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86 일
(디모데전서 1-6장, 디모데후서 1-4장)
<내용 요약>
디모데전서는 다섯 개의 단원으로, 디모데후서는 네 개의 단원으로 묶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A. 교회의 믿음 (1장)
B. 교회들 안에서의 공적인 기도와 여성들의 위치 (2장)
C. 교회의 직분자들 (3장)
D. 교회들 안의 배도 (4장)
E. 교회의 직분자들의 직무 (5장)
디모데후서
A. 복음의 고난 (1장)
B. 현역 복무-하나님의 종들의 다양한 이름들 (2장)
(2:1-2) 아들
(2:3-4) 좋은 군사
(2:5) 운동선수
(2:6-14) 농부
(2:15-19) 일꾼
(2:20-23) 그릇
(2:24-26) 종
C. 배도의 때가 이름-성경의 권위 (3:1-4:5)
D. 주님께 충성함과 주님의 충성 (4:6-22)
<주요 통독 자료>
1. 디모데전서
이제 우리가 통독하게 되는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우리는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문자 그대로 목회자에게 주는 매뉴얼이죠. 교회는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교회 안에서 기도는 어떻게 드려져야 하며, 남자와 여자의 섬김의 모습들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직분자들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교회를 섬기는 종들을 위한 사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기술적인 것들을 담고 있는 책들입니다. 특별히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건강을 위하여 염려해 주는 말씀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주의 종들이 위에 문제를 가질 만큼 스트레스가 되는 일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웃음이 나네요.
디모데전서가 언제 쓰여졌는지에 대하여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때에 그는 에베소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워주고 교리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디모데를 그곳에 잠시 남겨두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좀 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교회 안에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견고한 교리적인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그곳에 한동안 머물게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를 처음 떠났을 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한번 출옥했었고 다시 에베소로 가서 한동안 섬겼다고 하는데 우리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 둘 중 어떤 때인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의 문안인사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딤전 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의 서신서들의 일반적인 문안인사와 약간 다른 인상입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서신서들보다 약간 강한 표현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약간씩의 오해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를 처참하게 심판하려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돌이 잔뜩 들은 자루를 이제 하늘에서 우리에게 막 쏟아부을 준비를 하고 계신 그런 하나님으로…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항상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간청을 하시는 그런 그림.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해입니다. 우리의 구속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래서 그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또한 능력에 기인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여기에서 이례적으로 성부 하나님을 우리 구주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수신자인 디모데에 대해 언급합니다.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과 디모데의 첫 번째 만남은 아마도 그의 1차 전도여행에서 였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어 사람들에게 성문 밖으로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때 이미 바울은 디모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등 가족들과 친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이 1차 전도여행에서의 사건들은 디모데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에 바울이 다시 루스드라에 돌아왔을 때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그의 사역에 동참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디모데는 정말 바울을 존경했고, 그에게 배우기 원했으며 그를 닮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서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이 디모데 외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말 자신과 같은 마음, 같은 비젼을 품은 사람은 디모데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교회를 섬기면서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어떤 분들이 정말 저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행복하고 축복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아들 같은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참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이미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도 일반 서신들과는 달리 뭔가를 덧붙였는데, 여기 문안인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그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수신자들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함께 하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목회서신,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에서는 모두다 “긍휼”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글쎄요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바울의 의도였다고 믿습니다. 아마 그는 목회자들에게는 항상 긍휼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지식이 있고, 또 어떤 기술적인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목회자의 자격은 없는 게 아닐까요? 그저 저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2. 디모데후서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습니다. 그는 이미 네로 왕 앞에서 첫 번째 청문회가 가졌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재판이 종교적인 것이고, 그런 케이스로서는 로마에서 이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로마 정부 혹은 왕권에 도전하는 정치적인 이슈로 비화시킨 것입니다. 로마 정부는 황제를 주(Lord)로 부르도록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바울은 크리스천으로서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고,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아주 위험한 지경에 처한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친구들은 모두 위험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서 바울과 함께 있는다는 것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결국 바울 곁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주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게 될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바울은 자신의 믿음의 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쓴 마지막 편지입니다. 바울의 문안인사를 잠시 봅시다. [딤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아마 비웃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 때문에 죽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따라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쓰신 편지 역시 같은 개념을 담고 있었습니다. 서머나 교회 역시 로마의 극렬한 핍박 가운데서 그들의 생명을 내려놓아야 할 위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바로 이런 기본적인 철한 아래서 바울은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다가올 배도의 때를 잘 판단하고 지켜야 할 주의 종으로서의 자세를 올바로 견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2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종들의 본질에 대하여 다양한 존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들, 좋은 군사, 운동선수, 농부, 일꾼, 그릇, 종… 하나님의 종들은 이런 다양한 역할을 감당해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배도의 때에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본질을 올바로 지킬 수 있는 비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에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직무입니다. 하지만 배도의 때에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만 간지럽혀 주는 그런 가르침을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미 자신의 삶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번제란 희생의 짐승의 몸통을 전체로 불에 살라 드리는 제사입니다. 전제란 그 번제의 제사의 끝에 불타는 제물 위에 한 숟가락의 포도주, 혹은 올리브 기름을 타오르는 불 위에 쏟아서 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한올의 연기로 피어오르는 그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입니다. 바울은 불꽃처럼 그의 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지막 땀 한 방울 마저 그의 번제 위에 부어서 완전히 바쳐버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애도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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