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4 일
(출애굽기 01-14장)
<내용 요약>
출애굽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는 1장-18장으로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시내산까지 가는 여정이며, 둘째는 19-24장으로 율법이 반포되는 장면이며, 나머지 25장으로부터 40장까지는 성막의 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세우는 장면입니다. 오늘은 1장부터 14장까지 통독합니다.
01장: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02장: 모세의 출생
03장: 모세의 소명
04장: 애굽으로 돌아오는 모세
05-11장: 바로와 모세의 콘테스트
12장: 유월절의 재정
13-14장: 홍해를 건너서-애굽 군대의 몰살
<주요 통독자료> 조금 더 디테일을 원하시는 분들은 계속하십시오.
1. 창세기는 “죄의 시작”을 보여주는 책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시작하는 출애굽기는 “그 죄로부터의 구속”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의 규례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로부터의 구속이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로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시작들의 책”이며, 출애굽기는 “구속의 책”입니다.
2. 출애굽기에 들어서면서 여러분이 의아해 할 수 있는 것은, 창세기의 끝에 애굽에 내려갔던 야곱의 가족들이 400여년 만에 왜 이렇게 종으로 전락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분명히 창세기의 끝에서 야곱의 가족은 바로왕의 호의 속에 고센 땅에 비옥한 초지를 얻었고, 요셉으로 인하여 애굽에서 왕과 모든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그런 삶을 시작했었는데 말입니다. 거기에는 애굽의 역사의 큰 변화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내려갔던 때는 힉소스 왕조, 혹은 그 전후의 목자 왕조 시대였습니다. 이 왕조는 셈족 계통의 외국인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애굽은 함의 후손들 아닙니까? 그러니 함족들 위에 셈족 계통의 왕이 군림하고 있는 것은 자연히 많은 정치적 문제들을 야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시시로 셈족 계통의 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통치하는 자주권을 되찾으려 봉기했을 것입니다. 그런 차에, 역사를 앞서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요셉의 도움으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차지하게 된 바로는 그야말로 요셉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3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애굽의 왕조에 큰 변화가 온 것입니다. 그것은 드디어 애굽의 남북 왕조가 통일을 이루었고, 다시금 애굽인이 왕위에 오르는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자연히 새 왕은 국수주의를 주창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와중에 엄청나게 번성하고 있던 히브리인들은 애굽인들에게 눈엣 가시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새로운 바로에 대하여 스데반 집사는 행 7:18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올랐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새로운 바로는 히브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썼습니다. 히브리 남아가 태어나면 모두 나일강에 던지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바로 그 때 모세가 태어난 것입니다.
3. 모세는 정확히 40년씩 세 단계로 대분되는 120년의 생애를 보냈습니다. 처음 40년은 바로의 공주에게 입양된 아들로서 애굽의 문물을 배우고 왕궁의 특혜를 누리는 생을 살았습니다. 십계에서는 챨턴 헤스턴이 모세의 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자기가 애굽인인줄 알고 자라던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우연한 일로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고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를 들어보면 모세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자기 민족을 구원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자신감과 애굽에서 배운 문물, 그리고 그의 권력을 통해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오직 애굽 군인 쫄병 하나를 죽인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내쫓기게 됩니다. 모세의 생의 두 번째 40년은 첫 번째 40년과는 완전히 반대로 자신의 무기력과 무능함에 좌절하며 완전히 포기한 삶을 산 것이었습니다. 그는 미디안의 이방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장인의 양을 치는 목동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그 40년의 끝에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호렙산 가시덤불에 붙은 불꽃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소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이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나머지 40년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여리고 가족들의 생에도 이런 축복을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처음 40년 모세는 “I am Somebody(나는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40년 모세는 “I am Nobody(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좌절하며 살았고 그 끝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40년을 모세는 “God is Everything(하나님이 모든 것이시다)”라는 결론으로 인생을 산 것입니다.
<이 단원의 그리스도>
1. 얍복강 나루터에서 야곱을 만나주셨던 그리스도의 경우를 우리가 창세기에서 다루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만났던 호렙산 떨기나무의 불꽃 속에 임하셨던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 역시 “화육하기 이전의 그리스도(the Pre-incarnated Christ)”의 현현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떨기 나무에 붙은 불꽃 속에 임하신 여호와의 사자는 모세에게 사명을 주어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삶 속에 불꽃으로 임하시는 분이십니다.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바로 그런 불꽃이 예수님이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정말 불꽃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래서 바울의 삶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고, 또한 주님께 자신들의 삶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가시떨기처럼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이지만,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불꽃으로 임하시면 우리의 생애도 수많은 모세를 하나님 앞으로 부르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여리고 가족들의 삶이 그런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단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재정해 주시는 하나님을 뵙니다. 훗날 율법을 통해서 선포될 이스라엘 백성들이 3대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이 그것입니다. 이 세 절기는 모두 예수님과 연관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오순절은 예수님의 피 흘리신 곳에서 첫 열매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탄생을, 그리고 장막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영적으로 예표하는 그림자들입니다. 다른 것은 차차 나누기로 하고, 유월절의 규례를 보십시오. 유월절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그 양의 피가 죽음의 천사를 모두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한문으로 유월절(逾越節)은 “넘을 유, 넘을 월”로 넘어간다는 뜻이고, 영어로도 Passover, 즉 넘어간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은 바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며,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로부터 구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하던 그 밤에 생존하여 출애굽의 탈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로 그들 자신의 의나 혹은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들을 위하여 죽은 어린 양의 피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