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무신론자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공부 못하는 사람, 아둔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유한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론적인 무신론자들(theoretical atheists)이 아니라, 유신론자를 자처하면서도 삶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들, 즉 실천적 무신론자들(practical atheists)입니다. 그들은 자기로 가득 차 있어서 남을 위한 여백 없이 살아갑니다. 남들이야 고통을 받든 말든 나만 평안하면 그만입니다.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수단으로 삼는 일도 꺼리지 않습니다.
희망은 없는 걸까요? 모두가 다른 길로 빗나간 세상, 속속들이 썩어서 더럽게 된 세상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이들 말입니다. 광화문에는 지금도 세상 사람들의 잠든 양심을 깨우기 위해 30일 넘게 금식하며 기도를 올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몸의 욕구를 거부하고,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고, 밤의 추위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그들이 그 곳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일종의 몸부림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십사 비는 것입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양심을 깨우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몸으로 하는 탄원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말이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행악자가 크게 두려워한다. 행악자는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늘 좌절시키지만,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신다."(시14:5-6)
이 말을 믿습니다. 이 믿음조차 없다면 삶을 지탱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악자'와 '주님', '좌절시킨다'와 '보호하신다'가 마주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속속들이 썩어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좌절시키는 세상에서 그들의 보호자를 자처하십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은 잿빛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는 순간 희망의 빛이 움터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탄식에서 시작한 시는 구원에 대한 기대로 나아갑니다.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시14:7)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우리의 잿빛 가슴에, 그리고 우리를 절망시키는 현실 속에 자꾸만 하나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악한 세상에 살면서도 생을 축제로 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마다 '식탁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주님은 낯선 사람들이 함께 생을 경축하며 기뻐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세상이 속속들이 썩었다고 탄식만 해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적당히 길들여진 채 사는 것은 믿음의 배신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허무에 굴복하는 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이제는 실천적 무신론자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모신 사람의 당당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적중하는 화살이 되어야 합니다..
- 김기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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