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3 일
(창세기 32-50장)
<내용 요약>
오늘 우리가 통독하는 부분은 창세기의 후반부(12-50장)의 두 번째 부분(32-50장)입니다.
32장: 얍복강, 33장: 에서와의 재회,
34장: 세겜에서의 야곱,
35장: 벧엘로 돌아가는 야곱,
36장: 에서의 후손들의 족보
37장: 꿈꾸는 사람, 팔려가는 사람 요셉
38장: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
39장: 보디발의 집(애굽)으로 팔려간 요셉
40-41장: 두 관원장과 바로의 꿈을 해몽하는 요셉
42-45장: 가족들과 재회하는 요셉
46-47장: 애굽으로 내려오는 야곱
48장: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야곱
49장: 죽음의 침상에서의 야곱의 예언
50장: 야곱의 장례식
<내용> 조금 더 디테일을 원하시는 분들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오늘 우리가 통독하는 부분은 창세기의 후반부(12-50장)의 두 번째 부분(32-50장)입니다.
이 단원에서 우리는 후반부의 네 사람의 인물 중 야곱의 얍복강에서의 경험 이후의 삶과 요셉에 대해 읽게 됩니다. 32장에서 야곱은 얍복강에서 씨름을 했고, 33장에서 에서와의 재회를 가졌습니다. 형의 뒤를 바로 따라가겠다던 야곱은 34장에서 세겜에 정착을 합니다. 또 한번 야곱의 야비한 습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세겜에서 그의 딸 디나의 사건으로 그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학살하는 사고를 치게 되고 그 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에 35장에서 야곱은 벧엘로 올라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치던 날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 거의 70Km 되는 거리를 반나절 만에 도망쳐 왔었습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피곤에 지쳐 몸뚱이 하나 편하게 눕힐 공간을 찾을 수 없었던 유다 남부 광야 지대의 악명 높은 돌짝 밭 위에서 새우잠에 빠져있던 그를 하나님께서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서 안전하게 돌아오게 해 주시면 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겠다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켜주셨고, 그는 지금 많은 아들들과 재산을 이끌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의 첫 사람의 추억과 약속이 있었던 벧엘을 지척에 두고도 십 년 동안이나 하나님께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 성경통독을 함께 하시는 지체들에게도 첫사랑의 벧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그 첫사랑의 자리로 돌아가 하나님께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삶에 가득했던 우상들을 버리고 드디어 처음 그가 하란으로 갈 때 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과의 만남의 추억이 있는 벧엘로 돌아가게 됩니다. 얍복강에서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야곱에 대하여 성경은 지금까지도 그를 야곱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여기 벧엘에서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에 대한 확정을 받고 이 시점부터 정말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라헬과 이삭의 죽음에 관한 글이 나옵니다.
36장은 에서의 후손들의 족보와 그들이 에돔족속이 되었다는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11절과 12절을 주목해 보시면, 엘리바스라는 인물과 그의 아들 데만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이름들은 분명히 욥기의 데만사람 엘리바스라는 인물과 연관이 있습니다. 나중에 말씀 드리겠지만 욥기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창세기는 모세에 의해서 출애굽 노정에서 기록된 책이지만, 욥기는 창세기 시대에 바탕을 두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오래 된 책이 욥기인 것입니다. 욥기라는 책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명치이나, “성전 시스템과 제사장”에 관한 언급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욥기가 출애굽기 이전의 책임을 분명히 해 줍니다. 그리고 욥기에서 욥은 성막 혹은 성전으로 가지 않고 자신이 족장으로서 가정의 제사를 집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욥기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같은 족장시대의 인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 줍니다. 그런데 여기 에서의 후손의 족보에 엘리바스라는 욥의 친구와 같은 이름이 등장하고, 그의 아들 중에 데만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방금 세겜이라는 족속에 대해서 읽으셨습니다. 그 추장의 이름이 하몰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세겜입니다. 족장의 이름은 하몰인데 그 족속을 하몰족속이라 부르지 않고 세겜족속이라 부릅니다. 이런 일들이 족장시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라는 욥의 친구 중 한 사람의 이름이 에서의 후손들과 모종의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이죠?
그리고 37장에서 우리는 꿈꾸는 사람 요셉을 봅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총애를 받으면서 형들의 잘못들을 아버지께 고자질했습니다. 가뜩이나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던 차에 모든 형제들과 심지어 부모까지 자신에게 절을 하는 개념을 가진 꿈을 꾸고 그것을 눈치 없이 형들에게 이야기 하는 요셉… 결국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광야에서 죽을 뻔 하다가 미디안의 대상들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 심은 대로 거두는 광경을 봅니다. 자신이 과거에 에서의 흉내를 내며 염소털을 두르고 쉰 목소리를 내며 아버지를 속였는데, 지금을 그의 아들들이 야곱이 총애하던 요셉의 옷을 찢고 수염소의 피를 뭍혀서 가져와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8장에서 우리는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봅니다. 39장에서 우리는 요셉이 애굽에 내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당한 일들을 봅니다. 40장에서 요셉은 바로의 술과 떡을 맡은 두 관원장을 만나 그들의 꿈을 해몽해 줍니다. 이 일로 41장에서 요셉은 바로 앞에 불려나가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게 되고, 일약 애굽의 총리의 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42장-45장까지는 드디어 요셉이 가족과 재회를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열 일곱 살에 꾼 꿈이 서른 살이 되어서 이루어진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편에서 인내와 믿음의 부족 때문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46장은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 가족들의 명단입니다. 47장에서 야곱은 바로 왕을 만나고 바로 왕은 요셉에게 최고의 호의를 베풀어 줍니다. 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장면을 봅니다. 본래 므낫세가 큰 아들이었지만 야곱은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더 큰 자가 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훗날 에브라임지파에서 여호수아가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고, 더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 왕조로 나누일 때에 에브라임 지파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리더쉽을 가진 지파가 되었습니다. 49장은 죽음의 침상에서 자기 아들들에게 예언이 담긴 기도를 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50장은 야곱의 장례식 장면과 요셉이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자신들에게 요셉이 보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 형들을 위로하는 장면으로 창세기가 모두 끝납니다.
<이 단원에 나타난 그리스도>
1. 얍복강에서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오신 분…
처음에 창세기는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가 “천사”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는 이 장면을 언급하면서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때에 눈물로 그에게 호소했다”고 말합니다. 처음엔 분명 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천사라고 했다가 다시 그가 하나님이시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이런 분의 출현을 봅니다. 많은 경우 성경은 그를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학적으로 “화육하기 이전의 그리스도(the Pre-incarnated Christ)”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의 장막을 찾아온 세 나그네 중 두 분은 천사였고, 그 두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로 내려간 후 한 분은 아브라함과 함께 소돔성과 롯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봅니다. 거기에서 그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소개됩니다. 이런 경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해 뵌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8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실제로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 눈으로 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하나님의 현현을 사람이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신 경우, 그 분이 육체를 입으시고 아기 예수로 이 땅에 탄생하시기 전에 이런 모습으로 미리 나타내 보이신 그리스도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그리스도, 즉 예수님과 씨름을 한 것입니다.
2. 49장에서 야곱이 죽음의 침상에서 열 두 아들들의 미래를 예언하는 기도를 할 때, 유다에 대해서 말한 것을 눈 여겨 보십시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 49:8-9).” 예수님이 유다 지파에서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모든 형제의 찬송이 되고 또한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라고 예언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의 사자”라고 요한계시록에서도 불리어지고 계십니다. 죽음의 침상에서 야곱의 영적 안목이 이렇게 열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