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40 일
(시편 073-089편)
<내용 요약>
시편은 크게 다섯 권으로 나누입니다.
제 1 권 창세기 시편 집 (1-41편) – 복있는 사람에서, 타락한 사람으로, 그리고 회복으로… (사람을 주제로 한 시편들)
제 2 권 출애굽기 시편 집 (42-72편) - 파멸과 구속 (이스라엘을 주제로 한 시편들)
제 3 권 레위기 시편 집 (73-89편) – 어두움 (성전을 주제로 한 시편들) 성막, 성전, 주의 집, 회중 등의 단어들이 거의 모든 시편에 등장함
제 4 권 민수기 시편 집 (90-106편) – 재앙과 보호하심 (땅을 주제로 한 시편들)
제 5 권 신명기 시편 집 (107-150편) – 완전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제로 한 찬양들
오늘 우리들의 성경 통독은 시편 73-89편으로 이어집니다.
73편: 악인의 형통에 대한 오해, 74편: 바벨론에 의한 성전의 파괴에 대한 부르짖음, 75편: 구원의 노래, 76편: 보좌에 앉으신 메시아 예언, 77편: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에 대한 찬양, 78편: 모세에서 다윗까지의 이스라엘 역사, 79편: 대환난 중의 이스라엘, 80편: 이스라엘의 목자에게 드리는 기도, 81편: 구원의 노래, 82편: 백성들의 재판관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83편: 심판을 위한 부르짖음, 84편: 하나님의 집을 향한 갈망, 85편 이스라엘의 미래의 회복, 86편: 미래의 왕국을 위한 다윗의 기도, 87편: 하나님의 도성, 시온, 88편: 고난 가운데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 89편: 다윗의 언약 시편
<주요 통독 자료>
1. 시편 제 3 권: 레위기 시편집(73-89편) – 거룩함과 제사 (성전을 주제로 한 시편들)
우리가 레위기를 통독할 때, 레위기는 예배의 책이라고 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들의 시편의 세 번째 묶음은 바로 레위기 시편들의 묶음입니다. 레위기가 예배의 책인 것처럼, 레위기 시편들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과 성별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피흘림과 속죄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시편들입니다. 이 묶음의 시편들 속에는 끊임없이 성전이 보입니다. 성전에 대한 사모함, 성전에 들어가는 노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성전에서 주님을 수종 드는 제사장들의 모습들… 이런 내용들이 이 세 번째 묶음이 시편들의 주제입니다. 자, 레위기 시편 집의 첫 번째 시인 73편을 보십시오. 이 시는 37편에서 다윗이 말한 “악인의 형통을 질투하지 말라”는 내용들을 다시 반복적으로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아삽의 시라고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다윗의 시가 다윗 당시에 성가대를 이끌고 있었던 음악가 아삽에 의하여 곡이 붙여져서 아삽의 시로 알려진 시들이 더러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튼 여기 73편에서 시인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하마터면 실족할 뻔 했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성전에 들어갈 때, 즉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에 비로소 악한 자의 형통이 일시적인 것이며, 하나님께서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는 고백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레위기 시편 묶음의 첫 번째 시편부터 성전과 예배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저 유명한 84편 역시도 세상 속에서 천 날을 사느니 주님 앞에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고, 궁궐에 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낫다고 고백하면서 주의 집을 향한 말할 수 없는 갈망함과 사모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시편들은 바로 이런 내용의 시편들입니다.
2. 셀라- Stop, Watch, and Listen
우리가 시편을 읽다 보면 가끔 “셀라”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이 “셀라”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높인다(to Lift Up)”는 의미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로 본다면 이 셀라는 그 부분에서 소리를 높이라는 액센트의 표시로 볼 수도 있고, 또한 “올라간다, 상달된다”라는 의미에서 “아멘”과 같은 의미의 단어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셀라”는 많은 때에 일종의 음악 부호로서 쉼표로 해석됩니다. 시편은 히브리 사람들의 일종의 찬송집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아주 존경하는 강해설교가인 버넌 메기(J. Vernon McGee)라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이 “셀라”라는 단어를 미국에서 기차길 건널목에 써 있는 세 가지 표지판, 즉 “서자(Stop), 보자(Watch), 듣자(Listen)”의 의미로 해석합니다. 미국에는 지금도 철길을 건너가는 찻길바다 이 표지판이 붙어 있으며, 스쿨버스 같은 공공 운송 차량들은 모두 이 표지를 지켜야만 합니다. 일단 철도 건널목에 오면, 우선 멈추어야 합니다. 기차가 전혀 오지 않더라도 양쪽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며, 운전석과 조수석의 유리창을 내리고 반드시 소리가 나는지 확인을 한 후에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메기의 이 해석에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격정과 분노, 혹은 실망과 좌절에 사무쳐서 우리의 이성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고조된 감정에 따라 행동을 하면 우리는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멈추고 우리 주님을 바라보고, 또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템포를 쉰 후에 행동을 하게 되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눈으로 상황을 보게 되고, 승리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편들 가운데 이 “셀라”가 모두 71회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어떤 상황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절망과 낙심이 묘사된 후에 “셀라”가 한 번 나오고 나면, 그 다음엔 그 상황들을 우리 주님께 기도 가운데 가져오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셀라”가 나온 후에는 주님으로 말미암은 큰 승리의 감동과 기쁨에 들어찬 환희의 찬양으로 시편을 끝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 흥분되십니까? 아니면 절망되십니까? 실망하고 낙심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셀라” 부호를 떠올리십시오. 모든 행동을 멈추고 한 번 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길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감사와 감격의 찬양으로 들어차게 될 것입니다.
3. 또 한 편의 메시아 시편, 제 89편
89:4을 보면,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에 의하여 인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 13:23).”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났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눅 1:32-33; 69).”
4. 고라 자손들의 시편, 84편
여러분이 민수기 26장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땅 속에 삼키운 바 된 고라의 이야기를 읽으셨을 것입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지도자로서의 기름부으심에 도전하다가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그의 자녀들이 그 아버지의 반역에 참여하지 않고 살아 남아 훗날 역대상 9장과 26장을 보면, 성막이나 성소의 문지기직을 맡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 중에 이와 같이 성소의 예배를 위한 찬양 사역자들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진노 중에라도 은총 베풀기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고라 자손들은 성전을 장악하려다가 죽임을 당했던 아비와는 달리, 주의 성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영적 갈망함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이 시편 기자는 적어도 하나님의 집, 성소에 들어가는 일을 마치 작은 참새 혹은 제비가 자기의 둥지를 찾아가는 것과 같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흠모할 만한 일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눈물 골짜기로 통행하더라도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힘을 더 얻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라의 집안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사장을 돕는 직무를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고라는 이것이 불만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신 기름 부으심을 제쳐두고 남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명에 눈독을 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라는 아론의 직무에 도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참화로부터 살아남은 그 후손들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고,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낫다”는 고백을 가졌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고 거기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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