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13 일
(신명기 18-34장)
<내용 요약>
신명기는 크게 네 단원으로 나누입니다.
1. 광야여행을 뒤돌아봄(1-4장)
2. 율법의 재해석-사랑과 순종(5-26장)
3. 약속의 땅에서의 미래-축복이냐 저주냐(27-30장)
4. 모세의 최후(31-34장)
이중에서 우리는 오늘 18-34장까지를 통독하겠습니다.
18장: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참 선지자들의 구별법
19장: 도피성들; 토지분쟁의 문제; 율법 집행의 공정성
20장: 전쟁의 규례
21장: 살인의 문제; 전쟁포로 여인과의 결혼; 장자권; 패역한 아들의 심판
22장: 잡다한 규례들
23장: 세상과 육체와 마귀
24장: 이혼
25장: 친족구원의 법칙; 아말렉을 지워버려라
26장: 첫 열매와 감사의 제사
27-30장: 이스라엘 앞에 놓은 축복과 저주
31-34장: 모세의 마지막 모습
<주요 통독자료>
1.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0:1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그곳 원주민들과 전쟁을 할 때에, 그들이 막상 전쟁터에 나가서 자기의 대적이 자기보다 수가 많고 강한 것을 알았을 때, 위축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얼마나 많은 때에 이런 상황을 만납니까? 뜻하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전쟁 같은 우리의 삶의 고비가 다가왔는데, 내가 맞닥뜨려 싸워야 할 상대가 나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에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내가 싸워야 할 환경에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싸워야 할 환경이 크고 강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위축될 테니까요. 또한 약하고 모자라는 자신을 바라보아서도 안됩니다. 자신을 바라보면 더욱 실망 밖에는 안될 테니까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셨습니다. 어떤 문제도 우리가 해결하려 하면 난이도가 너무 높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그 문제의 난이도는 제로입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으시니까요. 사라의 늦은 나이의 잉태를 믿지 못하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도전하셨습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 18:14)?” 앗수르의 산헤립이 185,000명의 군사를 보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편지를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은 내게 속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전쟁에서는 네가 싸울 것이 없나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너희의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그날 밤 천사 하나가 앗수르 군사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한 일은 오직 전리품들을 거두어 오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통독방의 모든 지체들의 삶이 되시기를 간구합니다.
2. 신명기에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가장 익숙한 장이 바로 28장일 것입니다. 수없이 들었던 말씀…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자녀와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지만 여러분은 이 말씀만 읽으시면 안됩니다. 28장은 그 후반부의 말씀과 또한 그 앞에 있는 27장의 말씀과 세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 백성들을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의 골짜기로 데려가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을 거기에 세워 두고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쪽은 에발산에 오르고, 다른 반은 그리심산에 오르라고 하셨습니다. 각각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고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축복의 선포에는 아멘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주가 선포될 때는 그들이 일어서서 “아멘, 아멘” 하며 화답을 하라 하셨습니다. 축복은 하라 안해도 아멘 할테니까요.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축복도 있고 저주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명기가 “사랑과 순종의 책”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래서 그 말씀도 즐거워하지 않고, 불순종하면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알고 계신 대로 불행히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순종과 축복의 역사가 아닙니다. 불순종과 징계로 점철된 역사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받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앞에도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여호수아의 선포가 귀에 쟁쟁합니다. “너희는 오늘날 섬길 자를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이 단원에서의 그리스도>
1. 선지자: 신명기 18장에서는 선지자의 규례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 장차 선지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명한 예언이 있습니다. 18:18인데요. 거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을 받을 것이며, 불순종하는 자는 길에서 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에서 메시아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으로 오신다는 것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역할은 모세와 같은 것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 진쳤을 때, 하나님의 임재에 놀라고 두려워 하던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당신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가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돌아와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인간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가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에게 오시는 그런 주님이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선지자에 대한 예언이 바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보편적으로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와서 광야에서 놀라운 회개의 메시지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을 때, 종교 지도자들은 요한에게 와서 “당신이 그 선지자냐(Are you the Prophet?)”고 물었습니다. 바로 이 예언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분명히 했습니다. “나는 그 선지자가 아니라. 나는 그의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한 광야의 소리라.” 이 말씀은 메시아에 대한 확실한 예언이었습니다.
2. 신명기 21:22-23에 나오는 “나무에 달린 자”는 바로 십자가에 못박히사 우리의 죄를 구속하실 예수님의 정확한 그림자입니다. 모세가 이 글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기는 했지만 모세 자신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법정 최고형은 나무에 사람을 매다는 것이 아니라,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죄수를 나무에 달아 죽이는 형벌은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땅을 거룩한 것으로 여겼고,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땅에서부터 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죄수들은 땅에 묻힐 자격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가 바로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이 형법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장악 아래 있었던 이스라엘에서 탄생하실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기 때문에 모세를 통해 이 예언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십자가의 형벌은 사실 죄수의 시체를 내려서 땅에 장사 지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해가 지기 전에 그 시체를 내릴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그 날은 유월절 명절의 큰 안식일 전날입니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이 죄수들의 시신을 내려서 안식일을 더럽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예수님의 시신이 그날 내려져서 무덤에 장사될 것을 미리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예언의 성취는 십자가에 달린 그 짧은 시간에 죄수가 죽는 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강도는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뼈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으리라는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을 때, 그 영혼을 스스로 떠나 보내심으로써 그 뼈가 꺾이우지 않으리라는 예언을 성취시키신 것입니다. 이 내용들은 나중에 신약을 통독할 때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통독에 함께 하시는 모든 지체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 빠지는 복을 주사, 우리 앞에 놓여진 축복에 함께 참여하게 하시는 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