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65일통독 요엘,아모스

천국생활 2016. 8. 5. 12:42

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65 일

 


(요엘 1-3장, 아모스 1-9장)



<내용 요약>
요엘은 세 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A. 메뚜기의 재앙(1:1-14)
B. 여호와의 날의 징조들(1:15-2:32)
C. 여호와의 날(3장)
(3:1-15) 대환난
(3:16-21) 천년 왕국

아모스는 크게 세 단원으로 나뉘어집니다.
A.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1:1-2:3)
B.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2:4-6:14)
(2:4-5) 율법을 범한 죄에 대한 유다의 심판
(2:6-16) 부도덕과 신성모독의 죄에 대한 이스라엘의 심판
(3장) 이스라엘의 모든 집안(열 두 지파)에 대한 하나님의 고발
(4장) 과거의 허물로 이스라엘이 벌을 받음
(5장) 미래의 허물로 이스라엘이 벌을 받게 될 것
(6장) 현재 허물로부터 떠나라는 이스라엘을 위한 권고
C. 미래에 대한 환상(7-9장)
(7:1-3) 메뚜기의 환상
(7:4-6) 불의 환상
(7:7-9) 다림줄의 환상
(7:10-17) 역사적인 간주-선지자의 개인적인 경험
(8장) 여름 과일의 환상
(9:1-10) 세계적인 범죄에 대한 환상
(9:11-15) 이스라엘의 회복

오늘은 요엘과 아모스 전체를 통독하겠습니다.

<주요 통독 자료>
1. 주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니…
어제 통독했던 호세아와는 달리 요엘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요엘이 예루살렘과 남쪽 유다에 대한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그의 책에서 발견합니다. 이것은 요엘이 남쪽 유다에서 사역했었다는 것을 입증해 줍니다. 또한 유다의 우상 숭배의 행위에 대한 지적이 전혀 없는 것을 볼 때, 분명 요엘 시대는 아직 남쪽 유다에서 우상 숭배의 현상들이 두드러지기 이전의, 그러니까 남북 왕조가 갈린 때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때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요엘 선지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요엘 선지자가 아모스보다 앞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아모스는 B.C. 790년 경에 사역했던 인물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요엘이 엘리야, 엘리사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합니다. B.C. 880년으로부터 870년 사시에 사역했던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요엘이 선지자들 가운데 자기의 예언을 책으로 기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엘리야나 엘리사도 예언을 했지만 그들이 예언서를 쓰지는 않았으니까요. 이런 것들이 요엘서의 특징입니다.
요엘은 이 책의 서론에서 자기 시대에 있었던 메뚜기의 재앙을 언급합니다. 그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노인들이여, 생애가운데 이런 재앙을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들만 아니라 당신들의 조상들의 날에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재앙이 메뚜기 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우리는 역사적인 기록들을 통해 심각한 메뚜기 떼의 공격으로 한 나라 전체가 황폐화 된 일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메뚜기 떼는 급격히 숫자적인 증가를 보였고, 마치 메뚜기 떼가 구름처럼 하늘을 덮어 태양을 완전히 가릴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겠습니까? 이런 메뚜기 떼들의 공격은 한 나라에서 푸른 색 풀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렸다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황폐함이 그들에게 덮쳐 온 것입니다. 요엘은 이 메뚜기의 재앙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종류의 곤충의 이름은 서로 다른 종류의 곤충들이 아니라 메뚜기 떼들에 대한 다른 이름들입니다. 척 스미스 목사님은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이름이 메뚜기가 성장해 가는 단계들에 따라 붙여진 이름들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메기 같은 분들은 이 이름들이 메뚜기의 특성에 대한 서로 다른 묘사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이름들의 히브리어 단어들을 보통명사로 해석했습니다. 먼저 <팟종이>는 히브리어로 <가잠>인데, 이는 “gnaw off”, 즉 “쓸어놓다. 씹어서 구멍을 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메뚜기 떼들이 날아와서 많은 곡식과 풀들을 쓸어놓아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메뚜기>는 히브리어에서 <아르베>인데, 이는 “swarm”, 즉 “떼로 몰려다니다”라는 뜻입니다. 메뚜기가 떼로 몰려 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란 말이죠. <늣>은 히브리어로 <예케크>입니다. 이는 “lick off”, 즉 “핥아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충>은 <샤킬>인데, 이는 “to devour, to consume” 즉 “찢어발기다, 불사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메뚜기 떼들이 움직이는 모습들 그들이 가져오는 피해의 모습들을 묘사한 명칭들이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이제 요엘은 이 메뚜기 떼들의 공격처럼 한 이족의 공격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우리는 이미 대선지서들을 통하여 바벨론의 공격으로 유다가 얼마나 황폐화 되었었는지를 보았습니다. 요엘은 아주 일찍부터 이 예언을 한 것입니다. 요엘의 논조는 이런 이족들의 공격이 오기 전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성회를 선포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엘은 한 단계 건너 뛰어서 바벨론의 공격이 아닌 전능자에게로부터 쏟아질 진노와 심판의 날(요엘은 이것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요엘의 이야기들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7년 대환난의 이야기와 조합되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그 재앙의 날이 오기 전에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주의 성령을 부어주시는 날이 먼저 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상들을 의아해 하던 사람들에게 그것이 바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야말로 주께서 남종과 여종들에게 성령을 물 붓듯 하시는 날들입니다. 요엘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 2:32)”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어느 때, 어느 곳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공통의 구원의 조건입니다.

2.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북쪽 이스라엘의 멸망을 25년 앞둔 상황에서 여로보암 2세 때에 하나님은 한 목동을 예언자로 세우셨습니다. 그가 아모스였습니다. 우리는 호세아 선지자도 같은 여로보암 2세 때 쓰임 받았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이때는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었고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때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축복하신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고 교만과 게으름에 빠져 있었고, 이스라엘은 온통 우상숭배와 부패한 이방 문화에 물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로보암 2세는 벧엘에 그의 신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시야가 그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지금 막 호화롭고 풍성한 제사가 시작되려 하는 판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제사를 구경하러 왔겠지요. 바로 이 때, “시온에 평안히 거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찐저!” 갑자기 성전 밖에서 소리가 들려 옵니다. “하나님이 너희 사악한 나라를 향하여 심판을 내리시리라.” 신전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거기에는 남루한 옷을 입은 드고아에서 온 아모스라는 목동이 서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선지자가 될 수 있는 어떤 외적 자격 요건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선지자였던 것도 아니고, 그가 선지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모스 7장에 나오는 자신의 배경을 보면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암 7:14-15) 이 때, 아모스는 여호와께서 장차 보이실 한 징조를 선포합니다. 정말 놀라운 예언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며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암 8:9-10).” 이 말씀을 읽으시면 당장 이 예언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시지 않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날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범죄한 이스라엘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라는 것을 선포하기 위하여 여기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밖에는 죄악 가운데 빠진 영혼에 달리 희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의로우시고 화육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우리가 받을 형벌의 자리를 대신하시는 것만이 우리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 예수님의 탄생을 저지하기 위하여 온갖 도전을 해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태를 막아 아브라함의 후손의 탄생 자체를 막으려 했고,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히브리 남아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유다의 후손들을 멸절하려 했고, 수산궁에 하만이라는 자를 두어 페르시아의 히브리인들을 학살하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에는 헤롯의 마음을 충동질하여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2세 미만의 남아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점에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만나 십자가 없는 영광을 가지고 예수님을 미혹하려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은 빌라도의 아내의 꿈을 이용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무산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주께서 이기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패배하셔서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주도하셨고, 사단의 수많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신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누가와 마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정오로부터 세시까지 어두움이 온 땅을 뒤덮었음을 보고했습니다. 특별히 누가는 해가 빛을 잃었다고 첨언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우연한 개기일식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개기일식이었을 확률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보름달이 훤하게 뜨는 바로 그 날이기 때문입니다. 보름달이 뜬다는 것은 달이 태양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위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유월절에는 개기일식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 어두움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진실한 빛이신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행하신 특별한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망이 어찌 영원한 빛을 가둘 수 있겠습니까? 무덤이 어찌 영원히 사시는 분을 가둘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들 모두를 그 칠흑 같은 죄악의 어두움으로부터 부활시키셨습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바로 아모스 선지자의 선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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