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36일 통독 욥32-42장

천국생활 2016. 7. 6. 15:26

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36 일

 


(욥기 32-42장)

<내용 요약>
욥기는 크게 세 단원으로 나누입니다.
1. 하늘의 광경과 땅의 일들(1-2장)
2. 대화(3-41장)
3. 욥의 갑절의 축복(42장)
오늘 우리들의 통독은 욥기 32-42장을 통해 계속됩니다.

32-37장: 엘리후의 변론
38-42장: 여호와 하나님과 욥

<주요 통독 자료>
1. 의기양양한 욥과 엘리후의 일격
26장에서 31장까지 이어졌던 욥의 마지막 변론에 친구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을 32:1이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욥이 끝까지 자신의 의를 주장하니 이제 친구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엘리후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엘리후는 부스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들의 명단 가운데 부스가 나옵니다. 엘리후는 분명 아랍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후는 욥의 친구가 아니라,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청중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든 엘리후는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지금까지의 변론을 통해서 욥은 “하나님께서 뭔가 자신에게 실수를 하고 계시다”라는 논지를 펼쳤고,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의롭다는 주장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욥의 친구들이 올바른 변론으로 욥에게 정확한 답변은 주지 못하면서 다만 욥을 정죄하기만 했었던 것 때문입니다. 엘리후는 섣불리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던 듯 합니다. 그는 자기보다 연장자인 이들이 문제를 잘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결국 아무 결론도 얻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제 자신이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 32:8에서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엘리후는 사람이 영적 존재이며,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에만 인생은 진정한 지혜를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문제를 자신들의 지적 수준에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에겐 성령의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엘리후는 정확히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오직 욥의 마음에 고통만 가중시켜 놓고, 자존심만 건드려 욥을 더 꼿꼿하게 해서 교만의 목을 들고 하나님께 대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욥에게서 그것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의 변론의 가장 큰 차이는 엘리후가 먼저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는 것과, 또한 자신을 욥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내세우려 하지 않고 자신도 욥과 똑 같은 흙으로 지음 받은 연약한 존재로서 욥의 고난을 이해한다는 설득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33:19-22에 묘사된 인간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묘사는 어쩌면 욥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엘리후는 매우 단호했습니다. 오히려 친구들이 전혀 하지 못했던 말들까지 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교만을 철저히 부수어 주었고, 그가 아무리 의로워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주장할 육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욥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그러면서 욥이 고난을 더 받아야 한다는 무서운 말도 서슴없이 해 버립니다. 하지만 욥은 엘리후에게 한 마디도 반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2. 엘리후의 변론의 핵심: 중보자가 필요한 인간
엘리후의 변론의 핵심은 바로 욥 33:23-28에 있습니다.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복음입니까? 여기에서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는 “One among a thousand messenger(일천 메신저들 중 한 분)”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불쌍한 죄인을 위한 중보자로 하나님과 이 사람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하나님께서 바로 이 죄인을 위한 대속물을 받으셨으므로 이 사람을 구덩이(지옥)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는 구속의 선포를 주시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의 고난을 바로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숨겨진 죄를 짓고 있다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할 만큼 남다른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항변합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실수를 하셨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과 친구들이 만들어낸 결론입니다. 엘리후는 34:10에서 하나님께서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고,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엘리후는 34:36-37에서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욥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욥이 자신을 변호하는 일을 그만두고 오히려 하나님을 변호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까지 시련을 더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이지만 이것이 욥을 사랑하는 엘리후의 진심일 것입니다.

3. 무너지는 욥
엘리후는 36:24-25에서 욥에게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따른다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오늘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아주 간단한 몇 가지 진리가 확실하다면 그 외의 것들은 바로 그 믿음 안에서 다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37:21의 엘리후의 변론이 참 매력적입니다.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엘리후 역시 욥의 문제에 대해 확실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솔직한 답변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엘리후는 욥으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해답임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변론을 했습니다. 엘리후는 35:10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노래했습니다. 이때까지 욥은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친구들의 변론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엘리후가 말을 마쳤을 때 욥은 한 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욥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조차 없는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욥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자 드디어 하나님께서 직접 욥에게 입을 여십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펄펄 살아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문제에 개입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너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 속에 발을 들여 놓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대장부 답게 허리를 묶고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욥이 전혀 대답할 수 없는 놀라운 질문들을 퍼부으십니다. “내가 천지를 창조할 때에 너는 어디 있었느냐? 우주의 크기를 누가 정했는지 네가 아느냐? 아무런 주초도 없는데 이 거대한 별 지구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원리를 네가 아느냐?” 욥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0여 년 전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이런 과학적 지식이 있었을리 없지 않습니까? 해가 뜨고 지는 원리에 대해, 땅과 바다의 정확한 치수에 대해, 별자리들에 대해, 번개와 구름의 원리에 대해, 동물의 세계에 대해, 95개의 문항 속에 100가지가 넘는 질문들을 퍼부으시는데, 욥은 한 마디도 대답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욥은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4. 욥의 고백, 그리고 갑절의 축복
욥기 42장은 하나님께 대한 욥의 항복선언문으로 시작이 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던 하나님께 욥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라며 이제껏 자신이 잘난 척 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것이 실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고백한 무지의 소치였음을 고백합니다. 드디어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탄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욥이 상실한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려 주십니다. 그것도 갑절로… 친구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던 욥은 이제 친구들을 용서해 주는 자리에 섰습니다. 친구들이 욥에게 용서를 구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욥의 소유는 이전보다 꼭 두 배로 채워졌습니다. 저는 욥기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욥의 고난을 다루고 있는 장이 41장이나 됩니다. 그런데 욥의 축복에 대해서는 고작 마지막 한 장이 할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장의 축복만으로도 욥은 지난 41장의 고통을 모두 잊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축복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욥기에서 욥이 받은 축복에 대해 전혀 강조하지 않으려고 작정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욥처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욥처럼 갑절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고난과 역경 가운데 순교로 생을 마쳐야 하는 사람들도 허다하게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이 이 땅에서 모두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처럼 하나님을 완전히 아는 기쁨 가운데 선다면 우리는 축복입니다. 분명히 욥은 당대 최고의 의인이었지만, 이 고난을 통해서 더욱 완전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욥처럼 완벽해 보이는 의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이 욥기의 최고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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