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20 일
(사무엘하 1-10장)
<내용 요약>
사무엘 하는 크게 두 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다윗의 승리 (1-10장)
2. 다윗의 트러블들(11-24장)
이중에서 우리는 오늘 16-31장까지 통독하겠습니다.
1장: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애도하는 다윗
2장: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다
3장: 내전-아브넬이 다윗에게 왔으나 요압에게 살해됨
4장: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임 당함
5장: 다윗이 드디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6장: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봉송하려는 일의 실패와 성공
7장: 다윗이 집안을 향한 언약(the Davidic Covenant)
8장: 다윗이 그의 왕국을 공고히 하다
9장: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푸는 다윗
10장: 암몬과 아람에 대한 다윗의 전쟁
<주요 통독자료>
1. 1-5장의 말씀들은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후에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위에 오르기 까지 상당기간 내전을 겪어야 했던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생은 참으로 평탄치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자신을 쫓아다니던 때, 그를 피해 광야와 산중과 암혈에 유리하면서 그가 지었던 시편들을 보면 다윗은 자신을 광야의 당아새(펠리컨)와 같다고 묘사했고, 마치 벼룩을 사냥하는 자처럼 집요하게 자신을 추적해 오는 사울의 공격에 늘 두려움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데도 두 차례 자신의 손으로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없다는 신념을 지켰던 그런 성품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여러 성향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는 어떤 일에도 서두르지 않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일을 이루시기를 바라보면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이런 것이 인간의 선호 성향이었던 사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부분입니다. 사울이 죽은 후,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다윗에게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봅니다. 자신을 찌른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기도가 다윗에게서 보입니다.
2. 오랜 기다림 끝에 이스라엘 전체의 왕위에 오르자 다윗은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봉송해 왔습니다. 우리는 언약궤의 봉송이 담긴 6장을 읽으면서 “지식이 결여된 열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배우게 됩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방법이 잘못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신다는 것 또한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사람들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하나님께서는 과정 또한 아주 중시하십니다. 우리 한국인 신자들이 교회에 나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 오직 인간적 열심만 가지고 덤비게 되면 위험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 무서운 열심을 가진 종교인들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32편을 보시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는 다윗의 열심을 볼 수 있습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의 예루살렘 입성을 축하해 주기 위하여 많은 재목들과 일꾼들을 보내어 호화로운 궁궐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언약궤를 모셔오기 전에는 그 궁궐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잠도 잘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열심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약궤를 이동하는 방법을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지 않고 인간적인 아이디어로 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언약궤의 이동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3. 삼하 6:1-3을 보면 다윗은 이 행사를 아주 거창하게 치렀습니다. 30,000명의 무리를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운반하는 일은 그냥 레위지파의 고핫 자손 몇 명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군중을 모아 거창함을 내세울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는 항상 고핫 자손들이 메고 옮기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새 수레를 만들어 수레로 옮기려 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훨씬 멋져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다윗은 말씀대로 하지 않고, 과거에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빼앗아 갔다가 다시 이스라엘에 돌려줄 때 했던 그 방식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새 수레에 싣고, 새 암송아지가 끌고… 그래서 그 수레를 부수어 화목으로 삼고 암소를 잡아 제사를 바치던 블레셋 사람들의 거창한 행사가 다윗에게 감동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방인의 방식으로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레가 움직이다가 소가 갑자기 뛰는 바람에 언약궤가 떨어질 뻔 했습니다. 그러자 소를 몰던 웃사가 언약궤를 잡았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기 때문에 정해진 사람 이외에 누구라도 만지면 죽었습니다. 웃사도 죽었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역대상 13장을 읽을 때에 다윗이 이 일을 천부장, 백부장, 그리고 모든 장수들과 의논하고 행했다는 것을 읽게 됩니다. 번지수가 잘못 됐죠? 제사장을 찾아서 물어 봐야요. 아니면 최소한 깨어있는 선지자를 찾아서 의논했어야죠. 지금까지 다윗은 매 순간 하나님께 묻고 모든 일을 행했는데, 그것이 다윗의 매력이었는데, 이 순간 다윗은 장군들과 의논하고 일을 벌였습니다.
4. 역대상 13장의 글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윗이 이 일을 의논하면서 은근히 사울과 자신을 차별화 하려는 언사를 행했다는 것입니다. 대상 13:2-3에 보면 “사울의 때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은근히 사울을 비난하면서 자신을 추켜세우는 모습을 봅니다. 다윗은 이 일을 통해서 백성들의 마음을 사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최대한 사람들을 매료시킬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의 방법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중에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향하여 빈정대는 것에는 이런 다윗의 태도도 한 몫 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삼하 6:5을 보면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각종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런 기교들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맘대로 언약궤를 운반하려다가 이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윗은 갑자기 태도가 바뀝니다. 삼하 6:8-9을 보면 다윗이 분을 내면서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겠느냐”고 버럭 댑니다. 그리고 즉시 계획을 포기해 버립니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잠도 자지 않겠다던 그는 갑자기 이 계획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 의지대로 뭘 하려다가 잘못 되면 그 열심 만큼 시험에 빠지는 우리 자신을 봅니다. 다윗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래서 다윗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게 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언약궤를 메어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오벧에돔의 집에 언약궤가 석달 머물러 있었는데, 이 사람의 집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다시 이 일을 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열심을 다시 자극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오벧에돔이 언약궤로 인하여 큰 복을 받았다고 전해주자, 다윗은 즉시 언약궤를 기쁨으로 메고(물론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에게 이 일을 하게 했겠지요)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대상 15:2을 보면, 다윗의 깨달음이 고백되는 것을 봅니다. 레위지파 사람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 열심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님을 배웁니다. 지식을 좇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시는 지식 말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도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은 열심이 아니라는 것을 한탄했습니다.
<이 단원 속의 예수 그리스도>
1. 우리는 오늘 통독 분량 중 두 군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선명한 그림자를 봅니다. 하나는 사무엘하 7장의 “다윗의 언약(the Davidic Covenant)”이고 다른 하나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향하여 은총을 베풀어 주는 다윗의 모습 속에서입니다. 그 첫째 것을 봅시다. 다윗은 그의 친구이며 모사였던 선지자 나단을 불러 그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성전을 하나 지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나단은 처음에 매우 기뻐했습니다. “왕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가볍게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단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의 손에 피를 많이 묻혔기 때문에 다윗의 손으로는 성전을 지시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 다음에 일어날 다른 왕,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께 집을 지어드리는 대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집(House; 가문)을 견고하게 세워주겠다고 하시면서 다윗의 집안에서 치리자의 지팡이가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실로, 즉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이 언약이 지켜질 것이라는 예언은 바로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아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요셉을 통해서도 마리아를 통해서도 다윗의 혈통인 그런 집안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이 언약은 구약의 예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심 뼈대가 되는 예언입니다.
2. 다윗과 요나단이 얼마나 따듯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어제 보충 자료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한가지 언약을 맺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사울 왕의 아들이었고, 왕정 통치의 특성상 자신이 왕위를 물려 받을 적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사울 왕가를 버리시고 다윗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나는 네 다음이다”라고 말하면서 마치 요나단과 같은 이름을 가진 요한이 예수님께 한 말과 동일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신의 아들을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에 지켜 주기를 구했고, 다윗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 언약에서 요나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윗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요나단에게는 므비보셋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이 어렸을 때, 사울과 요나단이 죽음을 당하자 유모가 생각했습니다. “다윗이 분명 이 아이를 찾아 죽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안고 급히 도망을 치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두 다리가 다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자신의 힘으로 어디도 움직일 수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영어로 떨어졌다는 말은 “fall”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동시에 “타락”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므비보셋은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치다 타락해서 자신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망에 처한 인생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3. 다윗은 요나단이 남긴 므비보셋을 찾아 애를 씁니다. 이것이 죄인 된 인생을 찾기 위해 애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드디어 다윗이 요나단의 숨은 곳을 알아냈습니다. 그곳은 바로 “로 드발”이라는 곳인데, 히브리 말로 “초장이 없는 곳, 안식이 없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친 인생은 결코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물도 없고, 초장도 없는… 인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이 광야 지대에 므비보셋은 은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죄악 된 땅에 숨어 안식도 없이 지내던 우리 죄인들을 찾아내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두 다리를 모두 잃은 므비보셋이 움직일 수 없듯이 죄로 타락한 우리 인생도 우리 힘으로 하나님께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드디어 다윗에 의하여 찾아내어진 므비보셋은 다윗의 집에 들어가 왕의 식탁에서 왕과 왕자들과 함께 왕자들 중 하나처럼 먹고 마시고 왕과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변화된 우리들의 신분입니다. 우리는 왕 되신 하나님의 테이블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왕자와 공주들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므비보셋이 구원을 받은 것은 브비보셋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과 맺은 요나단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구하신 우리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감격의 찬양이 입에서 터져 나오려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모두 잠든 이 밤에 저는 혼자 이 글을 쓰면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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