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주기도문과 21세기를 위한 영성---정현구

천국생활 2009. 7. 3. 15:18

 

 

노아시대의 특징은 대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영적 무관심이었다.

오로지 현재를 즐기는 삶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성경은 육체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오늘날도 노아시대와 같이 과학이 제일이고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다.

편리한 사회를 만들고 행복을 만들어도 영적인 차원을 갖지 않으면 더 위험하고 더 불안하고

더 무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노아와 같이 산다는 의미는 영적인 차원을 상실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아와 같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 기도를 통하여 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수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무감각은 기도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의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먼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수있게하고 기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기도자가 먼저 변화되기를 명령하고 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하고, 정직한 필요를 기도해야 하며 먼저 내가 용서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도는 산위의 거룩함과 산아래의 현실을 연결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자의 기도를 통해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신다는 내용이다.

 

기도자는 불완전한 현재와 완전한 영원을 동시에 보면서 기도해야 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미 이루어진 미래가 있다는 확신위에서 기도하는 것을 원하신다. 궁극적인 낙관주의를 가지고

끝까지 기도하게 하신다. 마침내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과 이 현실속으로 능동적으로 가져오게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실천이 기도이며 이 종말론적 자세가 곧 기도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된 사실이 복음의 핵심이다. 우리는 땅에 있는 존재에 불과함을 알게 하신다.

 

거룩한 이름으로 거룩히 여김은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하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인가?

1.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3. 범사에 그에게 감사한다면 그 감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4. 믿고 감사하고 최선의 것을 드리는 것, 헌신하는 것 이것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신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주님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가야 하는 곳이면서도 현재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이루어가야할 곳이다.

땅을 하늘로 바꾸는 능력을 주셨다. 사람들의 바른 주인을 세우는 것이다.

회개는 삶의 주인을 바꾸는 수준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주인을 바꾸는 회개 즉 Repentance, 심령과 삶이 새롭게 되는 부흥 즉 Revival, 

삶과 사회의 변화 즉 Reform, 3R로 이루어 진다.

 

주기도문에서 주님의 요구는 자기 나라를 구하는 자 처럼 담을 쌓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 답게

하나님과 잃어버린 바된 이 역사와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되라는 요구이시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상태인데 왜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하늘에서는 이미, 땅에서는 아직 이기 때문이다.  이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다른 뜻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을 의도적으로 반역하는 영적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 땅에서 혼자서 이루시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순종하는 성도들과 함께

그 뜻을 이루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시므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과 이것을 통해 성도의

거룩함을 성취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 것인가?

나를 통해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가치 있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일용할 양식---이 땅의 큰 문제는 빈약한 상상력이 아니라 왜곡된 상상력이다.

  인간생명에 유해한 각종 식품이나 상품을 생산하는 자들은 밥 속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금쪽같은

생명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보고 있는 이땅이다.  이 기도는 물질도 하나님에게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의존된 연약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깊은 깨달음이 이 기도에서 나온다.

우리의 생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이다.

하루하루의 생명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으니 미래를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홍수가 나서 물이 넘치는 것과 같이 넘치지만 진작 먹을 물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듯이 일용한 용서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매일의

때를 씻어내는 기도이다.

남을 용서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 것 중 어느것이 먼저 일어났는가?

이미 용서받고 자녀가 된 성도는 용서받은 자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근거나 이유가 되지 않는 다. 오해가 없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용서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인간관계속에서 나타날 때 용서의 힘이 삶을 살려낸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용서는 용서하는 자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불공평한 일로 보일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에는 그 불공평이라는 대가를 지불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용서만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살리는 유일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일용한 양식과 일용할 용서와 마찬가지로 매일의 시험들에서 낙방하지 않도록

도울 그런 일용할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욥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성숙한 것처럼

우리도 이 시험을 이길수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귀가 주는 일용할 시험을 모르고 지날때가 많다.

일용할 보호가 필요하다.

 

악에서---우리의 생활은 눈만 뜨면 일상적인 악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된다. 너무나 흔한 일들이다.개인의 악한 행위들 그리고 가능하게 하는 구조들, 이 구조악과 잘못된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내용이다. 선으로 일상화된 악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거룩한 자로 살아감으로 빛이 되어 어두움을 이기고 소금이 되어 부패를 이기고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거룩한 삶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주기도문은 하늘의 관점에서 이 땅을 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며 영원의 관점에서 시간 세계를

보개 하는 것이다. 이 처럼 완성될 역사의 끝에서부터 이 세상을 바라보는 종말론적 관점, 그 끝이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길 요청하는 부르짖음이 곧 주기도문이다.

 

주기도문은 30초면 할수있는 짧은 기도이지만 그 속에 인생, 우주, 미래,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다.

 

주여 이 땅에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게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