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5 일
(출애굽기 15-30장)
<내용 요약>
15-18장 : 시내산까지의 여정
1) 구속 받은 신자의 노래 – 수르 광야(15:1-22) – 구원 이후의 신자의 삶이 장밋빛 온상이 아님을 보여줌
2) 마라의 쓴 물이 나뭇가지로 인하여 달게 되다(15:23-26) –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의 쓴 물을 달게 해 줌을 보여줌
3) 엘림의 오아시스(15:27) – 신자의 삶의 열매의 경험을 보여줌
4) 죄의 광야생활과 만나와 메추라기(16장) –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여줌
5) 지팡이로 맞은 반석(17:1-7) – 십자가에 고난 받으사 생수의 강을 공급해 주신 그리스도를 보여줌
6) 아말렉(17:8-16) – 우리의 끈질긴 대적, 우리의 육체를 보여줌(신 25:17-18 참조). 육체를 이기는 길은 하나님께 손을 드는 길 밖에 없음
7) 미디안 제자상 이드로(18장) – 하나님의 지혜와 대조되는 세상의 지혜
19-24장 : 율법의 선포
25-30장 : 성막의 청사진과 대제사장의 의복
<주요 통독자료> 조금 더 디테일을 원하시는 분들은 계속하십시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에는 신자의 삶의 여러 요소들을 보여주는 상징들이 있습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신자가 세상에 머물면 세상의 종이 되고 맙니다. 애굽의 왕 바로는 세상의 임금인 사단을 상징합니다. 신자가 세상에 속하면 사단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됩니다. 홍해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고백이 담긴 세례를 의미합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구원 이후에도 로마서 7장의 바울의 고백처럼 끈질기게 우리 안에서 싸움을 걸어오는 육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육체를 이겨야 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반석의 생수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 부어주심을 의미합니다. 신 광야에서의 생활은 믿기는 믿는데 아직도 육체의 지배를 받는 육신적 신자의 삶(Carnal Christian Life)을 의미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삶을 의미합니다. 가나안은 성령의 능력으로 순종하는 영적 신자의 삶(Spiritual Christian Life)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싸워서 이기는 것마다 상급과 기업으로 누리게 됩니다.
2. 많은 신자들이 요단강은 죽음을 의미하고,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단강은 육적 죽음이 아닌, 영적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하기로 전 인격적 결정을 할 때,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여 주시는 성령세례 혹은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이 천국을 의미한다면 가나안에서는 더 이상 싸움도, 실패도, 눈물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에도 여전히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고, 실패와 눈물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은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 싸움을 치열하게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들로서의 우리의 삶의 국면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둘러싼 죄악 된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것마다 우리의 상급과 기업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우리 함께 나아갑시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약속된 모든 것을 반드시 취하여 누리는 축복된 여리고 지체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시내산에서 율법이 선포되던 광경을 눈 여겨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임하신 하나님이 너무나 두려워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기도 전에 모세에게 자신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에게 돌아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께 벌받을 까봐,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축복대신 저주를 주실까봐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 되기 쉽습니다. 그것은 불행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일은 자꾸 당하다 보면 소위 간이 붓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의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매맞는 것이 두려웠는데, 자꾸 매를 맞다 보면 맷집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에 빠지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사귀며,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경을 통독하며,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이유입니다.
<이 단원의 그리스도>
1. 하늘에서 내린 만나 –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예수님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산다고 선포하십니다. 단순히 떡을 얻어먹은 것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왔던 사람들은 이때 다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이 말씀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만나가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만나는 흰색을 띄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을 의미합니다. 만나는 둥근 입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나타냅니다. 만나는 아주 작은 입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만나는 새벽에 내렸고, 해가 뜨면 사그라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새벽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만나는 매일 거두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과의 교제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2. 매를 맞은 광야의 반석 –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칠 때, 반석이 깨어지며 생수를 쏟아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과거에 변하여 뱀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의 신체의 일부가 사탄에게 손상을 받으실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칠 것이며, 뱀의 후손이 그의 발꿈치를 물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따르는 반석으로부터 생수를 마셨는데,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이셨다”고 설명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신체에 엄청난 상처를 입으시면서 우리에게 구원의 생수, 보혈과 성령을 부어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 반석이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40년이 지난 후, 똑 같은 반석에서 똑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정말 성장이 느렸습니다. 40년이 지난 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문제로 넘어지는 것을 볼 것이며, 이 일로 모세와 아론 마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그것은 나중에 그 장면에서 다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 성막 – 율법이 선포된 후에 성막의 제도가 선포되었다는 것을 놓치지 마셔야 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성막은 그 율법을 통해서 드러난 죄를 해결 받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로, 예배를 통해 나아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성막의 모든 제도는 그 문에서부터 가장 깊고 은밀한 장소 지성소, 그리고 그 성막을 덮는 덮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상징들로 꽉 차 있습니다. 성막의 요소들에 대해서는 내일 나눌 말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제사장들의 의복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상징들을 다루겠습니다. 대제사장은 오늘날의 목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있는 중간적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중간적 존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목사를 “교사”라는 직분과 동일하게 보았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성도를 성숙하게 하여, 성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게 해 주는 것이 목사의 역할인 것입니다. 목사가 여러분에게 축복을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런 오해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에서 참으로 아름답지 못한, 성경적이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오늘날의 목회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리어 모든 성도님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된 것입니다. 그 특권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마십시오. 대제사장의 견장에 있는 두 보석과 흉배에 있는 열 두 보석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으로 우리 모두를 껴안고 짊어지고 나아가심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