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가 가공할만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않다.
상대적 열등감과 불안, 그리고 피로,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돈이 최고이며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여 과도한 경쟁에 휩싸이며 과소비에 빠져 마침내 환경오염을 악화시켰고 지구의 멸망으로 나가고 있다.
현대인으로서 낙오가 되지 않기 위해 짝꿍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며 명품족 흉내를 내는 시대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이러한 현대 산업사회 문제의 근본에는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산업사회는 사람들을 ‘그가 갖고 있는 것’에 의해 평가한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나 집은 물론이고 그의 직업, 위치, 경력을 보고 평가하며 능력있다 복받았다고 말한다. 이런 소유적 모드의 세계에서는 더 많이 갖는 것이 더 나은 인간으로 평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유적 모드에 집착하는 한 인간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10억원을 가진 사람은 100억원을, 100억원을 가진 사람은 1000억원을 갖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는 인류가 산업화가 가져온 불행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유모드’에서 ‘존재모드’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롬은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오히려 ‘소유(Haben)’가 아닌 자신의 ‘존재(Sein)’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롬은 ‘존재’적 모드가 지배하는 사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첫째, 새로운 사회는 무한성장보다는 필요에 의한 선택적 성장을 지향한다.
둘째, 물질적 이익보다는 정신적 만족을 추구한다. 쾌락이나 다른 사람의 인정(認定)이 아닌 진정한 내면적 깨달음에 삶의 중심이 있다.
셋째, 사람들은 기본적인 삶의 안정을 보장받으며 관료제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인 결단에 의한 삶을 살아간다.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사회문제 해결에까지 적용한 후기 프로이트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특히 대중이 파시즘의 선풍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근대인에게서의 자유의 의미’를 탐구했다. 현대의 정신적 불안은 개인적인 정신분석요법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사회구조변혁과 인간의 심리적 해방을 동시에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인간의 자유’(1947) ‘건전한 사회’(1955) ‘선(禪)과 정신분석’(1960) ‘사랑의 기술’(1971) ‘소유냐 존재냐’(1976)와 같은 저작으로 결실을 맺었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두 모드의 차이를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터넷에 거의 모든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검색만을 즐기고 오려 붙이기를 하는 학생과 꾸준한 독서로 지식을 내면화하고 인터넷의 정보검색을 통해 그것을 더 강화하는 학생의 진짜 실력 차이는 궁극적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동양문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했던 프롬은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서 동양의 존재 모드적 사고방식의 장점을 받아들이려 한 것 같다.
소유와 정복을 추구하는 다이내믹한 서양문명은 동양문명의 정체성에 충격을 가했지만 이제 동양문명은 서양문명의 한계에 일정 부분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은 아닐까.
산을 보면 정복하려 하는 서양의 진취적 태도와
산을 관조하며 산과의 일체화를 즐기는 동양문화의 차이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소유냐 존재냐’는 현대사회의 병리를 치유하려는 프롬의 노력이 집약된 저작이다.
그가 주장한 내용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적실성을 잃지 않고 있고,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분출하는 벌거벗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프롬의 경고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존재의 사람과 소유의 사람을 구분했습니다.
여태까지 우리의 신앙은 소유(having)와 사역(doing)의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을 구하여서 얻고, 가진 것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고.
물론 그 자체는 바랄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체이신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주님과의 사랑의 교제 없는 소유와 사역은 필경 공허함과 탈진으로 인도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섬기면 되는 줄 알고 더 많이 가지려고 몸부림치고 더 많이 섬기려고 안간 힘을 다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여러분은 사랑, 기쁨, 충만, 만족, 존재의 충만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자에 대한 섬김과 나눔은 존재적 기쁨과 충만에서 흘러나오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제
소유와 사역의 관계(relating)에서 존재(being)의 관계로 바꾸어야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한 사랑과 기쁨, 내면의 정화를 통한 내적 고요와 안식, 욕망과 집착으로부터의 자유와 충만함을 누릴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사역은 저절로 실천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습니까?
존재적 인격관계 보다 더 큰 축복과 기쁨은 드뭅니다.
교회안에는 이것이 너무 부족합니다.
가치기준이 세속화되었고 존재보다 소유를 선택한 메마른 마음들이
직분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교단주의에 빠져 그 교단의 소유에 관심이 많습니다.
신앙고백과 신조가 같은 성도들을 분리시켜놓은 죄가 큽니다.
동서화합보다 남북 화합보다 교회가 화합이 먼저입니다.
지도자들은 이러한 존재적 관계보다 소유적 관계에 집착하고 있으니
거룩을 회복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소유욕과 지배욕이냐 존재적 인격관계를 추구하는냐
선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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