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젼의 Q.T 2352

위로의 하나님

[고린도후서 7:6] 세상에 우리 하나님처럼 위로하시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슬픔과 비통에 잠겨 있는 하나님의 불쌍한 자녀에게 가서, 한번 그의 귀에 대고 달콤한 약속들을 말하며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을 속삭여 보십시오. 아무리 지혜로운 말로 위로한다 해도 귀머거리처럼 그 하는 위로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통한의 잔을 마시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로 위로한다 해도 고작해야 그만두라는 사양의 말 한두 마디만 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위로해도 찬양의 시를 읊거나, 할렐루야 소리를 내거나, 기쁜 소리를 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자녀에게 가서 그를 위로하시게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자녀의 안색이 곧 펴질 것입니다. 슬피 울던 두 눈이 희망의 빛으로 반짝일 것입니다..

스펄젼의 Q.T 2023.02.20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 [욥기 10:2] 오 곤한 영혼들이여, 어쩌면 주님은 지금 여러분에게 더 많은 은혜를 주시려고 여러분과 더불어 쟁변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 가운데는 시험을 당하지 않으면 생전 발견할 수 없는 은혜들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좋을 때보다는 역경을 당할 때 믿음이 훨씬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랑은 주변이 캄캄할 때 외에는 그 빛을 발하지 않는 반딧불과 같을 때가 많습니다. 또 소망은 하늘의 별과 같아서 번영의 태양이 내리쬐고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고 오직 역경의 밤에만 보입니다. 이처럼 고통과 재난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위해 은혜의 보석들을 담아두는 검은 알루미늄 종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 안에 싸여 있..

스펄젼의 Q.T 2023.02.18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 [창세기 25:11] 하갈이 이곳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서 구출된 적이 있으며 이스마엘이 자비로운 하나님 (살아 계셔서 사람의 아들들을 보고 계시는)의 계시로 그곳에서 물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세상 사람들도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주님께 주목하듯 어쩌다 그곳에 들렀을 뿐입니다. 그들은 곤경에 빠지면 주님께 부르짖지만 형통하면 곧 주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곳에 거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계속 공급해 주시고 공급원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샘을 팠습니다. 그 인생의 전반적인 방향, 그 영혼의 거처,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어쩌면 이삭은 하갈이 하나님..

스펄젼의 Q.T 2023.02.17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립보서 4:11] 오늘의 본문 말씀은 자족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이 아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잡초는 빨리 자랍니다.” 땅에 가시덤불이 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탐욕을 부리고 불만을 품으며 원망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엉겅퀴는 구태여 심지 않아도 저절로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것은 으레 땅에서 나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불평하라고 가르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어느새 불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소중한 것들은 반드시 심고 가꿔야 합니다. 밀이 갖고 싶으면 땅을 갈아 밀을 심어야 합니다. 꽃을 원하면 정원이 있어야 ..

스펄젼의 Q.T 2023.02.16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베드로후서 3:18] 천국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영원히! 여러분이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그 연수는 속히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영광이” 세세토록 있습니다. 주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대제사장” 아닙니까? “그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그분은 영원토록 왕이시지 않습니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 아닙니까? “그에게 영원토록 영광이 있을지어다.” 그분을 찬양하는 일은 절대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찬양은 피로 값주고 산 것이니 영원한 생명이 지속되는 한 계속 지속되어야 마땅합니다. 십자가의 영광이 절대 약해지면 안 됩니다. 그 무덤의 광채와 ..

스펄젼의 Q.T 2023.02.15

일용할 은혜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열왕기하 25:30] 유다 왕 여호야긴은 몇 달 동안 먹고 지낼 것을 받아 바벨론 왕의 궁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그날 필요한 것들을 왕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여기서 그는 여호와의 모든 백성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한 입장을 아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날마다 그날 필요한 것을 받는 것, 이것이야말로 한 인간이 정말 필요로 하는 모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는 내일 필요한 것들이 필요치 않습니다. 내일은 아직 밝아 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내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6월에 가서 겪을지도 모를 갈증을 2월에 미리 해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 갈증을 느끼지도..

스펄젼의 Q.T 2023.02.14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린도후서 1:5] 여기 복된 말씀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섭리하시는 통치자, 우리 하나님은 천칭을 갖고 계십니다. 이쪽 저울에는 그의 백성들이 받을 시련을, 저쪽 저울에는 그들이 받을 위로를 올려 놓으십니다. 시련의 저울이 비면 위로의 저울도 비게 됩니다. 시련의 저울이 잔뜩 차 있으면 위로의 저울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무겁습니다.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을 때 햇빛이 비치면 그 빛이 더욱 환해 보입니다. 밤이 깊고 사나운 비바람이 계속 몰아칠 때는 천국의 대장되신 주님께서 배에 타고 있는 자들에게 가장 가까이 계신 법입니다. 가장 낙심될 때가 실은 성령의 위로를 가장 많이 받을 때라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

스펄젼의 Q.T 2023.02.13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요한1서 3:1 - 3:2]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가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지금도 더러운 것이 우리 안에서 강하게 역사할 때면 우리가 어떤 존재로 변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될 수 있었는지 그 점이 기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니 얼마나 가까운 관계입니까!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될 특권은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

스펄젼의 Q.T 2023.02.13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사도행전 4:13]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놀랄 만큼 쏙 빼 닮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동안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아주 아름답고 웅변적으로 기록된 것들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장 훌륭한 삶은 바로 그 백성들의 언행 속에 쓰여져 있는 살아 있는 전기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대로 살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될 때, 우리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그림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찌나 쏙 빼 닮았는지 세상이 우리를 보고 “글쎄, 좀 닮긴 닮은 것 같은데”라고 말하지 않을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보기만 해도 “저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야. 예수에게 가르침을 받았지. 그래서 예수를 아주 많이 닮았어..

스펄젼의 Q.T 2023.02.11

내가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내가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빌립보서 4:12]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비천에 처할 줄”은 알면서 “풍부에 처할 줄 아는 법”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상 꼭대기에 올라가면 머리가 빙빙 돌아 금새 밑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이런 성도들은 역경에 처했을 때보다 형통할 때 자신이 믿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을 훨씬 더 많이 욕되게 합니다. 형통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셈입니다. 역경이라는 도가니보다 번영이라는 유리병이 더 호된 시험이 되는 셈입니다. 오, 어떻게 하나님의 긍휼과 풍성하신 은혜를 받았는데도 영혼이 그렇게 메말라 영적인 일을 등한시할 수가 있을까요! 이것은 빈궁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자기가 풍부에 처할 줄 아는 법을 ..

스펄젼의 Q.T 2023.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