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59 일
(에스겔 01-12장)
<내용 요약>
에스겔은 크게 네 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영광; 선지자의 사명(1-7장)
2. 여호와의 영광;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포로됨;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심(8-24장)
3. 여호와의 영광; 나라들의 심판(25-32장)
4. 여호와의 영광과 다가올 왕국(33-48장)
오늘 우리는 에스겔 1-12장까지 통독하겠습니다.
1장) 영광의 나타나심
2장) 선지자의 소명과 감당할 능력을 주심
3장) 선지자의 준비; 파수꾼의 사명
4장) 예루살렘의 심판
5장) 선지자가 머리를 미는 표적
6장) 예루살렘에 떨어진 칼; 남겨진 자들의 구원
7장) 예루살렘의 최후 파멸에 대한 예언
8장) 영광의 환상;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성전의 타락(멸망의 이유)
9장) 쉬카이나 글로리(임재의 영광)의 떠날 준비
10장) 쉬카이나 글로리(임재의 영광)가 성전을 떠나다
11장) 예루살렘의 통치자들에 대한 예언
12장)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파멸을 선포함
<주요 통독 자료>
1.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의 관계… 그리고 에스겔의 소명
유다의 포로들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옮겨졌는데, 각각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1차 포로들은 주로 왕족, 귀족 계통의 엘리트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교육을 시켜서 왕의 측근에서 왕을 돕는 내시들로 사용하기 위하여 똑똑하고 유능한 젊은이들을 잡아간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본 성에서 왕실 재정으로 공부도 하고 무술도 연마하면서 왕의 정치적 지원자들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젊은이들입니다. 반면 2차 포로들은 주로 느부갓네살의 치적 중 하나인 왕의 운하(the Royal Canal) 건설 현장에서 강제노동을 착취당하기 위하여 끌려간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읽는 이 에스겔서의 에스겔 선지자가 바로 이 2차 포로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현대까지도 신비로 일컬어지는 소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공중궁전(the Hanging Garden)을 건설한 사람입니다. 그는 거대한 토목 공사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 치적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왕의 운하였던 것입니다. 이곳은 바벨론 본성으로부터 약 300Km이상 북쪽으로 떨어져 있었던 유프라테스 강과 그발 강이 만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바벨론 본성, 즉 대도시에서 예언활동을 하고 있던 시대에 에스겔 선지자는 저 시골의 포로수용소에서 예언 활동을 한 것입니다. 또한 에스겔이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던 때는 시드기야 통치 제 6년이었고, 이때는 예레미야가 50대 초중반의 나이로 예루살렘에서 아직 선지자로 활동을 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이제 이 선지자들이 한 눈에 보이시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면서 “하늘이 열리는 경험”과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는 경험”, 그리고 “여호와의 권능이 그 위에 있는 경험”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도 이 세 가지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두 세 군데 하나님의 보좌의 광경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바로 그 중의 하나를 본 것입니다. 이것은 에스겔이 사명을 감당할 때에 그가 항상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 사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능력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는 축복입니다. 남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공부하는 것도 큰 은혜가 되지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히 듣는 것, 이것이 주님의 일군들이 경험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 통독을 하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묵상할 때에 우리의 중심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그리고 이 성경 책 중에서 특별히 자신에게 적용되어질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얻는 것이 주님의 일군으로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에스겔 3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십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꿀과 송이 꿀처럼 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에스겔에게 있어서는 이 두루마리가 입에서는 꿀처럼 달았는데, 배에 들어가서는 쓰디쓴 고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참으로 꿀송이처럼 달지만 그 말씀을 정말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쓰디쓴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씀을 전하는 삶은 우리들에게 많은 희생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가져야 할 세 번째 경험은 바로 하나님의 권능이 그 위에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에헤츠켈; 여호와로 인하여 강하게 된 자>입니다. 돈이나, 권세나, 지식이나, 세상의 어떤 명성으로 강하게 된 자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강하게 된 사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종의 조건인 것입니다. 성경 통독에 참여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2. 성전을 떠나시는 하나님의 영광(쉬카이나 글로리)
에스겔이 하나님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예루살렘은 멸망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로수용소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바벨론은 곧 망할 것이며 유대인들의 포로생활은 곧 끝날 것이라는 무지개 빛 환상을 주는 예언을 했습니다. 마치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유다의 패망과 70년간의 포로생활에 대한 예언을 했을 때,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예레미야를 감옥에 던지고 유다 백성들을 현혹했던 것과 같은 일이 그발강 가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역사의 순간에 항상 같은 도전이 인간으로부터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습니다.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에스겔 4장으로부터 8장까지에서 에스겔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했던 예언과 같은 내용의 예언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8장의 초반부에 보면 에스겔이 그발 강가의 포로수용소 안에 있었던 자기 집에 유다 장로들과 함께 앉아 있다가 갑자기 들림을 받습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그는 예루살렘 성전 앞에 서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올라갔을 때에도 이런 경험을 한 것이었을 겁니다. 요한이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하늘로 올라가 보좌를 보았던 것과 같은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북쪽 성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벽에 하나의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 구멍을 파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구멍을 파헤쳐 보니 문이 하나 나옵니다. 그리고 그 문을 열어보니 그 안의 사면 벽에 온갖 부정한 곤충들과 가증한 짐승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들이 그려져 있었고, 70인의 장로들이 각기 손에 향로를 들고 그 우상들 앞에 향연을 피워 제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연기가 구름같이 오르는 것을 에스겔이 보았습니다. 바로 이 북쪽 성벽 안쪽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의 바로 옆에 이런 밀실이 있었고 거기에서 추악한 우상숭배가 행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북문으로 들어가시는데 여인들이 앉아 타무즈, 즉 바벨론의 우상을 향하여 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랄 것 없다. 네가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고 하시면서 그를 데리고 성전 안 뜰에 들어가시는데,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 다섯 명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동편을 향하여 동방 태양신에게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9장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살육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성문에 선 것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임재의 아름다운 영광, 곧 쉬카이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룹들 사이에서 떠올라 문지방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옷을 입은 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애통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시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날 때에 엄청난 심판이 임하는 것을 에스겔은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심판이 성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연장자들, 지도자들부터 이 심판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마에 표식이 있는 자들은 손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히브리 말로 <쉐키나>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임재의 영광”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여기에 임하여 계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나타내 주시는 현상이라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바로 이 임재의 영광, 즉 쉬카이나 글로리의 현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는 동안 늘 지성소 위에 임하여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리고 지성소에 가득 드리운 조요한 빛, 혹은 영광의 광채, 때로는 연기처럼 자욱한 형상들로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현상을 바로 쉬카이나 영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그곳 성소에도 가득 드리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하나님을 저버린 일들로 인하여 이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그들의 성소를 떠나시는 것입니다. 9장으로부터 11장 까지의 말씀에서 지성소에서 나오신 임재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머무르고 동문에 머물고, 동문을 나가 감람산 위에서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국 이제는 더 이상 예루살렘을 심판으로부터 지킬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생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함께 하실 때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우리의 찬송 아닙니까? 오늘 우리의 통독 분량 속에서 우리는 이 비통한 모습,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그들을 떠나시는 모습을 봅니다. 통독에 함께 하시는 모든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 쉬카이나 글로리가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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