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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천국생활 2006. 1. 23. 14:26

 마태복음 6:3
[개역]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태복음 6:4
[개역]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고린도후서 8:4
[공동]그리고 부디 자기들에게도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자진해서 간청해 왔습니다

잠언 28:27
[개역]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누가복음 12:33
[개역]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6:2
[개역]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고린도전서 13:3
[개역]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1. 구제는 사랑으로 하여야 한다.

 

구제를 할때 자기 기쁨, 자기교회의 즐거움을 위하여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은 구제할때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구제할때 자기 돈은 한푼도 내지 않고 다른 사람이 헌금한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구제는 정말 이웃의 형편과 처지를 보고 마음이 아파서 긍휼히 여기며 베푸는것이 되어야 한다. 우월감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

사랑은 이웃을 이해하고 자기 몸과 같이 느끼게 하며 긍휼의 마음이 샘솟게한다.

성경적인 구제는 예수님의 심정으로 바라보며 불쌍히 여기며 아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2. 구제는 지속적으로 하여야 한다.

 

구제를 연중 몇회 행사로 하는 교회가 많이 있는데 이는 성경적인 구제라고 할수 없다.

구제를 행사로 한다는 것은 생색내기며 자기 만족에 빠지기 마련이다.

상대는 그런 구제를 일시적으로 고맙게 느끼겠지만 일회용이다.

작은 교회가 힘겹게 한번식 행하는 구제는 큰 행사이고 칭찬들을 만하다.

큰 교회가 이렇게 한다면 평소에 구제하지 않는것을 알리는 것이고 웃음거리가 될수도 있다.

성경적인 구제는 지속적으로 행하는 구제를 말한다.

 

 

 

3. 구제는 언밀히 행하도록 하셨다.

 

 

예수님께서 구제를 말씀하시면서 구제는 오른손이 하는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은밀히 행하기 마련이다.  광고를 하고 행사치래로 하고 소문나는 것을 기대하고 하는 구제는 주님이 바라는 구제가 아니다.  정말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며 행하게 된다. 구제는 자기 만족을 위해 자기 교회 기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 성경적인 구제이다.

 

 

 

한국 사회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가진자와 못가진자 ..................

큰 교회 주위에 빈민촌이 있을 수 있다.

한국 교회도 교회안에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목사와 장로들,

겨울에 추운 냉방에서 자는 성도와 배고프고 월세를 내지 못하는 성도

들이 공존하는 양극화 현상은  점점 심해 지고 있다.  하나님 말씀은 계속적으로 세상적인 복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래서 세상적인 계급과 돈과 명예가 윗 자리를 차지하면서 양떼를 살피지 않고 베풀지를 않는다.  부유한 자가 하나님의 인정과 복을 받은 자이고 가난한 자는 복을 받지 못한 자로서 차별대우를 해야 마땅하다고 믿고 있다.  말은 그렇지 않다고 하나 실제는 불평등의 유혹에 빠져있다.

구제에 관심을 가진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마냥 자신은 즐겁고  은혜아래 있으며, 고급 옷과 치장으로 돈 냄새를 풍기기만 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없고 자기 관심만 살아있다.

이런 양극화를 최소화 하기위하여 예수님은 일찌기 소자에게 한것이 나에게 한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가장 잘 대접할듯이 말하면서 소자를 대접하지 아니하므로 예수님을 섭섭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사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소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양극화는  정신적으로 분열을 만들고 연합을 이룰수 없게 하고 있다.

구제는 양극화를 없애는 사랑이다.

교회가 구제로 교회의 양극화를 막고 여유있는 예산으로 세상을 따뚯하게 해야할 때이다.

올해는 어려워진 삶들을 돌아보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구제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들이 될가....예수님의 심정으로 동포와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바라며 권고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