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동안 모세 오경의 각 책이 보여주고 혹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찾아 보았는데 이제부터는 역사서를 더듬어가면서 여기에 숨어있고 혹은 상징으로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를 찾아 보고자 합니다.
1. 여호수아
여호수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표한다는 말은 어떠한 모습을 미리 상징적으로, 혹은 모형같이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여호수아가 예수님의 모형이 되겠습니까?
(1) 예수님과 뜻이 같은 이름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뜻은 예수님의 이름의 뜻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예수’라는 이름은 마태복음에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말한 바와 같이 ‘그가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자’ 라는 뜻입니다. 또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구주’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주시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주시라, 여호와는 구주시라고 하니 예수님이라는 이름이나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다 같은 뜻이 되는 것입니다. 또 발음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여호수아! 예수!
(2) 예수님과 같은 사역
그 사역(事役)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여호수아와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광야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 빛과 사랑이 넘치는 하늘나라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땅에 있는 가나안 복지는 하늘에 있는 하늘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여호수아 1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제 일어나…… 이 요단강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디모데후서 4장 18절에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주 예수께서 우리를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고 인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는 자기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하늘나라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십니다.
찬송가 221장에 ‘나 가난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내 중한 짐을 벗어버렸네/죄중에 다시 방황할 일 전혀 없으며/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이것은 땅의 가나안 복지는 곧 하늘의 하늘나라를 상징한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의 군대
5장 13절 이하에서는 주께서 친히 군대장관으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에 눈을 들어보니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마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호수아는 그 사람에게 나아가서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 대적의 편이냐?”고 물었습니다. 즉,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 대적의 편이냐?”고 물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는 누구의 편이다” 라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호와의 군대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26절에 보면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죽이러 나가면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소리질렀는데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천군 천사의 군단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말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렇게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왔다고 하면서 칼을 빼들고 서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그 사람은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칼빈은 “그는 그리스도이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노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천군 천사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주러 왔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모형으로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는 자신이 직접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3.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을 생각하여 보십시다.
8장 30절 이하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절반은 에발 산앞에 세워놓고 저주를 선포하였고, 또 나머지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세워놓고 축복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에발 산과 그리심산은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 세겜 땅에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제가 성지를 순례할 때에 그 두 산을 다보았더니 저주의 산 에발에는 나무가 통 없었느나 축복의 산 그리심에는 나무가 온 산 가득히 무성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어떠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모형이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물론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세상을 저주하러 오신것이 아니라 축복하러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구세주로 오셨지 심판주로 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하러 오셨고, 구원하시는 것이 그 근본임무이셨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 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저주와 축복의 양면을 가지고 계십니다. 근본적으로 구원하고 축복하여 주시지만 믿지아니할 때는 심판을 면치 못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에발 산의 저주와 그리심 산의 축복을 겸하여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은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호수아서에는 홍해와 요단 강을 건넌 일과 전투에서 승리한 것과, 도피성과 법궤 등이 모두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자신, 여호수아의 군대,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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