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87일 통독 디도서,빌레몬서

천국생활 2016. 8. 26. 09:23

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87 일

 


(디도서 1-3장, 빌레몬서)



<내용 요약>
디도서는 세 개의 단원으로, 빌레몬서는 여섯 개의 단원으로 묶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디도서
A. 교회는 하나의 조직이다 (1장)
B.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2장)
C. 교회는 선행을 보이는 곳이다 (3장)

빌레몬서
A. 빌레몬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다정한 문안 인사 (1-3절)
B. 빌레몬에 대한 좋은 소문 (4-7절)
C. 오네시모를 위한 은혜의 부탁 (8-16절)
D. 무죄한 자가 죄인을 대신함 (17절)
E. 전가에 대한 영광스런 실례 (18절)
F. 일반적인 일들과 개인적인 일들에 대한 요청 (19-25절)

<주요 통독 자료>
1. 디도서
사실 디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바울의 동료였고, 또 바울과 함께 여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가 정작 사도행전에서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매우 강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고린도 후서를 고린도에 전달한 사람이었으며, 또한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헌금을 거두어 오도록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편지하고 있는 지금 디도는 크레테 섬에 있습니다. 이 크레테섬이 바로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사역을 시작했던 구브로 섬입니다. 나중에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이 섬으로 다시 여행을 떠났지요? 그래서 그 섬에는 교회가 많이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디도를 이 교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섬으로 보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상 디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루었던 것과 유사한 내용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 다른 포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문안인사를 봅시다. [딛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다시 한 번 바울의 전형적인 인사의 요소들이 등장하지요? “종(Doulos)”, “사도” 같은 단어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바울은 목회자인 디도에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져야 할 신분상의 확신을 이렇게 정의해 줍니다. 주의 종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자이면서 동시에 주님과 또한 섬겨야 할 성도들에게 기꺼이 평생 팔려간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의 지식의 가르침을 통해서 성도들은 믿음 가운데 세워줌으로써 삶에 열매가 있게 하려는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다음 절에서 바울은 또한 신자들로 하여금 영생의 소망을 얻게 하기 위해서 그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인류의 구원의 계획을 갖고 계셨고, 이제 정하신 때가 되자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 전도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 바울이 디모데와 함께 믿음의 아들인 디도에게 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다시 은혜와 평강이라는 전형적인 바울의 인사의 말들이 사용됩니다. 하지만 디모데 전후서의 통독 자료에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바울은 목회자들에게 주는 서신에서 특별히 한 단어를 더 추가했습니다. 물론 이 구절 속에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말 성경에서 번역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NKJV에서 이 구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To Titus, a true son in our common faith: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our Savior.” 여기에서 바울은 분명히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이 서신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딛 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이 크레테 혹은 구브로 섬은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자주 들렸던 곳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섬은 지중해에서 이스라엘 쪽에 가장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던 큰 섬이었기 때문에 항해를 하다 보면 자주 들르는 곳이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데리고 여행을 하다가 그 섬의 교회의 문제점들을 보고 그를 거기에 떨어뜨려 두고 간 모양입니다.
바울은 디도서에서 크레테 섬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먼저 크레테 섬의 교회에 들어온 유대주의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그는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라고 말합니다. 할례당이란 물론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이야기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위에 율법을 준수하는 플러스 알파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라고 단언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우리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밀레도에 에베소의 장로들을 초대해서 그들에게 당부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을 읽었습니다.
[행 20:29-31]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31)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쉽게 말해서 크레테 섬의 유대주의자들의 동기는 오직 자기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쓸데없는 권위를 차지하려는 사람들, 사람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이런 것이 이들의 행동의 동기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레데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에 대해 말합니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바울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대 문헌들을 보면 크레테인들에 관한 좋지 않은 비평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합니다. 특별히 B.C. 600년 경에 크레테의 시인 에피메니데스(Epiminides)라는 시인의 글을 바울은 이곳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워낙 크레테라는 섬은 당시 근동의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에 있었고 비교적 큰 섬이었으므로 굉장한 물질적 부를 누릴 수 있었고 유대인 부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이런 위치를 이용해서 교회 안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훈을 받고 겸손히 주님의 도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닌 율법적인 전통을 가지고 많은 교인들을 현혹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이런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불순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든 것을 불순하게 봅니다. 자신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입술의 고백과 삶의 행실이 일치와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을 하지만 삶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이 산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스스로 속지 않아야 합니다. 가증함은 우상숭배와 연관이 있는 단어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심지어는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순종치는 않습니다. 이들은 선한 일을 버릴 뿐만 아니라, 선한 일에서 버려진 자들입니다.

2. 빌레몬서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영어 성경에서 보면, “a prisoner of Jesus Christ”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로마 투옥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을 하기 보다, “사나 죽으나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의 사랑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환경도 바울을 괴롭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수신자인 빌레몬은 부자였습니다. 그는 에베소 가까운 골로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바울의 사역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이 영향력 있었던 골로새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가 모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여러분이 예수를 믿게 하고, 또 양육해서 좋은 신자가 된 그런 지체들이 믿음 안에서 놀라운 활약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빌레몬이 그랬고 그것이 바울의 기도 때마다 드리는 감사의 제목이었다고 바울은 이 책에서 밝힙니다. 빌레몬에게 미쳤던 바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 책에서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명령으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포로가 된 것처럼, 바울은 주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종의 마음을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권세를 누리는 자들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자들이 되는 것… 그것이 바울의 소원이었고, 또한 우리 예수님의 소원입니다. 그는 이제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을 쳤던 노예, 당시 사회로서는 빌레몬에게 잡히면 즉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그런 사회적으로 형편 없는 가치에 처해 있었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얼마나 낮은 자리까지 내려간 것입니까? 바울은 두기고에게 골로새서를 보내면서 자신이 감옥에서 얻은 또 한 사람의 믿음의 아들이며 제자인 오네시모를 함께 보낸 것 같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유익한 자(Profitable)”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는 달리 지금까지 오네시모는 정말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를 맞이하는 것처럼 그를 맞이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오네시모의 신분상의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전에 무익하던 자가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전에 종이었던 자가 지금은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졌던 모든 빚은 예수님께 지워졌고 탕감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동역자는 비즈니스 용어입니다. 바로 동업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내가 친필로 썼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일종의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백지 수표를 위임하고 있다는 어조로 말합니다. 오네시모가 진 모든 빚을 내가 갚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빌레몬이 자신에게 진 모든 사랑의 빚에 대하여 일체 말하지 않겠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이 부탁하는 것보다 더 할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의 대화입니까?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분부하시는 것보다 더 할 사람들이라고 우리 주님이 믿으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빌레몬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당신의 채무로 여겨 주시고 모두 담당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