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52일통독 이사야40-57장

천국생활 2016. 7. 25. 06:59

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52 일

 


(이사야 40-57장)



<내용 요약>
이사야서는 크게 세 단원으로 나누입니다.
1. 심판의 메시지(시문학 형태; 1-35장)
2. 역사 이야기(산문체; 36-39장)
3. 구원의 이야기(시문학 형태; 40-66)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 40-57장을 통독하겠습니다.

40-48장: 종 되신 메시아를 통해 다가올 여호와의 위로
49-57장: 고난 받는 종을 통해 다가올 여호와의 구원
49장-52:12: 전 세계의 구속 주; 누가 하나님의 종인가?
52:13-53장: 고난 받는 종을 통해 선포된 구속; 누가 하나님의 양인가?
54-57장: 구속 주를 통해서 선포된 구속의 결과

<주요 통독 자료>
1. 대환난과 천년왕국의 도래(사 27:1-6)
이사야서 통독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이사야서가 우리가 가진 성경 전체와 아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성경은 전체 66권으로 되어있고, 이사야서는 모두 6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39권의 구약 성경과 27권의 신약성경으로 되어있는데, 구약 39권은 하나님의 율법과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신약 27권은 죄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셨던 우리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죄 지은 영혼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십니다. <에스겔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이라”고 하십니다<로마서 6:23>.
66권 전체의 성경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사야서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사야서의 1-39장까지의 전반부를 공부하는 동안 주로 다가올 7년 대 환난에 대한 예언 등 주로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사야의 예언들을 공부했습니다. 이사야는 “화 있을찐저”라는 용어를 거듭 거듭 반복해 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주변에 있었던 나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화가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해서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사야서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첫 장인 이 40장에 들어오면서 이사야서의 분위기는 갑자기 반전됩니다. 이제까지는 주로 하나님의 통치의 권위와 심판의 선언들에 대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예언들도 예수님의 초림과 지상사역에 대한 이야기들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벌어질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사야서의 초반부에 먼저 다루어졌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오면서 이사야의 예언의 초점은 예수님의 초림과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맞추어지게 됩니다.
여기 이사야 40장을 시작하는 구절을 보십시오. <이사야 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 구절이 원어에서는 “Nacham” 즉 “위로하라”라는 단어가 첫 머리에 나옵니다. KJV에서도 “Comfort, yes, comfort my people, says your God!”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지 않습니까? 이제껏 하나님의 심판과 이 땅에 벌어질 7년 대 환난, 그리고 예수님의 천년왕국에서의 철장 권세의 통치 등에 대해서 무서운 어조로 선포하던 이사야의 어투가 갑자기 바뀌어서 “위로”와 권고와 격려의 분위기로 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제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자유주의 성서 비평가들 중에서는 이사야서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다른 인물에 의하여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the Deutero-Isaiah hypothesis”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반드시 작가가 바뀌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시편 2편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편 22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즉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말합니다. 완전히 다른 주제이지만 여전히 한 사람, 다윗에 의하여 씌어졌습니다. 이사야서의 전반부는 마치 빽빽한 구름이 캄캄하게 하늘을 덮고, 무서운 천둥과 번개가 치며 나팔소리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을 선포했던 시내산의 두려움과 어두움이 잔뜩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후반부에서 그런 어두움은 깨끗이 걷히고 우리 하나님의 달콤한 사랑과 은혜에 대한 달콤하고 부드런 메시지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0장의 끝에서는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하니하리로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사 43:1-7)
이사야서의 전반부는 이스라엘와 유다의 동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거듭 거듭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유다의 파멸 이후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개역: 조성하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여기에서 “창조하다, 조성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가 다릅니다. “창조하다”는 <바라>입니다. 이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창조입니다. 하지만 “지으시다, 조성하시다”는 <야차르>입니다. 이것은 이미 피조된 어떤 존재에 환경과 상황을 조성하셔서 집요하신 하나님의 추적 가운데 새로운 존재로 만드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처음 지음 받은 야곱은 이름 그대로 “남의 발꿈치를 잡는 자”였습니다. 앞서 가는 사람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고 간교하게 앞장서 나아가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잔꾀로 뭔가를 얻으려는 욕심으로 가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야곱을 지으신 데에서 끝나지 않고, 그 야곱을 축복된 인물이 되게 바꾸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야곱을 추적하신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집어 넣으시고 혹독한 훈련 끝에 야곱을 깨뜨리시고, 얍복강 나루터에서 인간적으로 세웠던 모든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고, 마침내 그의 환도뼈의 힘줄까지 끊으셔서 그를 부서뜨리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역사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불 가운데를 통과할 때에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물 가운데를 통과할 때게 함께 하심으로써 물이 그들을 침몰치 못하고, 불이 그들을 사르지도 못하겠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실제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그발강과 티그리스 강의 왕의 운하 건설 현장에서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수많은 위험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사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평소보다 칠배나 뜨겁게 타오르던 풀무불 속에 던젼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인자(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불이 그들을 사르지 못화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불 속에 던진 군사들을 타죽었는데, 그들에게서는 끄을음 냄새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사랑의 역사로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 가운데를 지나거나, 물 가운데를 지나는 어떤 환경이 다가와도 두려워 하거나 놀라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그 모든 것들이 도리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시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3. 오늘 통독 분량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한 50장과 53장일 것입니다.
사 50:4-5의 말씀은 “귀 뚫린 종,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영원히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예언에서 이사야는 예수님이 보자기를 뒤집어 쓰신 채 사방에서 날아오는 펀치에 그 얼굴이 너무나 부어 올라 사람의 얼굴인지 짐승의 얼굴인지도 분간키 어려운 상황에 이를 것을 예언했습니다.
[사 53:1-6]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예언은 마치 이사야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광경을 그대로 보고 그린 것처럼 정확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예언입니다. 오늘 통독을 통해서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그의 보혈로 여러분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꼭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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