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아가 1:7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자기들도 그를 사랑하기 바란다거나 자기들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큼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완전히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도 그 영으로 하여금 편히 쉬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피상적인 희망이나, 우리가 그를 사랑한다고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옛 성도들은 일반적으로 “만약”이라든가 “그러나”라든가 “희망한다”라든가 “믿는다”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아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나의 의뢰하는 자를 내가 안다”(딤후 1:12)고 말했습니다. 욥은 “내가 알기에는 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욥 19:25)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실제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절대 만족하지 마십시오.
“나의 의뢰하는 자를 내가 안다”(딤후 1:12)고 말했습니다. 욥은 “내가 알기에는 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욥 19:25)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실제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절대 만족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그 사랑을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이야말로 그 사랑을 유효케 하는 동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통해 생명을 얻었으며 그의 피를 통해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는 본래 부요한 분이셨는데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탁월하신 인품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주님은 너무 아름다운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인품의 매력에 탄복하고 맙니다! 그 무한하신 온전함을 의식합니다! 그 위대하심과 선하심과 사랑스러움이 한 줄기 빛나는 광선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우리 영혼을 황홀하게 만듭니다. 너무 황홀한 나머지 “그는 전체가 아름답구나”라고 외치게 됩니다. 이 사랑-실크보다 더 부드럽고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한 사슬로 우리 마음을 묶는 이 사랑-은 정말 복된 사랑입니다.
이런저런 핑계 대지 않고 우리 주 예수님을 가리켜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