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존심 강한 남자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온 남자가 사업이 부도나고, 명예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다시 회복 될 가능성이 없자 남자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철길 옆에 앉아 양주 한 병을 다 비운 뒤 회한에 잠겼습니다.
가족들 얼굴이 떠오르고 버리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에
선뜻 철길에 뛰어 들 수 없었습니다.
남자가 망설이는 동안 몇 대의 화물열차가 지나갔습니다.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던 늙은 농부가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남자가..... 죽을 생각 이면 빨리 죽지 왜 그렇게 뜸을 들여?”
농부의 말을 듣고 죽으려는 순간까지 자존심이 상한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습니다.
“난 지금 KTX 기다리고 있는 거야! 싸구려 열차에 깔려 죽을 순 없잖아요!”
“젊은 놈이 반말은? 죽을 판에 KTX는 무슨 얼어 죽을....”
“무슨 말씀을 그렇게 야박하게 하세요?”
“아니 죽을 놈이 무슨 열차 타령이야?”
“마지막 가는 길도 내 맘대로 못 해요?”
그렇게 늙은 농부와 남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사람들이 몰려 들어
남자는 술도 깨고 죽는 다는 생각도 잊고는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때로는 망설이는 과정이 다시 살아나고, 회복의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망설이는 사람을 재촉 하지 마세요!
그에게는 아직 때가 아니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선뜻 시작 하지 못하고, 과감하지 못 했던 행동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살아 있을 수 있고, 나쁜 놈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망설이다 손해를 볼 수 도 있지만 망설이다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죽으려고 하는 사람을 재촉하면 죽고,
못 된 짓을 하려는 사람을 떠 밀면 나쁜 놈이 됩니다.
남에게 충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간섭하는 것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보다 더 넓고 깊게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
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
하노라 (에베소서 3장19절)
* 낯익은 얼굴
학생들에게 무척 엄격한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학기의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은 자신에게 서명을 받은 사람만
학점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직접 한 명씩 얼굴을 보면서 수업에 빠지지 않고 나온 학생인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학생이 앞에 서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강의시간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러자 학생은 머뭇거리며 돌아가서 다시 줄의 맨 뒤에 섰습니다.
다시 그 차례가 되자 교수님은 만족한 듯 서명하며 말했습니다.
“음! 낯익은 얼굴이군. 좋아!”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하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 해서 안 되면 세 번 째는 될 지도 모릅니다.
발명 왕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5만 번을 실패 하였다고 했습니다.
마케팅 이론 중에 같은 손님에게 4번 권할 때 가장 구매도가 높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아직 충분히 준비가 안 되었거나,
연습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적거나, 분위기 형성이 안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을 지나치게 자책 하거나,
주위 사람을 원망 하는 것 보다 한 번 더 시도 해 보는 것이 낫습니다.
안 된 다고 물러나면 그대로 끝나지만
다시 한 번 더 힘을 쓰면 가능성과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됩니다.
인생을 단 번에, 한 탕에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한 탕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잘 되도 안 되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는 갖고, 이루고 성취하는 것보다
하늘이 부를 때까지 생명을 지키고, 마음과 영혼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는 있건 없건, 되던 안 되던,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장12절)
* 목사님의 휴가
목사님이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이번 휴가에는 성직자 복장, 표시는 물론 신분을 완전히 감추고
일반인처럼 휴가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해변에 도착한 목사님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
햇볕과 경치(바다 + 비키니 아가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늘씬한 아가씨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비키니를 입은 채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 한 목사님은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휘파람을 불며 그녀들에게 멋있다는 손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아가씨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다음날 목사님은 더 멋지고 더 과감한 옷을 입고
해변 의자에 앉아 햇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어제 본 그 아가씨들이 어제보다 더 화려한 수영복을 입고
진한 선글라스를 낀 채 다시 목사님 쪽으로 걸어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돌아서려는 아가씨를 향해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잠깐만요, 저는 목사가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라는 걸 어떻게 아시죠?”
그러자 아가씨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대답 했습니다
“아니! 목사님, 절 모르시겠어요? 박 전도사에요!”
박전도사님도 목사님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감추고
휴가를 즐기러 해변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목사님이 검은 안경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 볼 수 없는 곳은 없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도,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나는 어디를 가도 나입니다.
누구도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 내 자리에서, 나의 모습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입니다.
남처럼 살려고 해 봐야 이상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처럼 살면 성도도 아니고, 자연인도 아닌 꼴 사나운 사람이 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로 살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가 아닌 정치인으로, 사업가로,
또는 검사나 변호사나 판사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성도가 모인 곳에는 거룩한 일이 생기고, 용서와 이해와 화평이 성취 됩니다.
판검사들이 모인 곳에서는 고소와 다툼과 분쟁과 핑계와 변명이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온 남자가 사업이 부도나고, 명예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다시 회복 될 가능성이 없자 남자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철길 옆에 앉아 양주 한 병을 다 비운 뒤 회한에 잠겼습니다.
가족들 얼굴이 떠오르고 버리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에
선뜻 철길에 뛰어 들 수 없었습니다.
남자가 망설이는 동안 몇 대의 화물열차가 지나갔습니다.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던 늙은 농부가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남자가..... 죽을 생각 이면 빨리 죽지 왜 그렇게 뜸을 들여?”
농부의 말을 듣고 죽으려는 순간까지 자존심이 상한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습니다.
“난 지금 KTX 기다리고 있는 거야! 싸구려 열차에 깔려 죽을 순 없잖아요!”
“젊은 놈이 반말은? 죽을 판에 KTX는 무슨 얼어 죽을....”
“무슨 말씀을 그렇게 야박하게 하세요?”
“아니 죽을 놈이 무슨 열차 타령이야?”
“마지막 가는 길도 내 맘대로 못 해요?”
그렇게 늙은 농부와 남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사람들이 몰려 들어
남자는 술도 깨고 죽는 다는 생각도 잊고는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때로는 망설이는 과정이 다시 살아나고, 회복의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망설이는 사람을 재촉 하지 마세요!
그에게는 아직 때가 아니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선뜻 시작 하지 못하고, 과감하지 못 했던 행동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살아 있을 수 있고, 나쁜 놈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망설이다 손해를 볼 수 도 있지만 망설이다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죽으려고 하는 사람을 재촉하면 죽고,
못 된 짓을 하려는 사람을 떠 밀면 나쁜 놈이 됩니다.
남에게 충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간섭하는 것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보다 더 넓고 깊게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
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
하노라 (에베소서 3장19절)
* 낯익은 얼굴
학생들에게 무척 엄격한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학기의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은 자신에게 서명을 받은 사람만
학점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직접 한 명씩 얼굴을 보면서 수업에 빠지지 않고 나온 학생인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학생이 앞에 서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강의시간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러자 학생은 머뭇거리며 돌아가서 다시 줄의 맨 뒤에 섰습니다.
다시 그 차례가 되자 교수님은 만족한 듯 서명하며 말했습니다.
“음! 낯익은 얼굴이군. 좋아!”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하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 해서 안 되면 세 번 째는 될 지도 모릅니다.
발명 왕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5만 번을 실패 하였다고 했습니다.
마케팅 이론 중에 같은 손님에게 4번 권할 때 가장 구매도가 높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아직 충분히 준비가 안 되었거나,
연습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적거나, 분위기 형성이 안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을 지나치게 자책 하거나,
주위 사람을 원망 하는 것 보다 한 번 더 시도 해 보는 것이 낫습니다.
안 된 다고 물러나면 그대로 끝나지만
다시 한 번 더 힘을 쓰면 가능성과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됩니다.
인생을 단 번에, 한 탕에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한 탕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잘 되도 안 되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는 갖고, 이루고 성취하는 것보다
하늘이 부를 때까지 생명을 지키고, 마음과 영혼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는 있건 없건, 되던 안 되던,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장12절)
* 목사님의 휴가
목사님이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이번 휴가에는 성직자 복장, 표시는 물론 신분을 완전히 감추고
일반인처럼 휴가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해변에 도착한 목사님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
햇볕과 경치(바다 + 비키니 아가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늘씬한 아가씨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비키니를 입은 채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 한 목사님은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휘파람을 불며 그녀들에게 멋있다는 손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아가씨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다음날 목사님은 더 멋지고 더 과감한 옷을 입고
해변 의자에 앉아 햇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어제 본 그 아가씨들이 어제보다 더 화려한 수영복을 입고
진한 선글라스를 낀 채 다시 목사님 쪽으로 걸어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돌아서려는 아가씨를 향해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잠깐만요, 저는 목사가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라는 걸 어떻게 아시죠?”
그러자 아가씨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대답 했습니다
“아니! 목사님, 절 모르시겠어요? 박 전도사에요!”
박전도사님도 목사님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감추고
휴가를 즐기러 해변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목사님이 검은 안경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 볼 수 없는 곳은 없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도,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나는 어디를 가도 나입니다.
누구도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 내 자리에서, 나의 모습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입니다.
남처럼 살려고 해 봐야 이상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처럼 살면 성도도 아니고, 자연인도 아닌 꼴 사나운 사람이 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로 살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가 아닌 정치인으로, 사업가로,
또는 검사나 변호사나 판사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성도가 모인 곳에는 거룩한 일이 생기고, 용서와 이해와 화평이 성취 됩니다.
판검사들이 모인 곳에서는 고소와 다툼과 분쟁과 핑계와 변명이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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