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히브리어 원이름은 (광야에서)라는 뜻의 말로 되어 있으니 이 말대로 하면 (광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여러 번 백성의 수를 조사한 일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70인경(七十人經)에서 수효(數爻)들이라고 하였는데, 한국어 성경에서는 이 말의 뜻을 따라서 민수기(民數記)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의 수를 센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간단하게 이 민수기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시내 광야에 이르러 여러 가지 출발 준비를 한 후에 긴 광야의 여정을 거쳐서 요단 동편 바란 평야까지 왔습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열 두지파에서 한사람씩 열 두 사람의 정탐군을 보내었는데, 갈렙과 여호수아 외의 열 사람은 그 땅을 악평하고 또 과대평가하여 “우리가 그 땅에 결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여서(14:30) 모든 백성들을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고 슬프게 하였습니다.(13:31-14:3)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한 장관을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여러 번 오랫동안 능력의 손길로 자기들을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아니하고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는 이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가나안한 땅을 탐지하러 갔던 날 수, 40일의 하루를 1년씩 환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다시 유리하게 하셨습니다.(14:33-34)
이렇게 40년 동안 유리한 끝에 다시 요단 동편에 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내용까지가 이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민수기에도 예수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사람과 물건과 일들이 많이 있는데, 이제 그 중에서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성 막
성막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막에 관하여서는 앞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성막을 민수기에서는 장막, 증거막, 회막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성막 안에는 먼저 뜰이 있고, 더 들어가면 성소가 있고, 좀더 안으로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는데 지성소 안에는 법궤(또는 언약궤)가 있고, 이 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었습니다. 뜰에는 제사드리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었고, 성소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가 있었고, 지성소에는 일반제사장도 못 들어가고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번씩 속죄일에 그것도 속죄의 피를 가지고라야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막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마는 민수기에 보면 이 성막이 안치되는 위치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습니다.
민수기 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습니다. 성막이 중앙에 있고 동서남북으로 각각 세 지파씩 진을 치고 유숙하기도 하고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숙하거나 진행하는 광경이 얼마나 질서정연하고 또 장엄하였겠습니까?
이와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것은 또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인생행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행해야 하겠습니다.
2. 구름기둥과 불기둥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이 머물러 있으면 계속 머물러 있고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였습니다. 민수기 9장 22절에 보면 “이틀이든지 한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진을 쳐 머물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이 하는대로 하였습니다.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진행하고 구름기둥이 머무르면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 구름 기둥은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운 햇볕을 가리워 주는 차일(遮日)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구름기둥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행로를 인도하고 보호하여 준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길이 되시고 인도자가 되셔서 우리 성도들의 인생여로를 보호하여 주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또 밤에는 불기둥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 때는 가스불도 없고 전기도 없었는데, 광야에서 만일 불기둥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어둡고 답답하였겠습니까? 그러나 불기둥이 있어서 비쳐 주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어두운 밤을 밝게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빛이 되셔서 우리를 광명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요한복음 8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불기둥이 되셔서 우리의 앞길을 밝혀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3. 놋 뱀
광야의 놋뱀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수기 21장 4절 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여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라고 아우성을 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노하셔서 곧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셨으므로 백성들이 뱀에 물려서 죽는 자가 많고 또 신음하고 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때에 백성들은 모세 앞에 나와서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서 이 뱀이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말하며 회개하였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에게 말씀하기시를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달았는데 이것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다 살았습니다. 죄 짓고 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놋뱀을 쳐다보고 다 산것과 같이 죄 짓고 죽어 가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러러보는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습니다. 다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의 이 놋뱀과 자기를 연결시켜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 3장 14절과 15절에 “모세가 광에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다 산 것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앙망하는 사람들은 다 삽니다. 저 광야의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4. 도 피 성
도피성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 도피성 여섯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35: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도피성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하여 사람을 죽였다고 할찌라도 그 살인자가 이 도피성에 뛰어들어가 숨어있으면 아무도 그에게 사람을 죽였다 하여서 원수를 갚을 수가 없고 그 살인자는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가 있는 성이었습니다. 이러한 도피성은 다 레위 사람에게 주는 성읍 가운데서 택하였는데 요단강 동편에 세 성읍(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이 있고,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 세 성읍(게데스, 세겜, 헤브론)이 있었습니다.(신 4:43, 수 20:7-8) 이러한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죄인이라고 해도 도피성 안에 들어가 있으면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죄책을 면하는 것과 같이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죄는 다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구약의 도피성은 신약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민수기에는 이외에도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수 있는 물건들이 더 있지만 네 가지만 생각하였습니다. 성막, 구름기둥과 불기둥, 놋뱀, 도피성, 이 모든것을 요약하여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 중심으로서 그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고 십자가를 소망하면서 주 안에서 사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앙망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떠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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