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72 일
(누가복음 1-12장)
<내용 요약>
누가복음은 전체를 8개의 단원으로 묶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통독 범위는 누가복음 1장에서 12장까지입니다.
A. 인자의 탄생과 그의 가족들(1-3장)
(01장)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고지, 세례요한의 탄생
(02장) 예수님의 탄생, 할례, 12세 때 예루살렘 여행
(03장) 세례요한의 사역, 예수님의 세례, 마리아의 계보
B. 인자의 시험, 고향에서 배척당하심(4장)
(04장) 광야의 시험,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심, 사역 본부를 가버나움으로 옮기심
C. 갈릴리 지역에서의 인자의 사역(5-9장)
(05장) 제자들을 두 번째로 부르심, 문둥병자들을 고치심, 중풍병자의 치료, 마태를 부르심, 새 천과 새 가죽부대의 비유
(06장)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른 제자들을 변호하심,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 열 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심, 광야에서의 설교
(07장) 백부장의 종의 치료,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 세례요한을 칭찬하심,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 받으심(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여인), 두 명의 빚진 자들의 비유
(08장) 비유들-씨 뿌리는 자, 등불은 등경 위에,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 풍랑을 잠재우심, 가다라 지방의 귀신 들린자,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의 치료,
(09장)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심, 오천 명을 먹이심, 베드로의 고백과 십자가와 부활의 예고, 변화산, 귀신들린 아이의 치료, 예루살렘으로 향하심, 제자들의 변론(누가 크냐)
D.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의 인자의 사역(10-18장)
(10장) 70인의 파송, 고라신과 벳세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대한 심판의 선포, 선한 사마리아인,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심
(11장) 기도를 가르치심, 예수님과 바알세불,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함,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
(12장) 바리새인의 외식에 대한 경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목숨과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 불을 던지러 오심, 시대를 분별하고 화해하기를 힘쓰라
<주요 통독 자료>
1. 누가복음의 중요한 열쇠들
누가는 헬라인으로서 의사였습니다. 당시 의사는 지금과는 달리 노예 중에서 똑똑한 사람을 골라 의술을 배우게 해서 주인의 가족들의 주치의로서 가족들의 건강을 돌보게 했던 종들 중 하나였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썼는데, 두 권 다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서신의 형태로 기록을 했습니다. 데오빌로가 실존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데오빌로의 이름은 “하나님”을 뜻하는 <데오스>와 “사랑”을 뜻하는 <필레오>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의미의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그래서 간혹 데오빌로를 보통명사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볼 때, 데오빌로가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렇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부자이며 로마의 영향력 있는 군인 혹은 관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이미 말씀 드린 대로 그의 종으로서 의학을 공부하고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데오빌로는 바울 사도의 영향 아래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바울이 건강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그의 종이었던 누가를 바울에게 보내어 그의 건강을 돌보게 했던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 사도의 전도 팀의 일원이었습니다. 나중에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2차 전도여행에서부터 소위 “We Section”이라고 불리는 단원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어가 갑자기 저자를 포함한 일인칭 복수로 바뀌는 부분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누가가 바울 전도팀과 함께 하고 있었던 부분인 것입니다. 바로 이 누가가 자신이 바울을 통해서 들은 복음과 그의 선교의 영향력에 대하여 그의 주인이었던 데오빌로에게 상세하게 써 보낸 것이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인 것입니다.
누가는 헬라인이었기 때문에 다분히 헬라적 사고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을 것입니다. 헬라 철학의 뿌리는 인본주의입니다. 휴머니즘, 즉 헬라철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헬라적 사고를 가진 그의 주인 데오빌로를 독자로서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썼기 때문에 예수님을 “인자(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로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만이 지닌 몇 가지 특성들이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 중에서 세례요한과의 인척 관계를 기록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의 마지막 말씀들이 바로 이 세례요한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을 끝으로 400년간의 하나님의 침묵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400년 만에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뜨리시고 입을 여신 것이 바로 말라기의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님 앞에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앞서 가며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세례요한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반차를 따라 제비를 뽑아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성소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400년 간의 침묵을 깨뜨리시고 세례요한의 탄생에 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사복음서 기자들 중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잉태되신 후, 세례요한의 모친이 마리아를 방문했을 때 세례요한이 모태에서 뛰었다는 말씀을 기록함으로써 의사로서의 누가의 소견을 덧붙인 것도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는 마치 소아과 의사와 같은 소견을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덧붙였습니다. “키가 자라며, 지혜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것이 복음서 기자들 중 유일하게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기록한 글입니다. 그리고 마태가 1장에서 예수님의 계보를 기록한 것처럼 누가도 3장에서 예수님의 계보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마태가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윗을 지나 왕의 계보로 이어지는 요셉의 계보를 기록한 반면, 누가는 다윗의 아들 중 나단을 통해서 내려오는 마리아 쪽의 계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는 마리아로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마태와는 달리 아브라함을 지나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누가는 예수님께서 인류 가족의 일원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목격자와 일군된 자들…
누가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1장 1절에서 그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 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여기 “목격자”라는 단어에 주의해 보십시오. 복음은 목격자들에 의하여 전해졌습니다. 여기서 누가가 사용한 목격자라는 단어는 “아우톺타이”입니다. <아우토>는 “that which is of itself”입니다. “그것 자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옵소마이>는 “보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의 의미는 “자신이 직접 보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일종의 의학 용어로써 어떤 환자를 “직접 살펴본다”라는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직접 진찰해 본다는 개념이겠지요. 누가는 “우리는 직접적인 목격자로써 우리가 살핀 바를 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구절에서 “일꾼 된 자들”이라는 단어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들은 복음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일꾼 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여기 일꾼 된 자들이 바로 “Ministers”이며, 이 단어는 헬라어에서 “휘퍼라타이”로써 배 밑창에서 노를 저어 배를 나아가게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였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김으로써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 통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목격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면, 우리는 모두 그분의 복음의 일꾼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을 가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복음의 헌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일꾼 된 자들”이라는 단어가 문자적으로 “배 밑창에서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노를 젓는 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리는 누구도 자기 자신의 영광과 유익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숨겨진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 로마에서 지금 쏘렌토로, 혹은 저 밀라노로 항해를 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는 갑판 위에 서서 노래합니다.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싼타루치아~~ 싼타루치아~” 그는 자유인입니다. 그는 선가를 내고 배를 타고 항해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자유롭게 자신의 행선지를 따라 여행을 하는 동안 배 밑창에서는 노예들이 목숨을 걸고 노를 젓습니다. “전 속력으로!!!”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들은 몸이 부서지라고 노를 젓는 것입니다. “오른 쪽으로!” 혹은 “왼 쪽으로!” 역시 선자의 명령에 따라서 노예들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북을 칩니다 그들은 그 북소리에 따라 노를 젓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일꾼들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원합니다. 그가 배 위에서 이 복음의 확산을 즐기면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시며 이 항해를 즐기실 수 있도록 우리는 숨겨진 곳에서 목숨을 다하여 배를 저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쪽으로 갈지, 왼 쪽으로 갈지, 전 속력으로 갈지, 혹은 좀 더 느린 속도로 갈지 우리에게는 결정권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는 다만 섬길 뿐인 것입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마가는 로마의 크리스천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누가는 헬라인들을 염두에 두고 이 복음서를 썼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일까요? 거기에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재능과 시간과 물질을 아낌 없이 쏟아 부어 다만 그분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이 복음을 위하여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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