 복음은 끔찍하게 벌어진 그 틈 사이에 죄인이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놓아 줍니다. 여러분이 처음으로 거듭난 순간..

스펄젼의 Q.T 2021.12.17

룻과 오르바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룻기 1:14] 오르바와 룻, 두 사람 다 나오미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 할 때 둘 다 나오미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시험의 때가 왔습니다. 나오미는 그 두 사람을 생각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암울한 현실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좀더 편하고 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모압 친구들에게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두 사람 다 여호와의 백성들과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좀더 생각해 보더니 슬프다는 듯이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며 작별 인사를 하고는 시모와, 시모의 백성과 시모의 하나님을 뒤로 한 채 우상을 숭배하는 자기 친구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

스펄젼의 Q.T 2021.12.15

힘을 얻고 더 얻어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시편 84: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오늘의 말씀은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는데, 어느 번역이든 그 속에는 진보 또는 발달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묵상을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번역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즉 저희가 점점더 강건해졌다는 뜻입니다. 걸을 때 보면 처음에는 힘이 있다가 나중에는 힘이 빠지는 게 보통입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여 질서 있게 나아가지만 가다가 길이 험해지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길 옆에 앉아 쉬다가 다시 괴로운 듯이 곤한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새 은혜를 받아 순례길을 가는 성도는 여러 해 동안 애쓰고 싸우며 여행한 후에도 맨 처음 출발했을 때처럼 원기..

스펄젼의 Q.T 2021.12.14

소금 사용

“소금은 정수 없이 하라.” [에스라 7:22] 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번제에 사용되었는데, 그 보존 및 정화시키는 특성 때문에 우리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도 상징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이 제사장 에스라에게 소금을 줄 때 그 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만왕의 왕께서 그의 왕 같은 제사장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실 때도 주님 편에서는 절대 그 공급을 중단하시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종종 제한을 받는 것이지 여호와 안에서는 전혀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만나를 많이 거두기로 작정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많이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곳 주민들이 빵을 달아 먹거..

스펄젼의 Q.T 2021.12.13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하박국 3:6] 하나님은 한번 행하셨던 일을 또다시 행하십니다. 사람의 길은 변화 무쌍하지만 하나님의 길은 영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진리의 말씀인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주의 행하심은 지혜롭게 심사 숙고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사에 따라 모든 일을 정하십니다. 인간은 급한 열정이나 두려움에 의해 행동할 때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회와 변경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에 놀라서 행하시는 법이 없으며 일어난 일 중 미리 예견치 않으셨던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행하심은 또한 불변하시는 그의 성품에..

스펄젼의 Q.T 2021.12.12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는 그것이 아무리 달콤하다 해도 얼마나 짧고 순간적인지 모릅니다! 우리 눈이 그를 보고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충만한 기쁨으로 즐거워하는가 하면 어느 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에게서 물러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치 노루나 어린 수사슴처럼 산등성이로 날세게 뛰어다니십니다. 향료가 있는 땅으로 가버리시고 백합화 가운데서는 더 이상 양식을 드시지 않습니다. “만일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죄사함받은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면 내일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재앙을 느끼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오, 주님을 멀리서 바라보는 대신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

스펄젼의 Q.T 202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