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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토지와 경제

천국생활 2006. 2. 23. 10:51

 

 

 

1. 토지에 대한 성경적 이해



(레 25:10)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

(레 25:18, 19)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

(레 26:14-16)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 …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레 25: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아모스 5장 24)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대로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람들의 수준에서 하신 말씀들이 아니었다.

선택된 아브라함 자손에대한 한정된 말씀인 만큼 다른민족에게는 적용 불가능한 말씀이었다.
가나안 땅을 하나님 자신의 것이라고 강조하시면서 직접적인 지배권을 주장하신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자한 언약에 따라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형식은 나그네와 같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만드신 임대법에 따라 임대해 주신다는것이고 구약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은 신약의 천국 예표로서 영원히 기업으로 주실 축복의 땅은 천국이다라는 의미가 명백하다.


여호수아서는 모두 24 개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2장 - 22장까지가 전적으로 토지를 실제로 분배하는것을 다루고 있다. 토지의 분배를 결정할 때 제비뽑기로 한 것, 미리 지형의 조사를 철저하게 행한것, 지계표를 설치하여 절대로 이동할 수 없도록 한 것 등은 이스라엘 백성이 토지의 평등한 분배와 기업(基業)의 유지에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던가를 보여준다.


땅을 기업(基業 inheritance)으로 주심에 있어서, 모든 땅이 희년에는 본래 임자에게 돌아가도록 정하셨으며 모든 판매를 무효화 하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마치 50년마다 구획정리를 다시 하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그리고 성경은 토지법을 따라 살 때 경제적 번영을 누릴 것이고 그 법을 따르지 않을 때 경제적 재앙이 있을 것임을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은 토지법의 정신을 위배하였을때 강하게 책망하셨다.(사 5:8, 미 2:1-2)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한 사회의 경제도, 한 개인의 경제 생활도 토지가 없이는 유지될 수가 없다. 성경의 토지법은 이렇게 중요한 토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법이다. 이 말씀들은 일반적으로 사회구조와 경제구조가 공의롭게 말씀대로 구축되면  빈부 양극화등 많은 경제문제들이 해결되고 완화될 수 있다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수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지파 별로 가족별로 공평하게 분배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가족이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의도를 보여 준다.

성경이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강조한것은 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평등해야 하는 것은 토지에 대한 권리 뿐이다.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가 보장되는 상태에서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소득과 재산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경은 사회주의와는 달리 사람들이 땀흘린 만큼 대가를 누리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레위기 25장 13절 - 17절은 토지의 임대에 해당한다. 사용권의 한시적 판매를 허용한 이유는, 가장의 사망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빈곤에 빠진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토지를 팔아야 할 피치못할 사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 25장 24절 - 27절에서는 토지를 한시적으로 판매했다 하더라도 본인이나 가까운 친척이 토지 무르기를 요청하면 언제라도 토지를 되찾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토지를 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희년이 되면 모든 토지가 조건없이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아가야 하는 기업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기업을 회복시켜 주는 것은 "전국 거민에게 종에서 자유, 빚에서 해방을 공포"(레 25:10)하는 일의 기초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의 정신을 공의(義)와 자비(仁)와 믿음(信)이 없다고 책망하셨다. 우리는 이런 율법주의는 반대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원리인 하나님의 율법은 존중해야 하며 그 법에 순종해야 한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의 책에서 토지의 공개념에 대하여 설명한 것은 성경적이라고 할수있다. 토지를 사유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공동재산으로 인식하므로 대안을 제시하고있다. 분명히 말씀대로 보수 개혁해간다면 축복을 받을 것이나 첫 단추를 잘못 단 이방 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국가가 많지를 않다.


헨리 죠지의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은 19세기에는 예언자적 어려운 이론책이었으나 지금은 누구나 경험하고 있으므로 쉽게 이해가 된다. 인구의 증가, 기술의 개선, 도시화,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발생한 토지의 수요의 급증 그리고 지가 상승 기대치로 인한 한정된 토지의 가격의 상승은 피할수없으며 대안은 토지의 사유화가 아니라 공동재산화라고 주장한 것은 성경적이다.

조지의 사상은 지금까지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덴마크, 대만, 싱가폴, 미국의 펜실베니아 주 도시들과 알래스카 주 등이 대표적인 지역들이다. 이 가운데 이런 제도가 지금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된 곳도 있지만, 그것이 시행되는 동안에는 실업, 토지투기, 불황, 도시의 쇠퇴 등 심각한 경제문제들이 사라지는 대신, 경제성장이 빨라지고 도시가 되살아나는 놀라운 경제적 성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물론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국민이 <의와 인과 신>에 뿌리를 가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시작하는것이 아니라 사악한 사회주의 생각등으로 출발한다면 실패할 것이다.




2. 부와 재산에 대한 칼빈의 견해


칼빈은 400여년전의 인물이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계시의 진리를 명료하고 실제적인 방법으로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교훈이 된다.
칼빈은 "영원한 복음(계14:6)"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태도를 분명히 함으로써 많은 세월이 흐른다해도 인간의 기본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칼빈의 경제사상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수있다. 칼빈의 경제 사상속에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강하다는 학자들의 주장과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하다는 학자들의 주장,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요소와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함께 공존하는 제3의 경제체제를 말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칼빈의 경제사상을 연구해보면 자본주의적 요소와 사회주의적 요소 각각의 독특한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 두 요소를 뛰어넘는 이상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칼빈의 경제사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학자들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경제체제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빈이 의도했던 경제사상은 자본주의적 요소와 사회주의적 요소로만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또는 근대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칼빈은 사유재산과 정당한 이자를 인정하면서 재산의 개인적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한 치안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으며, 탐욕에 의한 재산 축적과 고리 대금업을 권장하는 것은 반대하고, 이웃을 돕는 봉사해야 할 의무의 근거로서의 사유재산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평등성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 불균등성과 다양성을 상호의존과 봉사, 그리고 인간사회의 조화적 기능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칼빈은 평등성만을 강조하였던 당시의 제세례파들을 망상적인 꿈을 꾸는 모든 사회질서의 위협적 세력들로 간주하였고 또한 불균등성만을 강조하여 탐욕과 탄압과 착취의 근거로 삼으려는 자본주의자들도 경계하였다. 그러니까 칼빈의 경제윤리는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라 성경적일 뿐이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체계를 말씀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 회복의 사역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창조질서의 회복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적인 무질서와 혼란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조화와 상호봉사의 창조적 질서를 진정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과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에 있다는 것을 칼빈은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칼빈은 제네바 도시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다스림을 실현하고자 성경의 원리속에서 그 이상적인 경제체제를 찾고자 했다. 자본주의적 요소와 사회주의적 요소의 독특한 장점을 참고하여 그리고 희년법 사상에 기초한 제3의 성경적 경제체제를 제시한 것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참된 교회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상호의존과 상호봉사를 통하여 참된 하나님의 형상과 창조질서의 회복을 마땅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항상 거짓 없는 사랑으로 나누어 줄수있었고 과부를 업신 여기거나 고아를 서럽게 하지 않았다. 나그네를 환대하고 옥에 갇히거나 압제받는 자들을 돌아보았다. 심지어는 며칠씩 금식하면서 까지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소극적으로 남의 돈과 재산을 폭력과 속임수로 도적질하는 것을 정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불해야할 봉사의 의무를 거절하는 것도 사실상 이웃의 어떤 것을 도적질하는 것으로서 정죄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의 의무를 따라 남에게 당연히 나누어햐 할 것을 나누지 않는 자도 도둑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아고보서 5장을 주석하면서 탐욕을 선한 일에 재산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인색함으로 재물을 축적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육축의 생명을 돌아 보면서 인간을 긍휼히 여기지 않음을 악인의 잔인함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자들의 부절제한 과소비와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떠드는 환락과 지불해야 할 삯을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는것과 약자에 대한 부자의 억압을 정죄하고 있다.
칼빈은 부 그 자체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열심히 일한 결과로서 공헌이라고 간주하면서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축복과 선물을 마치 인간 자신의 것인 양 횡령하고 오용하여 자신의 탐욕과 영광만을 추구하는 악한 부자들을 고발하고 있다.

칼빈은 마태복음을 주석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돕지 않는 것은 바로 예수를 거절하는 것과 같은 신성 모독(sacrilege)죄라고 하였다.

칼빈은 신명기 설교에서 사랑과 보호를 통한 교회의 자비는 모든 국경과 민족, 교회적 한계를 초월하는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칼빈은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칼빈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일에서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참되게 닮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3. 결론


하늘도 땅도 은과 금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다만 나그네로 살 동안에 하나님의 것을 임차하여 사용할 뿐이다. 나그네가 주인의 요구에 순응해야함은 당연하다.
칼빈은 인간들이 하나님 말씀하시는 책임을 무시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지않고 이웃을 착취하고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탐욕을 따라 행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새롭게 자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의 신앙적 회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때 인간은 하나님께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식과 이웃에 대한 책임의식을 새롭게 할수있다>.


물론 죄인인 인간의 삶에 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모든 형태의 완전주의는 인간의 힘에 의하여 할수있다는 망상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바리새인같은 종교적 우파는 정치적 좌파와 유사한 전제를 가진 동지라고 할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본질적인 회복의 사람 곧 성령의 사람은 좋은 나무로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회복과 헌신을 할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며 이름을 높이며 그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의와 인과 신에 뿌리한 예수 나무들은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마귀를 뿌리로한 본질이 나쁜나무는 아무리 해도 나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칼빈은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남을 위해 사는 삶은
자기부정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