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젼의 Q.T 2352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예레미야 애가 3:24] 이것은 “여호와가 부분적으로 나의 기업이라”는 뜻도 아니요 “여호와가 내 기업 안에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내 영혼의 기업의 총체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거나 소원하는 모든 것들이 그 안에 놓여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십니다. 그의 은혜나 그의 사랑이나 그의 언약만 내 것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 나의 기업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그의 기업으로 택하셨고 우리는 그를 우리의 기업으로 택했습니다. 물론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기업을 먼저 택해 주셨음에 틀림없다는 것,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가 자신을 위해 우리의 기업을 절대 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적..

스펄젼의 Q.T 2022.12.0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스가랴 3:1] 우리는 대제사장 여호수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왔으며, 거룩한 일들을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휘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구별된 삶과 거룩한 봉사로 이 제사장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을 보면 이 대제사장이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즉 사역하기 위해 서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모든 참성도의 종신직입니다. 지금은 모든 곳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매일매일 하는 일과 속에서도 성전에서처럼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

스펄젼의 Q.T 2022.12.01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요한복음 15:4] 여러분은 처음에 어떻게 과실을 맺기 시작했습니까? 예수님께 와서 여러분 자신을 그의 크신 대속에 맡기고 그가 완성하신 의를 의지했을 때 과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때 여러분은 어떤 과실을 맺었습니까? 예수님을 처음 믿은 그 시절이 기억납니까? 그 때는 정말 포도나무가 잘 자라, 어린 포도송이가 맺히고, 그 열매에서 싹이 나와, 포도나무가 심긴 화단에서 향내가 났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 후로 지금까지 믿음이 약해지지는 않았습니까? 혹시 그렇다면 그 사랑의 때를 기억하고 회개하여 그때처럼 행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열매는 가지되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을 그리스도께 가장 가까이 인도했던..

스펄젼의 Q.T 2022.11.29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레위기 19:16 - 17]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는 것, 돌아다니며 남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은 삼중의 독을 뿜어 내는 행위입니다. 즉 말하는 사람 자신과 그 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그 소문의 당사자 이렇게 세 사람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이 교훈은 우리에게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고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백성이 좋은 평판 듣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마귀를 도와 교회와 여호와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굴레를 씌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펄젼의 Q.T 2022.11.29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신명기 33:27] 하나님,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특히 우리가 깊은 환난에 빠질 때 붙들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도 때로는 창피와 굴욕감에 깊이 잠길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엄청난 죄악성을 깊이 깨달은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자신이 너무 무가치한 존재로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좋을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자신을 낮춥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여, 이처럼 가장 비천한 자리에 있을 때 바로 그 영원하신 팔이 여러분 아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죄는 항상 여러분을 그처럼 낮은 곳으로 끌어내릴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크신 대속이 여전히 그 아래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갈지도 모르지만 절대 “최고..

스펄젼의 Q.T 2022.11.25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참자유는 예수님으로부터만 옵니다. 만유의 후사이신 성자 예수님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실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 따라서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그 자유는 정당하게 주어지는 자유입니다. 성도들은 이 하나님의 공의를 존중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그들의 구원을 확보해 주고 있습니다. 그 자유는 또한 큰 희생의 값을 치르고 얻어낸 자유입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으로 자유를 선포하시지만 그 자유는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을 자유케 하시지만 그것은 곧 그의 결박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포로에서 풀려난 것은 주께서 여러분의 짐을 대신 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스펄젼의 Q.T 2022.11.25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이사야 49:16] 오늘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정말 알 수 없다는 듯이 “보라”(Behold, 한글 개역에는 번역하지 않았음-역자 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불신하며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나님은 이 악한 불신을 보시고 너무 놀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다니 이보다 더 기막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책망어린 사랑의 음성을 듣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울부짖듯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손바닥에 새긴..

스펄젼의 Q.T 2022.11.24

갈한 자에게 물을 주시는 하나님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이사야 44:3] 성도들은 마음이 슬프거나 울적해지면, 몹시 불안해 하고 염려하는 가운데 그 상태에서 벗어나 보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이 자꾸 침체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의심과 염려를 사용해서 우리 안에 은혜를 증진시키려는 것은 마치 독수리 날개에 사슬을 매달아 놓고 날게 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영혼을 맨 처음 구원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후 기운이 빠져 있는 성도를 다시 회복시켜 주는 것 역시 율법의 속박이 아니라 복음의 자유입니다. 노예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는 절대 패역한 자를 하나님께 돌이킬 수 없습니다. 애절한 사랑의 구애..

스펄젼의 Q.T 2022.11.24

야곱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아내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호세아 12:12]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그 동안 자기가 얼마나 수고했는지에 대해 외삼촌 라반에게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내가 이 이십년에 외삼촌과 함께하였거니와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 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 31:38-40). 그런데 우리 구세주는 이 땅에 계실 때 이보다 더 애쓰고 수고하며 사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 하나도 내가 잃지 않았나이다”-처럼 끝까지 자기에게 ..

스펄젼의 Q.T 2022.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