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85일 통독--데살로니가전서, 후서

천국생활 2016. 8. 24. 07:15

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85 일

 


(데살로니가전서 1-5장, 데살로니가후서 1-3장)



<내용 요약>
데살로니가전서는 전체를 5개의 단원으로, 데살로니가후서는 세 개의 단원으로 묶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A.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크리스천의 태도 (1장)
B.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어서의 크리스천의 상급 (2장)
C. 그리스도의 재림과 크리스천의 삶 (3:1-4:12)
D. 그리스도의 재림과 크리스천의 죽음 (4:13-18)
E. 그리스도의 재림에 입각한 크리스천의 행동 (5장)

데살로니가후서
A. 현재의 신자들의 박해: 불신자들의 심판이 있을 것<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1:1-12)
B. 그리스도의 재림에 연관된 세상을 위한 프로그램 (2:1-12)
(2:1) 먼저 휴거가 있을 것
(2:2-5) 주의 날이 이를 것, 전체적인 배도와 불법의 사람의 출현으로부터 시작됨
(2:6-8) 불법의 비밀이 오늘날 일하고 있으나 불의한 자를 성령께서 막고 계심
(2:9-12) 불의한 자가 대환난 때에 나타남
C. 그리스도의 재림의 사실성 (2:13-3:18)

<주요 통독 자료>
1. 데살로니가전서
바울은 소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이 계속 막히자 드로아까지 왔습니다. 거기에서 마게도니아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건너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유럽 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마게도니아의 첫 성 빌립보에서 바울은 실라와 함께 감옥에 투옥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셨습니다. 빌립보에서 나온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거기서 3주간에 걸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다시 폭동이 일어나 새로 예수를 영접했던 야손을 사람들이 체포해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베레아로 갔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베레아까지 내려와 폭동을 일으키자 바울은 그곳을 떠나 아덴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고린도였습니다. 마게도니아 지방에서 바울이 만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만약 우리가 바울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신 것이 맞는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적극적이었습니다. 그가 고린도에 이르렀을 때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아마도 A.D. 54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편지는 바울의 첫 번째 편지였고, 바울 서신 가운데 물론 가장 먼저 쓰여진 편지입니다.
2:1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바울은 그들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간 것이 그들을 믿음 가운데로 들어오게 하는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그들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고 했습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주님을 위하여 애쓰는 우리들의 수고는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들의 섬김은 무료 자원봉사가 아니고 대가가 약속된 사역입니다. 물론 대가는 성과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신실함에 따라 주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의 내용이 아닙니까? 갈보리 채플의 선교사님 한 분이 볼리비아로 갔습니다. 사라노이(Saranoy)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7년 동안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7년 만에 한 영혼을 얻었고 그는 꾸준히 전도해서 지금은 거의 전 부족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한 우리의 수고는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언급합니다. 감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고… 뿐만 아니라 동족 유대인들의 미움도 항상 그에겐 위협이었습니다. 그도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쉬지 않고 섬겼고 결국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같은 훌륭한 신자들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상급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언제나 진심을 다해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살전 2:3-4]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4)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이것이 바울의 소원이었고 또한 상급이었습니다. 그는 어차피 어떤 칭찬과 영광을 위하여 이 일을 한 것이 아니고, 말씀을 부탁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성실을 다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아름다움을 칭찬합니다. 그들의 믿음의 아름다운 소문은 이 편지를 쓸 때에 바울이 있었던 고린도가 속한 아가야 지방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세 가지 덕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역사(Work of Faith), 사랑의 수고(Labors of Love), 소망의 인내(Patience of Hope).” 믿음은 모름지기 역사가 따라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또한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랑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수고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또한 진정한 소망은 인내를 가져다 줍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참지 못합니다. 더 바랄 것이 없는데 뭘 참겠습니까? 하지만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 소망을 바라보며 오래 참아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덕목을 갖춘 신앙으로 자라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생긴 문제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시대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보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고,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참여하지 못하고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한 큰 슬픔에 잠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광가운데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슬픔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들에게 부활이 있을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간 성도들은 우리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예수님과 함께 다시 돌아올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상 재림이 있기 전에 이 땅에 대환난이 있을 것이고, 그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셔서 그의 교회와 성도들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셔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는 휴거의 사건이 있을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확실한 사실 앞에서 우리 신자들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존되게 하는 것이 관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데살로니가후서
데살로니가전서를 가져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바울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을 향한 박해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그들 안에 이미 대환난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예수님의 재림이 이미 있었다는 잘못 된 가르침이 전해지면서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 신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의 첫 번째 편지는 예수님의 재림이 속히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일분 신자들이 직장도 사업도 포기하고 그저 예수님의 재림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수정하기 위하여 다시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지금 박해를 받고 있지만 그것이 대환난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해 주어야 했습니다. 1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받고 있었던 박해에 관하여 썼고, 2장에서는 대환난이 있기 전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먼저 있을 것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를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요한은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는 이 존재에 대한 약 30여 가지의 다양한 이름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반드시 먼저 배도의, 일과 이 불법의 사람의 출현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 불법의 비밀의 활동을 막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성령과 교회가 이 시대에 불법의 비밀의 활동을 막고 있기 때문에 그가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함께 교회가 이 땅에서 옮겨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대환난의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미 왜곡된 종말론이 있어서 교인들로 하여금 사회생활의 모든 것을 등지고 재산을 정리하여 다 도네이션을 하고 어디 산에 올라가서 흰 옷을 입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책을 쓴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규모 없이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가르칩니다. 명령과 질서에 순종치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건강한 노동을 하지 않고 계속 게으름을 피우고 놀고 먹거나, 예수님만 기다린다고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살지 않는 자들이 바로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에서 우리는 이 땅에 반드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