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90 일
(요한 일, 이, 삼서, 유다서)
<내용 요약>
요한일서(하나님에 대한 세 가지 정의)
A. 하나님은 빛이시다(1:1-2:2)
(1:01-02) 서론
(1:03-2:2) 어떻게 어린 자녀들이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있는가 –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를 자백함으로, 그리스도의 대언으로…
B.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2:3-4장)
(2:03-14) 어떻게 사랑하는 자녀들이 서로와 교제할 수 있는가 – 사랑 안에서 행함으로…
(2:15-28) 사랑하는 자녀들아 세상을 사랑치 말라
(2:29-4장) 어떻게 사랑하는 자녀들이 서로를 알고 함께 살 수 있는가
C.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5장)
(5:01-05) 세상을 이김
(5:06-21) 구원의 확신
요한이서
A. 사랑은 진리의 영역 안에서 표현된다 (1-6절)
B. 삶은 그리스도의 교리의 표현이다 (7-11절)
C. 개인적 문안 (12-13절)
요한삼서
A. 가이오 - 초대 교회의 사랑 받는 형제 (1-8절)
“편지의 수신자로서 말씀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들을 잘 대접하라고 권고를 받은 사람”
B. 디오드레베 - 출세를 사랑했던 사람 (9-11절)
“악한 행동은 거짓된 교리의 표현임을 보여준 사람”
C. 데메드리오 – 모든 사람들과 진리 그 자체의 좋은 증거를 가진 사람 (12-14절)
“좋은 삶은 참된 교리의 표현임을 보여준 사람”
유다서
A. 이 서신의 정황 (1-3절)
B. 배교의 행위들 (4-16절)
C. 배도의 날에 신자들의 책무 (17-25절)
<주요 통독 자료>
1. 요한일서
요한일서는 하나님의 세 가지 측면(빛, 사랑, 생명)에 대한 확고한 뼈대 위에 교리적인 다양한 이야기들을 확대시켜 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은 신앙에 있어서 어린 아이들(Little Children), 사랑하는 자들(Beloved ones), 그리고 아비들(Fathers)로의 성장의 과정을 명확히 그리고 있습니다. “자녀들아(Little Children)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막 태어난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감격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니까요. 그리고 요한은 말합니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들을 이기었음이라.” 청년의 때는 투쟁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확고한 지식의 바탕 위에서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 영적 싸움에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것은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데 있습니다. 요한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사람과 싸우면 안됩니다. 요한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밝힙니다.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 이 세 가지가 모든 인류의 적입니다. 사탄이 이브에게 가져온 것이 이 세 가지입니다. 그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 보암직도 하고(안목의 정욕), 먹음직도 하고(육체의 정욕),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이 생의 자랑) 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의도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치열한 싸움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요한은 말합니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우리가 치열한 싸움의 때인 청년기를 지나면 깊은 성숙이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의 욕망은 오직 하나 태초부터 계신 그분을 나타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성숙하면 언제나 주님만 나타납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주님의 영광만 드러납니다. 그러나 미성숙한 신자가 있는 곳에는 항상 자기를 나타내려는 치열한 싸움이 따르고, 냄새 나고 더러운 육적인 동기의 싸움들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 영적 성숙의 과정 속에서 빛 되신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 용서, 사랑이신 하나님 앞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 그리고 생명이 되신 하나님을 소유한 자답게 영적 싸움에서 세상을 이기며 어둠 속에 같인 자들을 구해내는 생명사역을 왕성하게 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2. 요한 이서
요한은 이 서신에서 자신을 장로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이 때 90대의 나이였으니까 이 호칭이 실로 잘 어울리는 나이였습니다. 요한은 이 서신을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쓰고 있습니다. 이 택하심을 입은 부녀가 누군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사실 우리에겐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 “택하심을 입은 부녀”는 헬라어에서 <에클렉티 쿠리아>입니다. <에클렉티>는 “택하심을 받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당시 통용되던 여인의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쿠리아>는 <쿠리오스(주님)>의 여성형입니다. 이 단어는 Mr. 혹은 Lord(주)라고 번역될 수도 있고, 이 단어의 여성형인 <쿠리아>는 Miss 혹은 Lady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엘렉티>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통명사로 해석한다면 “택하심을 받은 숙녀” 즉 교회를 지칭하는 용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요한이 진실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요한은 이 거룩한 부녀와 그 자녀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것을 심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요한 삼서에서도 요한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요삼 4절).” 초대교회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 전체를 두고 참으로 불행한 일은 성도들이 진리 가운데 지속적으로 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어떻게 너희가 그렇게 속히 진리를 떠나 다른 복음을 좇을 수 있느냐고 한탄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며 지나간 곳마다 항상 거짓 선지자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역사 가운데서 이단적인 거짓 선지자들의 타겟은 항상 교회 안의 명분뿐인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밖에 나가서 잃어 버린 영혼을 찾지 않습니다. 그들은 항상 교회 안에서 견고하지 못한 신자들을 찾습니다. 그들이 타겟입니다. 요한은 바른 진리를 위한 교사들을 집안에 들이고 친절과 사랑으로 섬기는 즐거움을 누리되, 이단의 교리를 가진 사람들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0절)고 단호히 말합니다. 요한이서의 주제는 “지속적으로 진리 안에 거하며, 같은 진리를 가진 이들과 깊은 사랑의 교제와 섬김의 삶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3. 요한삼서
요한은 모두 다섯 권의 책을 썼습니다. 요한복음, 계시록, 그리고 요한 일, 이, 삼서가 그것입니다. 이 요한 삼서가 요한의 마지막 저작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요한 계시록을 쓴 후에 쓰여진 것입니다. 저 유명한 초대교회의 감독 폴리캅은 요한에게 에베소에서 직접 배운 사람이었고, 요한의 죽음 이후에 에베소 교회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세 번째 편지를 “가이오”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는 “가이오”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마게도니아의 가이오도 있고, 더베의 가이오도 있고, 고린도의 가이오도 있습니다. 요한 삼서에 나오는 가이오는 이 세 가이오 중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구전에 의하면 이 가이오는 요한에 의하여 버가모의 교회의 감독으로 보내어진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버가모는 에베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90대에 달한 노년의 요한은 이제 긴 편지를 쓰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젊은 목회자 가이오에게 항상 기본에 충실하도록 가르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나이와 함께 이미 한 세기를 지나가고 있는 초대 교회 안에는 많은 문제들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편지에도 나타납니다만 당시의 교회는 이미 예수님께 책망과 경계를 받아야 할 일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역사 가운데도 오늘날 대형 교단이 된 신앙운동들의 역사를 보면 처음엔 대부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로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그 순수하고 역동적이었던 운동들이 사람들에 의하여 교단으로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기본을 버리고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리곤 이내 평범한 교단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진리 가운데 굳게 거하고 있는 가이오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순회전도자들로부터 가이오의 집이 진리 가운데 행하고 있다는 증거들을 받았습니다. 요한이서에서도 말했습니다만, 그래서 요한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가이오는 특별히 섬김과 접대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이오에게 섬김을 받았던 주의 종들은 다른 곳에 가서 이방인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칭찬합니다. 우리는 그런 섬김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서 세계의 많은 사역자들이 사람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주도권 자랑을 하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주님만 높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섬김의 자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가이오에게 남들 위에 군림하기를 즐기고 독재자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디오드레베”같은 사람을 본받지 말고, 뭇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또한 진리 그 자체로부터 증거를 받은 자 데메드리오 같은 사람을 롤모델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4. 유다서
유다는 예수님의 형제들 중 하나였습니다. 야고보처럼 유다도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설명합니다. 유다는 당시 초대 교회 안에 들어온 영지주의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믿음의 도를 굳게 잡고 그것을 위해 힘써 싸우라는 권고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그들은 가인과 발람, 그리고 고라 같은 성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건강한 애찬의 암초 노릇을 했고,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였으며, 물 없는 구름, 죽고 또 죽어서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유다는 아담의 칠대 손이었던 “에녹”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증거했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에녹은 평생을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의 진리를 전했던 인물입니다. 오죽했으면 아이를 낳고 그 이름을 “므두셀라”, 즉 “이 아이가 죽을 때에 심판이 임한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었겠습니까? 그 시대 사람들이 진리 가운데 들어오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들도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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