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64 일
(호세아 01-14장)
<내용 요약>
호세아는 크게 두 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호세아서 전체를 통독하겠습니다.
A. 개인사-선지자와 그 아내 고멜(1-3장)
(1장) 기생 고멜과의 결혼
(2장) 신실치 못한 고멜, 신실치 못한 이스라엘, 신실하신 하나님
(3장) 고멜을 다시 데려오라는 명령
B. 예언-여호와 하나님과 믿음 없는 나라 이스라엘(4-14장)
(4-5장) 기생 노릇 하는 이스라엘
(6장) 이스라엘(에브라임)이 마지막 날에 돌아옴-현재의 죄악으로 당시엔 심판을 받음
(7-12장)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 마지막 심판을 면하는 이스라엘(에브라임)
(12-14장) 마지막 날에 우상숭배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올 이스라엘
<주요 통독 자료>
1. 호세아서의 내용 전개
이제 대선지서를 모두 끝내고 우리는 소선지서로 나아갑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대선지와 소선지의 차이는 그들이 쓴 책의 분량에 따른 분리일 뿐입니다. 본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소선지서들은 한 권으로 묶여서 “열 두 권(the Twelve)”이라는 제목으로 불렸습니다.
호세아라는 선지자의 이름은 “구원”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라가 심히 부패하고 악했던 때 북 왕조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당시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자못 풍요와 안전을 구가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내적인 부패와 우상숭배, 이방나라들과의 연대에서 들어온 온갖 악한 행위들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호세아가 살아있는 동안 앗수르에 의하여 완전히 패망했습니다. 열왕기하 15-17장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호세아의 메시지는 북쪽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내고 다가올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었지만 그 속에는 이스라엘의 미래의 소망도 담겨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자신이 선포할 메시지의 내용을 그의 개인적인 삶 안에서 미리 경험했습니다. 그의 죄악 된 아내의 삶을 통해서 그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개인적인 아픔은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위한 일종의 교재였습니다.
1-3장은 호세아의 아내 고멜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의 불성실함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고멜은 참으로 호세아의 마음을 찢어놓는 여인이었습니다. 고멜은 호세아에게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떠났습니다. 이 자녀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여호와께서 흩으신다)”, “로-루하마(아버지의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렇게 세 아이를 낳아놓고 고멜은 호세아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가서 그녀를 찾아 데려오라 하십니다. 결국 노예 시장에 팔려버린 그녀를 호세아가 다시 찾아 옵니다. 보십시오. 호세아는 본래 자기의 아내였던 여자를 돈 주고 다시 사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용서와 사랑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호세아서의 전개에서 고멜의 회개와 변화된 삶의 증거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멜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결혼한 나라였습니다(출 34:14-16, 렘 3:14). 하지만 이스라엘은 고멜처럼 범죄했고, 이방의 우상들을 숭배함으로써 영적인 간음에 빠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우상들 앞에 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숭배는 그들에게 일시적인 쾌락을 주었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노예시장에 팔린 고멜처럼 이방 나라에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다시 찾아내고, 다시 그녀를 값을 지불하고 데려온 호세아처럼 구원의 하나님은 구속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 스토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핏값을 지불하시고 보래 그의 소유된 백성이었던 우리들을 죄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4-7장에서 고멜로 인하여 호세아를 손가락질 하는 이웃 사람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여러 가지 비유들을 들어 정죄하십니다. “쉬 없어지는 아침 구름, 반쪽만 구운 전병처럼 한쪽으로 매우 종교적인 것 같지만 다른 쪽은 전혀 구워지지 않아 먹을 수 없는 그런 백성들, 영적 능력을 상실한 채 백발이 얼룩얼룩 능력을 상실해 가는 백성들, 애굽 같은 나라들과 정치적인 야합을 하기 위하여 철새처럼 날아가 버리는 철없는 비둘기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곳을 휘어져 나가는 속이는 화살 같은 그들…” 이와 같이 오늘 현대 사회의 흉포한 죄악들과 방불한 죄악을 안고 살면서 거짓되고 얄팍한 종교적 행위들로 그것을 덮어 버리려는 더 나쁜 죄악의 모습에 대한 호세아의 신랄한 지적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8-10장에서 호세아는 다가올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호세아는 비유에 능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미리 볼 수 있었고 이것을 다양한 묘사들로 표현합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덮쳐 오는 독수리 같았고, 분노의 광풍 같았고, 삼키는 불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열방으로 흩어집니다. 심은 것(죄악)보다 훨씬 더 많은 것(형벌)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12장과 13장에서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아래에서 부와 성공에 대해 이스라엘이 자랑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직 광풍을 키우는 행위일 뿐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결국 가들의 자랑은 아침 안개처럼 광풍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4장은 하나님의 아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끊임 없는 사랑의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놀랍습니다. 끝없는 이스라엘의 배신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 모두 배우기 원하며, 그 사랑 앞에서 우리 모두 녹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호세아서의 주제, 그리고 예수님
호세아서의 주제는 나누인 마음, 혹은 갈리어진 마음(Divided Heart)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두 갈래 혹은 그 이상으로 나뉘어져 버린 그런 찢겨진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 왕조로 나뉠 때부터 북쪽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우상숭배를 겸하여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열 지파를 이끌고 북 왕조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이 볼 때,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었는데도 백성들이 남 왕국 유다에 속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은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북쪽 단과 북 왕국의 수도와 같았던 벧엘 두 곳에 제단을 세우고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던 것처럼 우상을 세워 그곳을 여호와의 제단이라고 부르면서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고 그 제단에 와서 제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때로부터 이스라엘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사실은 우상숭배의 행위들을 공식적으로 병행하는 이중적인 신앙의 나라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여로보암 2세의 치적으로 이스라엘은 많은 정치적 물질적 권세와 풍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삶의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면 하실수록, 풍요해지면 질수록 그들은 우상을 더욱 많아지게 했고, 그들의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이 영적 상태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세우셔서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창녀 고멜과 결혼을 하라고 명하셨고, 그녀의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이면 회당에 가서 토라를 읽고 약간의 기도를 드렸겠지요. 하지만 나머지 한 주간은 자신의 정욕에 충실하며 살았던 것이 당시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안식일엔 하나님을 섬기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셨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갈라져버렸기 때문에 안식일에 매몬을 숭배하려 했고, 돈을 찾아 마침내 성전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도 항상 같은 문제가 도전해 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항상 나뉘지 않은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을 배워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수 24:15)”고 선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엘리야가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며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그 백성들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다(왕하 17:33)”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자처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 속에, 혹은 예배 속에 어디서 옮겨온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국적불명의 형식들과 풍속들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타협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사탄은 예수님께 “뭐 그렇게 고지식하게 할 필요 있느냐? 왜 굳이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도전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나한테 한 번만 절해라. 나와 타협하자. 그러면 천한 만국과 그 영광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언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 역시도 나뉘지 않은 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드려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16).” 우리의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다윗처럼 정직해야 합니다. “나는 내 자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시오.” 이것이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고,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 속에 악한 길이 있는가 보옵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우리도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Give me a totally undivided heart that I may fear Your name.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찬양의 한 구절입니다. “절대로 나뉘지 않은 마음을 주셔서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호 14:4-7).”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그늘에 거하는 자들마다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선언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아는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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