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38 일
(시편 022-041편)
<내용 요약>
시편은 크게 다섯 권으로 나누입니다.
제 1 권 창세기 시편 집 (1-41편) – 복있는 사람에서, 타락한 사람으로, 그리고 회복으로… (사람을 주제로 한 시편들)
제 2 권 출애굽기 시편 집 (42-72편) - 파멸과 구속 (이스라엘을 주제로 한 시편들)
제 3 권 레위기 시편 집 (73-89편) – 어두움 (성전을 주제로 한 시편들) 성막, 성전, 주의 집, 회중 등의 단어들이 거의 모든 시편에 등장함
제 4 권 민수기 시편 집 (90-106편) – 재앙과 보호하심 (땅을 주제로 한 시편들)
제 5 권 신명기 시편 집 (107-150편) – 완전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제로 한 찬양들
오늘 우리들의 성경 통독은 시편 22-41편으로 이어집니다.
22편: 그리스도의 십자가, 23편: 우리의 큰 목자이신 그리스도, 24편: 우리의 목자장으로서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 25편: 은총과 구원을 간구함, 26편: 개인적인 의에 기초한 간구,
27편: 기도, 28편: 고난의 때의 부르짖음, 29편: 태풍 속에서의 주님의 음성, 30편: 치료를 인한 찬양, 31편: 고난에서의 구원을 위한 간구, 32편: 회개의 축복을 가르치는 교훈 시, 33편: 구속 받은 백성들의 찬양의 노래, 34편: 구속을 위한 찬양의 노래, 35편: 대적들로부터의 구원을 간구함, 36편: 악한 자의 그림, 37편: 미래의 축복에 대한 언약, 38편: 육체의 질병으로 말미암은 참회의 시, 39편: 장례를 위한 시편, 40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언하는 메시아 시편, 41편: 유다의 배신을 예언하는 메시아 시편
<주요 통독 자료>
1. 22, 23, 24편 시리즈
이 세 편의 시들은 메시아 시편인 22편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예언적인 시편 시리즈입니다. 시편 22편은 시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장 많은 예언을 담고 있는 시편일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소위 가상칠언의 첫 번째 말씀을 시작으로 다윗은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의 광경을 그대로 보고 그린 것처럼 정확하게 십자가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서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는 사람들의 냉소,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는 로마 군인들의 모습, 시편 22편은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모두 담고 있는 시편입니다. 혀가 이틀에 들어붙는 목마름, 모든 뼈마디마다 벌어지는 끔찍한 고통,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의탁하고, 어머니께 요한을 아들로 소개하는 광경 이런 모든 광경들이 시편 22편에 그대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편 22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시편 23편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주는 시편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라고 노래합니다. 이 구절을 영어 성경에서 보면,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즉 “내가 비록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를 통과해 나갈 찌라도”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는 구절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승리의 광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편 24편은 예수님의 승천의 광경을 묘사하는 시편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 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 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라는 구절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의 보좌에 오르시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의 십자가, 시편 23편은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시편 24편은 예수님의 승천을 보여주는 시리즈 시편입니다.
2. 또 한 편의 메시아 시편, 시편 40편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면서 다윗을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성령께서 선지자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그러므로 신약 성경은 다윗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으며, 또한 다윗의 시편 가운데 여러 편이 우리 예수님의 생애와 직접 연관되어진 예언으로 인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편 40편에서 6, 7절 그리고 8절이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예언입니다. 우선 이 말씀에서 다윗은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KJV에서 보시면 “Mine ears hast thou opened…”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주께서 내 귀를 뚫으셨다”는 의미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종의 규례 가운데 귀 뚫린 종에 관한 규례가 있었습니다. 모든 종들은 6년 동안 주인에게 봉사했으면 7년째는 안식년을 맞아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이 주인을 너무 사랑한다든지, 주인에게서 자유함을 얻더라도 그 주인의 종으로 사는 것보다 행복할 자신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이 허락한 여종과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은 경우 안식년을 맞은 자신만 자유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두고 나갈 수 없는 상황일 때, 이 종은 주인에게 가서 비록 안식년이 되었지만 자신을 주인에게 평생토록 노예로 자신을 예속시키기 원한다고 하면, 주인은 이 종을 문설주에 데려가서 문설주에 귀를 대고 못으로 구명을 뚫어 주인의 이니셜이 담긴 귀고리를 걸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종은 “귀 뚫린 종”이라 불리며, 이 사람은 평생토록 주인에게서 나갈 수 없는 예속된 종(a Bond Slave)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스스로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자신을 낮추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종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자신을 우리 인류의 구속을 위한 제사로 드리실 때에 더 이상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바치는 그런 제사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5-7의 말씀이 바로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메시아 시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모든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성경이 자신에 관하여 말한 모든 것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스스로 귀 뚫린 종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셨으므로,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귀 뚫린 종으로서 자신을 바쳐야 할 때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서신서의 대부분에서 문안을 할 때,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며 또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은…”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종”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바로 <둘로스>이며, 이 단어가 바로 “Bond Slave”, 즉 귀 뚫린 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영원히 주님께 예속된 종이 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모두의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 가룟 유다의 배신이 예언된 메시아 시편, 시 41편
시 41:9은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요 13:18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이렇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열 두 명의 제자를 택하셨지만 그 중 하나는 처음부터 마귀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배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일부러 죄에 빠뜨리기 위하여 그의 악을 조장하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끝없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의 재정을 맡고 있으면서 매일 연보궤에서 돈을 훔쳐갔습니다. 그가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을 사실 제자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가룟 유다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이렇게 예수님을 배신하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아셨다는 뜻입니다. 어떻든 이 시편은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언한 메시아 예언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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