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60 일
(에스겔 13-24장)
<내용 요약>
에스겔은 크게 네 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영광; 선지자의 사명(1-7장)
2. 여호와의 영광;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포로됨;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심(8-24장)
3. 여호와의 영광; 나라들의 심판(25-32장)
4. 여호와의 영광과 다가올 왕국(33-48장)
오늘 우리는 에스겔 13-24장까지 통독하겠습니다.
13장) 거짓 선지, 여 선지자들에 대한 예언
14장) 장로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예언과 예루살렘의 멸망의 확정
15장) 포도나무의 환상
16장) 버려졌으나 하나님께 입양된 아기 같은 예루살렘
17장)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비유와 해석
18장) 죄의 삯은 사망
19장)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여호와의 애가
20장) 국가의 죄에 대한 재조명, 다가올 심판과 회복
21장) 바벨론 왕이 다윗 집안의 마지막 왕을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제거하다
22장) 예루살렘의 신성모독 죄를 재조명함
23장) 두 자매들(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비유
24장) 끓는 가마의 비유
<주요 통독 자료>
1. 소망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예루살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버리신 것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신 것이 규명된 이상 예루살렘에는 어떤 소망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통독 범위에서 우리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상황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명 가지 비유를 읽게 됩니다. 15장의 포도나무의 비유, 16장의 길가에 버려진 피투성이 아기로서 하나님께 입양되어진 아기의 비유, 17장이 두 마리의 독수리의 수수께끼 18장과 19장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기본 정신의 재설명, 20장 후반부에 나오는 불타는 삼림의 비유, 23장의 두 자매의 비유, 24장의 끓는 가마의 비유… 이 비유들은 저마다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어느 나라보다도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타락하고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는 영적 현실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15장에 나오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 5장에서 포도나무의 노래를 들려주셨습니다. 애굽에서 옮겨다가 온갖 애정을 쏟아 가나안에 조성해 주신 포도원으로 이스라엘이 비유됩니다. 좋은 포도 맺기를 기대했던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드린 것은 들 포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자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들포도로 전락했고, 렘 2:21의 예언처럼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고, 신 32:32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대로 결국은 쓸개포도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도나무의 매력은 오직 하나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있어서 열매를 맺는 일 이외에 어떤 용도로 쓰여질 수 있습니까? 포도나무로 가구를 만들 수 있습니까? 포도나무로 무슨 장식품을 만들 수 있습니까? 포도나무로 가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포도나무는 결이 형편 없습니다. 무슨 가느다란 실들을 묶어 놓은 것처럼 부서져 버리는 것이 포도나무입니다. 그걸로 벽에 뭘 걸 수 있는 못도 만들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포도나무는 오직 한 가지 밖에는 용도가 없습니다. 바로 불쏘시개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를 세우셔서 다시금 좋은 포도 열매를 맺으라고 권고하셨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좋은 포도는 고사하고 들포도도 맺지 못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불에 던지우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열매를 주님께 드리고 있는지… 열매 맺는 일 이외에는 아무 일에도 쓸 수 없는 죄인인 우리들을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어 주셨으니, 말씀의 능력을 따라 좋은 열매 맺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길은 하납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의 비유처럼 생명이 넘치는 원가지 되시는 예수님께 붙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지처럼 열매를 절로 맺게 될테니까요.
2. 율법과 복음
에스겔 18:1-4은 구약의 율법의 기초가 무엇인지 아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범죄한 그 영혼이 반드시 죽으리라”는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가르쳐주십니다. 아버지의 죄로 아들이 벌을 받거나, 아들의 죄로 아버지가 벌을 받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죄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른다고 선포하십니다. 사실 모든 나라들이 가진 법의 기초는 보복의 원칙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역사 중 최초의 성문헌법으로 일컬어지는 함무라비 범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의 원칙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보복의 주체가 타락했을 때 그 법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왕이나 혹은 재판부가 타락했다면 그 법은 오직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만을 희생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그 법을 집행하시는 주체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점에서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뇌물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이유로든 굽은 판결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집행 방법은 바로 죽음입니다. “죄 지은 그 영혼이 반드시 죽으리라!”
이와 같이 율법의 기본 원칙이 “범죄한 그 영혼이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이고, 그 법을 집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에서 우리 인생들은 희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이 땅에 태어났고, 사람에게 한 번 죽는 정하신 것이며 그 후에는 우리가 모두 심판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법의 집행자이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한 마디 변명의 여지도 없이 영원한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의 정죄 아래에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게 된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를 다시는 끄집어 내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에스겔 선지자가 선포합니다.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겔 18:22).” 이런 기막힌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언제 의로운 일을 행했습니까? 우리가 의로운 일을 행할 수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우리는 오직 육체에 속한 일로만 가득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의로운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이것보다 의로운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요한복음6:29>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의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인하여 우리를 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믿음의 일은 인종이나 어떤 지식의 유무, 혹은 빈부귀천에 상관이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 되어지는 복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과 복음의 대조입니다. 율법은 범죄한 그 영혼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는데, 복음은 예수님께서 범죄한 영혼을 대신하여 죽으셨고, 그의 죽으심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믿는 것을 범죄했던 영혼의 의로 여겨주셔서 그를 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과 정죄의 메시지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원리를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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