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83일 통독 -갈라디아서, 에베소서1-6장

천국생활 2016. 8. 24. 07:08

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83 일

 


(갈라디아서 1-6장, 에베소서 1-6장)


<내용 요약>
갈라디아서는 전체를 5개의 단원으로, 에베소서는 두 개의 단원으로 묶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통독 범위는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 전체입니다.

갈라디아서
A. 서론 (1:1-10)
B. 개인적인 내용-사도의 권위와 복음의 영광(1:11-2:14)
C. 교리적인 내용-믿음으로 말미암은 의(2:15-4:31)
(2:15-21) 교리적인 정립
(3:1-5) 갈라디아 교인들의 경험
(3:6-4:18) 아브라함의 예
(4:19-31) 하갈과 사라의 알레고리
D. 실천적인 내용-성령으로 말미암은 성화(5:1-6:10)
E. 친필 서명과 결론(6:11-18)

에베소서
A. 교리 편
(1장) 교회는 몸
(2장) 교회는 성전
(3장) 교회는 신비
B. 실천편
(4장) 교회는 새 사람
(5장) 교회는 신부가 될 것이다
(6장) 교회는 군사

<주요 통독 자료>
1.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갈라디아는 에베소나 골로새처럼 한 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 지역(Province)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편지한다”는 것은 “경상도 지역의 교회들에게 편지한다”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갈라디아는 흑해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지역이며 이 지역은 헬라 사람들이 아닌 가울(Gaul) 족속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이 갈라디아(Galatia)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고린도 후서를 끝낼 때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내가 세 번째 너희에게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바울이 세 번째 고린도를 방문했던 그 때가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때라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고린도 교회처럼 갈라디아에도 거짓 교사들이 들어왔고 그들 역시 바울의 사도직에 대하여 도전함으로써 갈라디아 사람들의 마음에서 바울을 향한 사랑을 식어지게 만들고 또한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여 할례라든지 하는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율법주의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이 사람의 행위에 달려 있는 것처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갈라디아서에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은혜의 복음에 대하여 가르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여 주시는 것은 우리들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따른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 전체를 흐르는 주제가 이렇게 선포됩니다. <갈라디아서1:6-7>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복음은 Good News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성취시켜 주셨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거짓 교사들이 가져온 것은 우리가 육체의 노력으로 구원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Good News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의 첫 번째 예루살렘 공회가 모였던 것이 바로 이 이슈를 다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 신자들과 율법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공회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도 메지 못했던 율법의 무거운 짐을 이방인이게 지우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공회의 이 결정을 좋아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바울사도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바울이 세워 놓은 교회들마다 이 율법주의의 이슈들을 들과 와서 흔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이런 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들에게 주어진 그 자유의 복음을 저버릴 수 있는지 이상히 여긴다(marveled)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이것이 초대 교회에서만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구원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들의 육체의 행동이 그들의 교리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늘나라의 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가가호호 찾아 다니며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구원은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몰몬교의 사람들은 그들이 전도한 숫자만큼의 별을 차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별들을 통치하는 신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왜 이런 교리들에 속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가 명백히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들 가운데 정말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가 얼마나 됩니까? 모두 성경을 들먹이며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정말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 와서 일단 성경을 펼치고 무슨 이야기를 하면 벌써 자신부터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게 정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믿는 신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가 그저 복 받기 위한 것이지 삶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녔어도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도 없으니까 이단들이 행위를 들고 나오면 당장 고개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변화는 성령의 능력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육체의 노력으로 하는 일들은 현저하다고 말합니다. 주의해서 보십시오. 육체의 일은 열매가 아니라 일(work), 즉 노동입니다. 진땀을 흘리면서 안되는 것을 해 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열매입니다. 열매는 절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절로 맺어지는 것이 열매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는 오직 하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항목들은 바로 이 사랑을 설명하는 요소들입니다. 사랑에는 희락이 있고, 화평하며, 오래 참고, 자비하며, 양선하며, 충성스럽고, 온유해지며, 절제의 미덕을 갖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의 최종 결론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영으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 생명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2. 에베소 교회에게…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에베소 교회는 아볼로에 의해서 세워진 것 같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이야기를 하려면 브리스길라와 아길라 부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본래 로마에서 큰 천막 비즈니스를 하던 유대인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 로마에 살던 모든 유대인들에게 로마에서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린도로 갔고, 거기에서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위해서 Job을 제공해 주었고, 물질적으로 그를 지원하면서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에베소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때 에베소에서 그들은 바로 에베소 교회를 세웠던 아볼로를 만난 것입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은 대단히 건실했지만, 2%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특별히 당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구약 성경에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칠 만큼 성경 지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 이후의 일들,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령 부어주심에 관한 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혜롭고 겸손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아볼로를 조용히 초청해서 그에게 바울에게서 배운 성경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겸손히 신자들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 고린도로 떠났습니다. 그 무렵 마침 고린도에 있던 바울이 에베소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간 머물면서 두란노 서원을 세웠고, 에베소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 기간도 바울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아주 탄탄하게 세워져 갔고, 그들의 영향으로 소아시아의 도시들마다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요한 계시록에서 편지하신 일곱 개의 교회들인 것입니다. 바울은 나중에 3차 전도여행을 마치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에베소로부터 약 10마일(16Km)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놓고 그들을 마지막으로 섬겼습니다. 성경으로서는 그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내려오는 문서들에 의하면 바울이 네로 왕 앞에서 첫 번째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에베소에 가서 섬겼는데, 그 후에 네로의 엄청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있었고 그때 다시 바울이 체포되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 일을 다루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 후에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위배되기 까지 그의 마지막 날들을 에베소에서 섬겼습니다. 요한이 떠난 후에 저 유명한 초대 교회의 교부들 중 하나인 폴리캅이 에베소의 목사로서, 혹은 감독으로서 에베소 교회를 섬겼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듯이 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보내신 편지에 보면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을 잃어 버린 것으로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여전히 부요하고, 당시 세계에 대단한 영향을 행사하던 교회였습니다.
이 에베소서는 A.D. 64년경 로마에서 쓰여졌습니다. 이 편지가 바로 “옥중서신”으로 알려져 있는 첫 번째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와 같은 시기에 쓰여지고 또한 보내어졌습니다. 이 편지들은 일반 서신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회람용 편지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교회들은 이 편지를 서로 교환해 가면서 읽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게 된 신령한 축복의 목록들을 나열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기쁘신 뜻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그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거절되지 않고 받아들여졌다는 것…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세 번 째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는데 여러분이 에베소서를 읽으시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구절들에 밑줄을 그어 보십시오. 아마도 여러분은 에베소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축복들이 모두 그리스도께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축복들이 그리스도께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축복의 목록은 바로 “그 뜻의 비밀(미스터리; Mystery)을 우리에게 알리셨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모두 한 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 이것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축복의 목록 중 가장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영광스런 교회의 머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2장에서 바울은 전에 멀리 있었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허시고 받아들여 주셨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3장에서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 함께 지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 바로 신비라고 말합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에게 이 복음의 직분이 주어진 것 역시 놀라운 은혜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하여 모든 성도를 온전케(성숙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목회의 일을 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제자를 양육해야 하고, 성도들이 목회의 직무를 감당하는 교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영적 성숙의 척도는 진리를 듣고 가르침을 받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습관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혹시 분을 내더라도 하루를 넘기지 말고 서로 인자하게 여기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주님은 촉구하십니다. 그런 마음이 5장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마음으로 자랍니다. 술이나 세속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 무슨 말을 하더라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 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의 변화는 가정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남편과 아내의 사랑 속에서… 그리고 6장에서 자녀와 부모의 관계, 직장인과 고용주의 관계 속에도 이 성숙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의 전신갑주를 취하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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