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목사-구약의 예수그리스도

룻기에 숨어있는 그리스도

천국생활 2010. 2. 17. 15:08

1. 나오미
룻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아니하고 그림자와 같이 희미하게 숨어 계시기 때문에 잘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나오미가 그림자로 보여주는 그리스도를 찾아봅시다.(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우리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유다 땅에서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으므로 엘리멜렉은 그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살면서 거기에서 모압여자를 자부로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또 하나의 이름은 룻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방나라 모압 땅에 가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대단히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다 죽고 시어머니와 자부 두 사람 - 이렇게 여자들만 세 사람이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이방나라에 가서 사는 동안에 슬픔을 당하면서도 늘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이제는 자기 고향 베들레헴도 여호와께서 양식을 많이 주셨다는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오미는 이방나라에 가서 많은 고난과 슬픔을 당하였으나 조금도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고향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다가 결국은 고향에 돌아가서 생활의 안정을 얻고 행복한 여생을 마쳤습니다.
여러분! 이 나오미의 생애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우리의 기쁨’인데, 이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여러분에게 묻기를 “당신들은 누구를 제일 기뻐합니까?” 하고 물으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 여러 가지로 대답하실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이 기쁘다, 아내의 사랑이 기쁘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식을 키우는 것이 기쁘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이 기쁘고 재산을 모으는 것이 기쁘고 출세와 명예를 기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기쁨은 세상의 기쁨이요 육신의 기쁨일 뿐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에게 신앙적 기쁨은 무엇이고 신령한 기쁨의 대상은 누구이겠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9절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말씀하였는데, 우리는 이 말씀에 의하여서 “성도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들의 기쁨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려 “주님이 나의 기쁨이다,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찬송가 82장 1절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라고 주님이 나의 기쁨이요 나의 소망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요리문답 제1 문답에 보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원리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2) 고향을 떠난 고통
나오미가 자기 고향을 떠나 이방나라에 가서 많은 고난과 슬픔을 당한 것처럼 이와 같이 예수님도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오셔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멸시와 천대와 슬픔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 4절에 보면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나오미에게서 주님께서 고난 당하시는 그림자를 볼 수가 있습니다. 수난의 주님의 모습을 나오미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룻
룻도 그림자로 주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은 이방나라 모압 여자로 나오미의 둘째 자부입니다. 둘째 아들의 자부라는 뚜렷한 글은 없습니다만 자부의 이름의 순서가 오르바와 룻이라 하여 룻의 이름이 두 번째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룻은 자기 남편이 죽은 다음에도 그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동서 오르바는 자기 백성과 자기 신에게로 돌아갔으나 룻은 끝까지 돌아가지 아니하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오면서 그 어머니와 함께 유숙하기를 간청하여 기어코 유다 땅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여기에 와서 보아스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오벳은 다윗왕의 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룻은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었고 이방여자로서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그 이름이 올랐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 1:5, 6)
이제 우리는 이 룻에게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다 룻은 효부라고 합니다. 효도하는 자녀의 특성은 순종하는 것인데 참으로 룻은 그 시어머니에게 잘 순종하였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순종한 것과 같이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께 잘 순종하셨습니다. 절대 순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 39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어 드리는 데 충성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다가 마지막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와 함께 절대 순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3. 보아스
보아스도 그림자로 주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이방여자였으나 자기 친척에 대한 의리를 지켜서 모든 합법적 절차를 밟은 다음에 룻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통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너희 땅을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에게 주지 말고 이방 우상을 섬기는 이방의 딸을 너희가 취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이것은 구약의 엄격한 규례였습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완화하여서 약간 이방과의 통혼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방화하는 것은 막으셨으나 이방이 이스라엘화하는 것은 허락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 사람되는 것은 금하셨으나 이방사람이 이스라엘 사람되는 것은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보아스가 룻을 취하는 것은 이방사람을 이스라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허락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오벳은 다윗 왕의 조부가 되었습니다.
보아스가 이방 여자 룻을 취하여서 아내로 삼은 것같이 예수님께서는 이방 사람인 우리들도 구원하여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자기의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더 친근하게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취하여 훌륭한 자녀를 낳은 것과 같이 주님도 우리를 신부로 취하셔서 신령한 자녀를 많이 낳았고 또 낳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신령한 자녀를 낳는다는 말은 우리가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여 들인다는 뜻입니다.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여서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고 훌륭한 자녀를 낳고 다윗의 증조부가 되어서 영광을 누린 것과 같이 예수님도 우리를 신부 삼아서 많은 자녀를 낳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아스에게서 영광의 주님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룻기에 그림자로 숨어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이상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나오미에게서는 고난 당하신 수난의 주님을 찾았고, 효부 룻에게서는 순종하신 주님을, 그리고 보아스에게서는 영광을 누리시는 주님을 찾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전생애가 고난과 순종과 영광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주님을 본받아서 여러분과 저는 고난을 참고 순종하여서 영광을 얻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고난에서 순종으로, 순종에서 영광으로 이렇게 우리도 신앙의 대행진을 전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