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21일통독 삼하11-24

천국생활 2016. 6. 21. 17:15

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21 일

 


(사무엘 하 11-24장)

<내용 요약>
사무엘 하는 크게 두 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다윗의 승리 (1-10장)
2. 다윗의 트러블들(11-24장)
이중에서 우리는 오늘 11-24장까지 통독하겠습니다.

11장: 다윗의 두 가지 범죄
12장: 나단 선지자의 방문과 다윗의 회개
13장: 암논의 범죄와 압살롬의 암논 살해
14장: 불완전한 용서로 압살롬의 복귀를 허락한 다윗
15장: 압살롬의 반란
16장: 시바가 다윗을 속임,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함
17장: 압살롬의 모사들(아히도벨과 후새)가 다윗을 공격하는 일에 반대하다
18장: 압살롬의 죽음과 다윗의 애곡
19장: 다윗의 왕좌 복귀
20장: 세바의 반역
21장: 3년의 기근과 기브온 족속의 사울 집안에 대한 복수; 블레셋과의 전투
22장: 다윗의 구원의 노래(시편 18편)
23장: 다윗의 유언; 다윗의 용사들
24장: 다윗의 인구조사의 범죄;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주요 통독자료>
1. 아마도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점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의 통독 분량 속에 적힌 글들은 적잖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말씀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일반 위인전들과는 달리 성경은 위인들의 밝은 면들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의 어두운 면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죄와 허물들을 드러냄으로써 우리 하나님의 용서와 관용, 미숙한 사람들을 들어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를 더욱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통독을 통해서 다윗에게 실망하는 점도 있겠지만, 다윗의 허물 속에서 우리들의 허물을 보아야 하며, 그런 다윗을 용서하시고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2. 밧세바와의 범죄: 모두가 전선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에 다윗은 궁궐에서 늦게까지 잠을 자고 느지막히 일어나 궁궐 바코니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이제까지 사울 왕에게 쫓겨 치열한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위기들이 지나가고, 내전의 위험한 시기들을 넘기고, 이제 좀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죄의 유혹이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여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젠 좀 마음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죄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우리가 끝까지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어권 한인 2세들이 잘 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밧세바의 이름 속에 그녀의 운명이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밧세바의 이름은 영어로, <Bathsheba>입니다. 이 이름을 세 음절로 자르면 <Bath; 목욕하다>, <she; 그녀>, <ba; 한국 말의 보다>라는 뜻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욕하는 그녀를 보다” 다윗이 목욕하는 그녀를 보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는 농담입니다. 물론 콩글리쉬입니다. ^^ 우리는 다윗의 다음 행동을 통해서 한 가지 죄악을 더욱 큰 죄를 초래한다는 평범하지만 무서운 진리를 배웁니다. 한 가지 죄는, 그 죄를 은폐시키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말과 또 다른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평범한 사람들도 상상할 수 없는 유치한 방법으로 죄를 은폐하려다 실패하자 아주 비열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충신 우리야를 살해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역시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다는 것이 이런 면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그에게 와서 신랄하게 그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서슬 퍼런 나단 선지자 앞에서 다윗은 한 마디 변명도 핑계도 없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바로 다음 순간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이다”라고 사죄의 선포가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에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 진 것 같지만, 사실 다윗의 마음 속에는 끔찍한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왔을 때, 다윗이 지은 시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저 유명한 시편 51편입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정결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며, 구원의 기쁨을 다시 새롭게 해 주시고, 자신을 주님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영을 자신에게서 거두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주께서 자신의 회개를 받아주시고 용서와 사죄의 기쁨으로 자신을 채워 주신다면 자신이 주의 백성들을 가르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바로 용서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약속을 지켜서 시편 32편을 쓴 것입니다. 시편 32편은 <다윗의 마스길>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의 교훈시, 즉 가르치는 시라는 뜻입니다. 그 시에서 다윗은 자신이 회개하지 않고 죄를 은폐하고 있었던 기간 중의 마음을 정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손이 자신을 누르는 것처럼 늘 힘들었고, 자신의 영혼이 말라 마치 여름 가뭄에 갈라진 땅처럼 말라버렸다”고 고백했으며, “자신의 영혼이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회개하기로 결정하자, 주님은 그의 은신처가 되어주시고 구원의 노래를 그를 채워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4. 다윗은 그의 곁에 충성을 맹세한 남자들을 거느린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곁에 항상 여자들이 끓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은 솔로몬에게 남자다워야 한다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어떻든 다윗 곁에는 항상 남자들이 들끓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의탁할 여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많은 여성들을 얻게 됩니다. 미갈, 아비가일, 밧세바… 결국 다윗의 집안에서 서로 어머니가 다른 이복 자녀들이 낳아지게 되고 그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게 됩니다. 그 중 어쩌면 다윗의 마음에 가장 들었던 아들이 압살롬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다윗을 가장 닮은 아들이었습니다. 남자답고, 야인의 기질이 있었고, 정복욕과 영웅심리를 가진… 사실 솔로몬은 다윗 스타일의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첫 아들이면서도 늘 외모나 기질이나, 재능 면에서 밀렸던 암논은 결국 압살롬 집안에 대한 열등의식이 가득해서 압살롬의 동복 누이인 다말을 범했고, 이 일로 압살롬에게 살해 당하고 맙니다. 다윗은 이 일로 압살롬을 내칩니다. 결국 요압 장군의 중재로 다시 압살롬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끝내 마음 속에서 그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결국 압살롬은 다윗에게 반역의 칼을 들었습니다. 불행이죠.

5. 사실, 야전 사령관으로 평생을 살아온 다윗과 그를 위해 목숨을 건 요압 장군 같은 부하들에게 압살롬은 애송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자기 아들 압살롬이 다치는 게 싫어서 정면으로 압살롬과 충돌하지 않으려고 선뜻 보좌를 내주고,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을 건너 이방인의 땅 마하나임으로 갑니다. 압살롬은 백주 대낮에 왕궁 옥상에 텐트를 치고 다윗이 남긴 후궁들을 겁탈하는 패륜적이고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릅니다. 결국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의 반격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의 최고의 자랑이었던 그의 머리카락이 문제였습니다. 그 머리카락 때문에 말이 상수리 나무 아래를 달려갈 때에 그만 나뭇가지에 머리채가 걸려서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요압 장군에 의하여 압살롬은 죽임을 당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최고의 자랑거리에 의하여 공중에 매달리게 됩니다. 우리는 압살롬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 단원에서의 그리스도>
1. 우리는 압살롬의 반역에 의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가는 다윗의 모습 속에서 예루살렘에서 영문 밖으로 나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지금은 성령의 권능으로 이방 땅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모으시고 교회를 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다윗이 피난을 가는 동안 요단 강 가에서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는 광경을 봅니다. 아마도 이것이 시편 22편의 배경이었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을 시작으로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의 광경을 그대로 보고 그린 것처럼 십자가 주변의 풍경들을 예언하는 시를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22편을 메시아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시편 통독에서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방 땅 마하나임에서 다윗에게 편의를 제공했던 바르실래처럼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요단강을 건너 이방 땅으로 도망쳤던 다윗이 다시 요단 동편에 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시는 재림의 날이 올 것입니다. 압살롬이 파멸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도전했던 사탄은 결박을 당하여 무저갱에 던져지고 그를 추종하던 모든 마귀들이 함께 던져진 후에 이 땅에서 예수님은 천년 동안 왕노릇 하시는 왕국시대를 여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바르실래처럼 우리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2. 우리는 24장에서 다윗의 인구조사를 통한 범죄를 봅니다. 이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총 정리하며 자신의 통치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고자 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징계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세 가지 선택의 여지를 주셨습니다. 7년간의 기근, 3년간의 전쟁, 그리고 3일 동안의 온역… 다윗은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쪽을 택하겠다.” 그래서 3일 간의 온역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매력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달았을 때, 우리를 향해 매를 들고 계신 하나님의 품으로 뛰어드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매를 덜 맞는 비결입니다. 어떻든 겨우 반나절만에 온역으로 죽은 사람이 7만 명에 달했습니다. 아마 3일 동안 온역으로 치셨다면 이스라엘이 전멸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노 중에라도 은총 베풀기를 잊지 않으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저녁 제사 드릴 시간(오후 3시)이 되기 전에 온역을 가치고자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에게 제사를 명하십니다. 이때 다윗은 모리아 산에 있었던 아라우나, 혹은 오르난이라는 인물의 타작 마당을 사서 거기서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3. 이 제사의 광경을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아라우나는 다윗을 맞이하면서 다윗이 필요한 것을 모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제단을 쌓을 땅도, 제사에 사용할 장작도 송아지도 모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값을 치르지 않고는 하나님께 제사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결정입니다. 만약 다윗이 대가를 지불하고 이 제단을 사지 않았다면 나중에 분명히 분쟁이 생겼을 것입니다. 좋을 때는 공짜로 얼마든지 쓰시라고 하지만, 감정이 좋지 않을 때는 분명 문제가 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바로 이 자리가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그 자리이고, 역대하 3:1에 보면 바로 이 자리가 또한 훗날 솔로몬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진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느부갓네살이 훼파합니다. 그리고 스룹바벨에 의하여 포로생활 이후에 재건 성전이 지어지게 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 버리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헤롯 대왕이 새로 성전을 지어주었는데, 이 성전을 본래 솔로몬의 성전이 있던 자리로부터 약간 비껴진 곳에 세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이 있던 곳은 큰 반석이었는데, 일종의 대리석 광산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대리석을 캐내어 성전을 짓는데 사용하느라고 구멍이 뻥 뚫린 것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해골바가지 모양이어서 이곳을 히브리어로 골고다라고 불렀고, 나중에 라틴어로 갈보리라고 번역이 된 것입니다.

4. 그러니까 다윗이 값을 주고 산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이 훗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바로 그 장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이 그 장소를 값 주고 샀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 인류의 문제입니다. 반나절 만에 7만 명이 죽임을 당한 그 무서운 진노가 질풍노도처럼 인간에게 쏟아 부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가 멸망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골고다에서의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인간의 범죄의 본질을 잘 보여주었고, 그의 모리아 산에서의 제사는 결국 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 그림이 된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벼락을 허물어 주시고, 전에 원수 되었던 우리에게 화목을 주신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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