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젼의 Q.T 2352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브리서 13:13] 예수님은 고난당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 죄와 종교라는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별난 존재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반드시 자기 선생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속하셨던 분이 아닙니다.” 그의 생애와 증거는 이 세상을 본받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항변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일찍이 우리 주님만큼 인간에 대해 넘치는 사랑을 갖고 계셨던 분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죄인들과는 분리되어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람들도 반드시 “그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증거할 자들로서 “영..

스펄젼의 Q.T 2022.04.06

십자가를 지고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누가복음 23:26] 본문에 나오는 시몬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교회가 온 세대에 걸쳐 하는 사역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시몬처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고난당하지 않게 하려고 고난당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것을 피할 수 있게 해주려고 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이 그것을 잘 참고 견딜 수 있게 해주려고 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죄로부터 면제해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 슬픔에서까지 면제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고난당할 것을 예상하십시오. 그러나 시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고 가..

스펄젼의 Q.T 2022.04.05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겻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21] 애통하며 슬피 우는 성도들이여! 왜 우십니까? 자신이 더럽고 추해서 우십니까? 완전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은 바로 그 주님 안에서 완전하다는 것, 하나님 눈에는 여러분이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완전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아니 실은 그 이상입니다. 우리의 의되신 주님은 여러분에게 인간의 의 그 이상을 갖게 하시려고 그분의 옷을 친히 입혀 주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의 의를 갖고 있습니다. 오, 타고난 죄와 타락 때문에 애통하는 자들이여, 여러분이 범한 어떤 죄도 여러분을 정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

스펄젼의 Q.T 2022.04.05

불법 재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요한복음 19:16] 주님은 밤새 심한 고민 가운데 괴로워하시다가 이른 아침에는 가야바의 집 뜰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런 다음 가야바에게서 서둘러 빌라도에게 보내졌으며, 빌라도에게서 다시 헤롯에게로, 헤롯에게서 다시 빌라도에게로 보내졌습니다. 따라서 이제 주님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주님에게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드리거나 쉴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피를 간절히 원했던 그들은 주님을 죽이려고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오, 그 비통한 행렬이여! 그때 예루살렘의 딸들이 울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주님을 위해 애통하며 우십시오. 우리는 복되신 주님이 이렇게 끌려가시는 모습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

스펄젼의 Q.T 2022.04.05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마태복음 27:14] 사람의 아들들을 축복하실 때는 한번도 말을 더디 하신 적이 없는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서는 한마디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과 같이 말한 사람이 없었으며.” 그와 같이 침묵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침묵 한 가지만 보아도 주님이 얼마나 자기 희생적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침묵은 곧 그 거룩하신 몸(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치신)이 죽음당하는 것을 견디기 위해서라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주님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자신을 위해 추호도 중재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말없이 묶인 채 아무 불평 없이 희생 제물로 죽음당할 만큼 전적으로 자신을 복종시켰다는 뜻 아닙니까? 이 침묵은 무방비 상태인 죄..

스펄젼의 Q.T 2022.04.0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아가 1:2] 지금까지 여러 날 동안 구세주의 고난에 대해 묵상해 왔는데 앞으로도 그 점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약혼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 설레는 사람처럼 우리도 주님을 향해 설레이는 마음을 가집시다. 본문에 보면 그녀는 즉시 그를 향해 마음이 설레입니다.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또 그가 누구인지 그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즉시 자기가 말하고 싶은 핵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지금 자기에게는 세상에서 유일한 남성인 그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사랑은 얼마나 담대한지 모릅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어떤 여자는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값비싼 향유로 그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도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

스펄젼의 Q.T 2022.04.02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빌라도는 우리 주님을 로마 병정들에게 넘겨 주어 채찍으로 치게 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이 치던 채찍은 가장 끔찍한 고문 도구 중 하나로 황소의 힘줄로 만들어졌는데 그 힘줄 사이사이마다 날카로운 뼈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채찍으로 한번 내리칠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가해졌습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기둥에 묶인 채 채찍으로 맞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전에도 채찍으로 맞으신 적이 있었겠지만 이번에 주님을 때린 로마 병정들은 아마 그를 채찍질한 자들 가운데 가장 잔인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잠시 채찍에 맞아 고통스러워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애통하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

스펄젼의 Q.T 2022.03.31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이는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이사야 53:12] 예수님은 왜 죄인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림받는 고난을 당하셨을까요? 주님이 이처럼 자신을 낮추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죄인들을 위해 보다 나은 대변자가 되시기 위해 죄인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셨습니다. 변호사와 의뢰인을 동일시하는 심문에서는, 법적으로 그 둘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법정으로 끌려올 때 예수님께서 친히 그 법정에 모습을 나타내십니다. 그 죄인에 대한 고발에 답변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재판관에게 자신의 옆구리와 손발을 내보이시며 자기가 대변하고 있는 그 죄인들에게 불리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다 가져오라고 도전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흘린 피를 가지고 그들을 위해 ..

스펄젼의 Q.T 2022.03.30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브리서 5:8]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신 대장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해 온전해지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다면 죄인인 우리, 완전과는 거리가 먼 우리가 고난을 통과하도록 부르심 받았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머리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그 몸의 다른 지체들은 근사하고 안락한 곳에서 흔들거리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는 면류관을 얻기 위해 그 피바다를 통과하셔야 했는데 우리는 은색 슬리퍼를 신고 천국의 마른 땅을 걸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그 자신의 체험을 통해 우리에게 고난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

스펄젼의 Q.T 2022.03.29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에베소서 3:18] 그리스도의 사랑은 얼마나 크고 달콤하며 충만하고 신실한지,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의 아들들을 향하신 주님의 그 비할 데 없는 사랑, 전대 미문의 그 사랑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은 한없이 넓고 끝없이 깊어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설사 그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그 사랑의 표면만 슬쩍 건드릴 뿐 측량할 길 없는 저 깊은 곳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는 시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심연 같은 주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은 정말 측량할 수 없으며 그 깊이를 잴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 끝..

스펄젼의 Q.T 2022.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