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겨울이 성큼 닥아와 마음마저도 추워진다. 이럴때 생각나는 것이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현실에 바쁘게 살다보면 이상하게 차거워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교사들 그리고 공무원들이 근로자로
전략한 뉴스등 잘못된 세계관과 윤리의 실종으로 부터 나오는 좌파의 자기 목소리 높이는 소리들이 추운겨울 바람과 함께 우리를 차겁게
만든다.
1. 지금은 부르짖는 기도로 우리를 더웁게 해야 할 때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이해가 된다. 왜 쉬지말고 라고 하셨을까? 우리는 기도를 쉬는 순간부터 차거워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지말고 눈을 뜨고도 일을 하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차안에서도 조용한 곳이든지 시끄러운 곳이든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기도로 대화해야 뜨겁게 살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차거워지면 항상 기뻐할수도 없고 범사에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를 향하여 뜨겁기를 원하시는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연한 요구이시다. 기도하지않고는 기뻐할수도 감사하기도 더웁게하기가
어렵다. 기도의 체온과 영적 부흥은 비례한다고 할수있다. 기도의 불을 끄는, 찬물을 끼었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서 교회를
누구보다 사랑한다면서 새벽기도가 냉냉하다면 가정교회에 기도가 없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없이 뜨거워질수 없고,
기도없이 뜨겁다는 것은 위선이다.
2. 말씀 묵상중에 그 사랑을
확인하면서 더웁게 하자.
어느날 기도중에 주님께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감을 가진 나에게 너도 손바닥에 대못을
나를 위하여 나처럼 박힐수 있느냐고 질문하셨다. 나는 바늘도 손바닥에 꼽을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진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안아프게 해 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나의 죄와 죽음을 대신해서 속죄양으로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대못이 박혀 피를 흘리신 그 사랑의 주님을 잠간이라도 의심하거나, 사랑함에 있어서 후퇴를 생각할수 없다. 그 큰 사랑을 내 마음에
다시 각색할때 내마음이 뜨거워 짐을 느끼게 된다. 말씀을 읽거나 쓰거나 타자하면서 주야로 묵상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주를 향한 열정적인 뜨거운 마음이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청년들과 같이 뜨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말씀이 꿀과 같이 단 사람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고 성령의 열매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에 맺힘같이 풍성하게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면서
말씀을 매일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없이 뜨거워질수 없고, 말씀없이 뜨거운 것은
위험하다.
3. 주님이 응답하신 내용들을 헤아려 보며 뜨겁게
살자.
미지근한 나를 기도응답으로 뜨겁게 해주시던 날들을 헤아려 볼때 내마음에 불씨는 다시 타오르게됨을
느낀다. 나 같은 경우에는 80년도에 동명목재가 부도가 나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 기도의 응답으로 그 많은 응시자들
중에 서울에서 직장생활하게 된 응답과 그 직장도 수년후에 부도가 나므로 다시 부산에 내려와 직장을 구하며 기도할때 꿈속에서 한 여직원이 내
책상이라면서 책상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응답으로 확신하고 면접하므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꿈속에 보여주신 그 여직원이
모습이 그 회사의 내가 근무할 부하직원으로 앞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 이러한 구체적인 응답과 인도하심을 헤아려 보면
다시 뜨거워진다. 은혜 체험은 뜨거워 지는데 필수적이다.
4.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하신
주님안에 있어 뜨거움을 회복하자.
대통령이 첫 기자회견을 할때 모든 국민이 T.V앞에 모여 듣는 것과 같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의미있는 주님의 회견으로 받아드리게 된다. 주님은 물과 같은 맛이
아닌 포도주와 같은 진짜 맛있는 것을 주신다. 포도주로 변화시킨 주님은 잔치집 사람들 같이 뜨거워지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잔치집의 즐거워함 처럼 뜨겁게 살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그러한 변화와 회복과 화평을 위하여 우리에게 오셨고 그 모든 힘던
구원을 다 이루어 주신 것이다. 성령의 술에 취하여야 한다. 그래서 한나처럼 기도해야하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처럼 기도해야하고, 마음을
열어 말씀을 묵상해야하고, 말씀따라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고 섬기며 찬양하며 흥겹게 살아야 한다. 전능하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술에 취하여
살아야 한다. 성령을 제한하는 일들을 점점 주려야 한다. 형식적인 미지근한 기도, 주님의 관심에 무관심한 주님과의 관계는
우리를 차겁게 만든다.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 하시고 내 안에 거하는 것은 내 사랑안에 거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시고 내 사랑안에 거하려면 내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내 계명은 이것이니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설명해주셨다(요15). 요약하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안에 거하게 된다.
주님께서 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지는 선교현장에 가서 거지처럼 살고있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깨달을 수 있다. 주안에 거하면서 차거운 사람은
없다. 서로 사랑하면서 뜨거워지고 서로 사랑하지않는 증거가 바로 미지근함이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과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신 은혜를 헤아리며 주안에 거하면서 뜨겁게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뜨거운 사람이 되어 차거움과 미지근함을
이기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는 지금 교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할때인데 조용한 분들을 깨워 주시옵소서. 성령의
바람으로 기도의 문을 열어주시고 기도의 불을 가슴마다 던져주셔서 타오르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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