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입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내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가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느냐고 묻자 겨우 7.7%의 아이들만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신뢰의 위기 속에 빠져 있습니다. 총체적인 위기입니다. 무엇을 숨길 게 있단 말입니까?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면 됩니다. 왜 되돌릴 수 없는 일에 집착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어간 이들의 한이 신원되지 않는 한 이 나라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아픔을 외면한 채 바치는 우리의 찬양을 하나님이 들으실까요?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그런 절통한 아픔조차 감싸 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감히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겠습니까? "인간적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은 어김없는 진실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울라 말합니다. 비천한 이들과 사귀라 합니다.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치적으로 누구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순합니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마25:34). 그 복을 받은 이들은 누구입니까? 오랫동안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 아닙니다. 헌금을 착실하게 하고, 은혜 받는 집회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몸짓으로 찬양을 올린 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곤경에 처한 이들의 형제자매가 되어 준 이들입니다.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이들은 '좋은 교인'이 아니라 '참 사람'입니다. 물론 좋은 교인과 참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게 결합된 말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참 사람됨'의 길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참 사람입니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누군가의 좋은 이웃이 되어주는 사람이 참 사람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먹이고 싶어지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 대접해주려는 사람, 외로운 나그네를 보면 따뜻하게 맞아들이려 하는 사람, 헐벗은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입혀 주려는 사람, 병들어 몸과 마음이 다 무너진 사람을 보면 그의 곁에 머물며 힘이 되어 주려는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을 보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넘어 가엾게 여기고 그를 찾아 주는 사람이야 말로 참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 김기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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