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69 일
(마태복음 01-15장)
<내용 요약>
오늘은 마태복음 01-15장까지 통독하겠습니다. 각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01장) 왕의 계보와 동정녀 탄생
(02장) 왕께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 애굽으로… 나사렛으로의 귀환
(03장) 세례요한의 왕국의 선포,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다
(04장) 광야에서의 왕의 시험
(05-07장) 산상수훈-왕국의 규례들
(08장) 산상수훈의 윤리를 집행하기 위한 왕의 권세를 보이신 여섯 가지 기적들
(09장) 여섯 개의 기적을 더 보이심, 마태를 부르심,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10장) 왕국의 복음을 이스라엘 나라에 전하기 위한 열 두 제자의 소명
(11장)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회개치 않는 성읍들을 버리심-개인들을 향한 새 초청
(12장)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의 싸움, 그리고 마지막 휴식
(13장) 천국에 대한 비유들
(14장) 요한의 목베임, 오병이어, 제자들의 폭풍속으로의 항해, 물 위를 걸어오심
(15장)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한 공개적 비난, 수로보니게 여인, 많은 사람들을 고치심
<주요 통독 자료>
1. 왕의 복음
우선 왜 복음서들이 네 권인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차츰 나누겠지만, 마태는 정통 유대인으로서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마가는 로마의 노예 계급의 1세기 크리스천들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썼습니다. 누가는 헬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그의 복음서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어떤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두고 그의 복음서를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주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라는 두 가지 주제를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과 요한복음 기록 패턴 자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들은 일종의 전기 형태의 패턴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탄생으로부터 예수님의 생애,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승천까지의 일들을 일의 순서대로 기록하는 전기 형태의 기록입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사건의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한의 주제를 뒷받침 해주는 사건들을 순서와 상관 없이 편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같은 관점의 기록들이라고 해서 “공관복음”이라 부르고, 요한복음은 이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각각의 복음서들의 특징들은 각 책을 통독할 때 개별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마태복음의 특징들을 먼저 다루어 보겠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마태는 정통 유대인이었고, 그래서 유대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다윗의 왕통을 따른 요셉의 계보로 시작이 됩니다. 그의 계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바로 히브리인들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의 인물들은 마태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 이전까지는 히브리인의 역사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은 바로 히브리인의 역사를 시작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는 누가복음 3장의 계보와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으로부터는 갈라집니다. 마태의 계보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유다 왕들의 계보입니다. 반면 누가의 계보는 나단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쪽으로 내려오는 계보입니다. 확연히 다르죠? 흥미로운 사실은 요셉도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는 굳이 요셉의 계보를 기록하면서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요셉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요셉의 계보는 다윗의 후손들 중 왕들의 계보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동방박사 사건은 오직 마태만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박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마태의 복음서 기록의 의도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만이 이들의 이야기를 그의 복음서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또한 마태가 특징적으로 사용한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떤 행적이나 혹은 말씀을 소개할 때, “예수께서 이 일을 행하심은”, 혹은 “예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 “ㅇㅇ 선지자의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는 구절들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이 모두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였음을 밝히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시키신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 마태가 소개하려는 예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복음서 기자들 중, 구약의 말씀을 가장 많이 인용했습니다. 일단 직접적으로 구약의 구절들을 인용한 것이 모두 53회이며, 구약의 사건이나 장면들을 포괄적으로 인용한 것이 76회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는 총 129회나 구약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28장이니까, 마태는 매 장마다 4.6회씩 구약 성경에 대해 언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안에서 “천국(the Heavenly Kingdom-하늘의 왕국)”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십니다. 그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항상 왕, 혹은 왕자이십니다.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마태복음을 “왕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이런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마태복음을 읽으시면, 여러분은 마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진의가 무엇인지 더욱 분명히 알게 되실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이름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의 “여호수아”의 헬라어 버전입니다. 히브리어의 여호수아는 <여호와 슈아>의 축소형입니다. 이는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그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시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고지했던 천사는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두려워 말라.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실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가 과연 우리를 어떻게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실까요?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값을 지시고 십자가, 곧 저와 여러분이 죽었어야 만 할 바로 그 자리에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이 여러분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셔야 할 시간입니다.
3.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의 대조
모든 복음서들이 그렇지만, 특별히 마태복음은 계속해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예수님 사이의 갈등의 폭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늘어갈수록 지도자들은 점점 더 큰 돌을 예수님을 향해 던지려고 집어 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지닌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리들과 그가 가난하고 소외 되고 힘겨운 백성들을 향하여 보여주시는 긍휼과 베풀어 주시는 깊고 큰 사랑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왜곡되게 그들의 종교를 가르치며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평범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감생심 가까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율법의 왕으로 부각시켰습니다. 자기들처럼 엄한 규례들을 지키며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하고 온갖 종교적 위선들을 행하는 자들만이 소유한 점유물처럼 하나님을 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백성들은 항상 허리가 휘청이도록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하느라고 허덕이며 살았지만 그래도 죄책감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사용하십니다. 그것은 산상수훈에서 반복되고 있는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라는 호칭입니다. 이 말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아버지” 얼마나 따뜻한 단어입니까? 종교 지도자들에게 엄청난 두려운 존재로, 언제나 화를 내시고 매를 때리실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하나님으로 부각되시던 그 분을 예수님은 따뜻한 아버지로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 혹은 하늘을 나는 작은 참새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닙니다. 다만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입히시고 먹이십니다. 그렇다면 “너희를 자녀로 부르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자녀 된 너희를 더욱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설교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의 네 가지 대 설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4대 설교(Four Major Discourses of Jesus)라고 부릅니다. 이 4대 설교 중 3편이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그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첫째가 “산상설교(5-7장)”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율법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신 설교입니다.
둘째가 “천국비유설교(13장)”입니다. 천국을 아주 가깝고 쉽게 설명하고 있는 비유들입니다. 그리고
셋째가 바로 “감람산 설교(24-25장)”입니다. 이 설교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의 징조들과 그때 벌어질 광경들을 가르쳐 주신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누가복음 19-20장에서도 소개됩니다.
예수님의 4대 설교 중 다른 한 가지는 요한이 전해준 “다락방 설교(요 13-17장)”로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약속된 성령을 이 땅에 보내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과, 성령께서 오시면 성도를 일깨워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각양 은사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될 것을 가르치는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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