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젼의 Q.T 2352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사도행전 18:10] 오늘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가장 더러운 자, 가장 나쁜 자, 가장 방탕한 술주정뱅이들 가운데서도 반드시 구원받아야 할 택한 백성을 갖고 계시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을 행하려 할 때 이 말씀으로부터 큰 힘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그들에게 갈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들 영혼에 대한 생명의 메신저로 안수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그 말씀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예정된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보좌 앞에 있는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것이지만 선술집을 좋아하고 거룩함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

스펄젼의 Q.T 2022.12.20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예레미야 31:3] 주 예수님은 때때로 그의 교회에 대고 자신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교회가 듣지 않는 데서 은밀하게 그 말을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의 면전에 대고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쁘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주께서 늘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지혜롭게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언제 그의 사랑을 숨기고 또 언제 그의 사랑을 나타내야 할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 주님께서 그의 사랑을 은밀히 숨기지 않고 그의 백성들 영혼 속에 분명히 나타내실 때가 있습니다”(어스킨 목사의 설교에서). 성령은 종종 아주 은혜로운 방법으로 우리 영혼에 예수님의 사랑을 기꺼이 증거하십니..

스펄젼의 Q.T 2022.12.20

내가 너를 기억하노라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 [예레미야 2:2] ​ 그리스도에게는 그의 교회를 생각하고 그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몹시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에 유념합시다. ​ 새가 그 둥지로 자주 돌아오고 여행자가 서둘러 자기 집으로 돌아오듯, 사람의 마음도 자신이 택한 대상을 계속 추구하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무리 쳐다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항상 보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 영원 전부터 “그는 인생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생각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자신의 택자들을 택하게 될 그때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의 예지 속에서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는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

스펄젼의 Q.T 2022.12.17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28] 기독교는 “오라”고 온유하게 부르는 반면 유대교의 율법은 이렇게 거칠게 말합니다 . “가서 네 걸음에 유의하며 네가 걸어야 할 길을 잘 걸어라. 계명을 어기면 멸망할 것이요 계명을 지키면 살리라.” 이처럼 율법은 공포를 자아냅니다. 사람들은 채찍 같은 그 공포에 밀려 율법 앞으로 갑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랑의 줄로 사람을 이끕니다. 예수님은 항상 그의 양들 앞서 가시며 온유하게 “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계속 인도해 주시는 선한 목자십니다. 율법은 사람을 쫓아버리지만 은혜는 사람을 끌어들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간격을 벌어지게 하지만 복음은 끔찍하게 벌어진 그 틈 사이에 죄인이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놓아 줍니다. 여러분이 처음으로 거듭난 순..

스펄젼의 Q.T 2022.12.16

택한 백성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룻기 1:14] 오르바와 룻, 두 사람 다 나오미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 할 때 둘 다 나오미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시험의 때가 왔습니다. 나오미는 그 두 사람을 생각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암울한 현실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좀더 편하고 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모압 친구들에게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두 사람 다 여호와의 백성들과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좀더 생각해 보더니 슬프다는 듯이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며 작별 인사를 하고는 시모와, 시모의 백성과 시모의 하나님을 뒤로 한 채 우상을 숭배하는 자기 친구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

스펄젼의 Q.T 2022.12.15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시편 84: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오늘의 말씀은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는데, 어느 번역이든 그 속에는 진보 또는 발달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을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번역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즉 저희가 점점더 강건해졌다는 뜻입니다. 걸을 때 보면 처음에는 힘이 있다가 나중에는 힘이 빠지는 게 보통입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여 질서 있게 나아가지만 가다가 길이 험해지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길 옆에 앉아 쉬다가 다시 괴로운 듯이 곤한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새 은혜를 받아 순례길을 가는 성도는 여러 해 동안 애쓰고 싸우며 여행한 후에도 맨 처음 출발했을 때처럼 원..

스펄젼의 Q.T 2022.12.14

소금은 정수 없이 하라

“소금은 정수 없이 하라.” [에스라 7:22] 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번제에 사용되었는데, 그 보존 및 정화시키는 특성 때문에 우리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도 상징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이 제사장 에스라에게 소금을 줄 때 그 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만왕의 왕께서 그의 왕 같은 제사장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실 때도 주님 편에서는 절대 그 공급을 중단하시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종종 제한을 받는 것이지 여호와 안에서는 전혀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만나를 많이 거두기로 작정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많이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곳 주민들이 빵을 달아 먹거..

스펄젼의 Q.T 2022.12.13

교회를 아무 흠이 없다고 하심

“아무 흠이 없구나.” [아가 4:7] 주님은 앞 부분에서 그의 교회가 충만하게 아름다운 것을 긍정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이번에는 “아무 흠이 없구나”라는 부정문을 통해 교회에 대한 그의 찬양을 확증하고 계십니다. 트집 잡기 좋아하는 이 세상이 그는 교회의 어여쁜 부분만 언급하고 보기 흉하거나 더러운 모습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생략했다고 빈정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인지, 신랑되신 예수님은 교회가 전체적으로 완전히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전혀 흠이 없다고 선언하심으로써 교회에 대한 그의 칭찬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계십니다. 흠 하나쯤이야 곧 제거될 수 있으며 사실 그렇게 크게 아름다움을 망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신자에게는 주님 보시기에 그런 약간의 흠조차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만일 ..

스펄젼의 Q.T 2022.12.12

그 행하심은 예로부터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하박국 3:6] 하나님은 한번 행하셨던 일을 또다시 행하십니다. 사람의 길은 변화 무쌍하지만 하나님의 길은 영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진리의 말씀인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주의 행하심은 지혜롭게 심사 숙고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사에 따라 모든 일을 정하십니다. 인간은 급한 열정이나 두려움에 의해 행동할 때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회와 변경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에 놀라서 행하시는 법이 없으며 일어난 일 중 미리 예견치 않으셨던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행하심은 또한 불변하시는 그의 성품에..

스펄젼의 Q.T 2022.12.12

우리가 항상 주와함께 있으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는 그것이 아무리 달콤하다 해도 얼마나 짧고 순간적인지 모릅니다! 우리 눈이 그를 보고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충만한 기쁨으로 즐거워하는가 하면 어느 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에게서 물러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치 노루나 어린 수사슴처럼 산등성이로 날세게 뛰어다니십니다. 향료가 있는 땅으로 가버리시고 백합화 가운데서는 더 이상 양식을 드시지 않습니다. “만일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죄사함받은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면 내일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재앙을 느끼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오, 주님을 멀리서 바라보는 대신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

스펄젼의 Q.T 2022.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