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목사-구약의 예수그리스도

신명기에 나타난 그리스도

천국생활 2009. 6. 3. 12:55

1. 중보자 모세


신명기에서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중간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세에게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5장 5절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중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선민 사이에 서셔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여 주시는 사명을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명이라고 합니다.

이 중보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의 두 가지 성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고, 또 예수님은 참사람이시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사람의 손을 잡으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여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다음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신령한 관계, 밀접한 관계는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모세와 기타 선지자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었고, 또 아론과 기타 제사장들이 있어서 사람들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 주었습니다. 이러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다 일시적으로, 개별적으로, 장소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교통하게 한 것 뿐이고 영원하게 전반적으로 모든 장소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다 여러 사람들이 번갈아가면서 그 일을 행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분이 영원히 또 전반적으로 온 땅에 모든 민족에게 미치는 중보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중보성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0절에서는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라”고 하였고, 또 디모데전서 2장 5절에서는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이신데, 이 중보는 어느 한편만 위하는 분이 아니시고 하나님과 사람의 양편을 위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잘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신명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 주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의 사명을 다한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원하고 완전한 중보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중보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성의 모형이었습니다.

 

 

2. 선 지 자


신명기 18장 15절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라고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여기의 선지자라는 말은 일반적인 선지자를 의미하는 말이나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자기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 가운데서 일으키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모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하여서 선지자의 일을 하는 것과 같이 이러한 선지자, 즉 이러한 메시아를 그 가운데서 일으키시겠다고 하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모세가 예수님과 같이 그렇게 완전한 선지자는 못 되지만 그래도 선지자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야를 설명할 때에 나와 같은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또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후에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서 변화하셨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나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 17:5, 막 9:7, 눅 9:35)던 말씀과 같이 성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의 순서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믿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러한 모든 것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내말을 듣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들으라는 말씀은 그 말씀을 귀로 들어서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 알고 인식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그 말씀을 들어서 알 뿐만 아니라 그대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에게 “너,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모님의 말씀을 귀로 들어서 알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육성으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당부하셨기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나 보내신 이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이가 누구십니까?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성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와 자기 아내가 다 늙어서 도저히 자녀를 낳을 가망이 없는데도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불가능을 믿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습니다. 무조건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믿음을 의로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여러분들도 의롭다고 해주십니다.

 

3. 십자가 죽음


신명기 21장 23절에 보면 사람이 죄를 지어서 나무에 달아 죽이거든 그 시체를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옛날 신명기에서 범죄한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서 나무에 달려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겠습니까? 예수님도 죄를 지시고 저주를 받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죄를 지셨기에 그렇게 저주를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이렇게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나 제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더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렵고 슬프게도 여러분과 제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무고히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하면서 이것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니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에는 이 외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 도피성, 만나와 메추라기 등,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물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이런 것은 이미 말씀드렸기 때문에 다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신명기에서 보여주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죄 때문에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어 주신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 보았습니다. 신명기가 약속하는 그리스도는 중보자, 선지자, 대속주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