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그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어 그것을 내면화하고 또 그것을 몸으로 살아볼 때 비로소 말씀 속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은 ‘성경 공부’를 참 열심히 합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성경공부가 피상성에 머물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미풍이 되어 우리를 감싸기도 하고 우리 속에 생명의 기운을 싹틔우게도 합니다.
때로는 예리한 검처럼 우리의 나태한 삶과 영혼을 베고 때로는 묵직한 망치처럼
우리의 헛된 망상을 타격해 깨뜨리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그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빌립 집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 읽는 것을 이해하냐?’(행8:30)고 묻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홍수에 마실 물 없다는 말처럼 우리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침묵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침묵시키는 시대라는 말이 맞을 겁니다.
듣기 좋은 말만 가려듣고, 불편한 말씀은 도리질하며 떨쳐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배움의 기회가 주어져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만큼 안다는 뜻인가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뜻을 정한 후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난 창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단6:10).
뜻을 정하고 살아도 넘어지기 쉬운 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과 만나는 시간을 자꾸 유보합니다.
할 일 많은 여호수아에게 율법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공부하고 성심껏 실천하라고 하신 것은
그래야 그에게 품부된 일을 감당할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낙담의 사전적 정의는 “바라거나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하여 실망하고 맥이 풀리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여호수아가 직면해야 했던 문제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홀로 결단해야 하는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의 몰이해로 인해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도 철없는 백성 때문에 마음이 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이 모든 백성을 제가 배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마치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그들을 품에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민11:12)
모세는 ‘나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도 그런 순간을 많이 만났을 것이고, 또 만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걸 아시기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낙담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가끔 주후 360년 경 로마의 스키타이(Scythia)에서 태어난 존 카시안(John Cassian)의
<여덟 가지 악에 관하여>라는 글을 읽습니다.
여덟 가지 악덕은 탐식, 부정, 탐욕, 분, 낙심, 태만, 자만심, 교만입니다.
그는 낙담에 맞서야 할 까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낙담의 마귀는 영혼의 영적 관상 능력을 흐리게 하고,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마귀는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아 완전히 어둡게 만들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꾸준히 성경을 읽어 유익을 얻지 못하게 하고, 형제들을 온유하고 긍휼하게 대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온갖 종류의 일에 대한 미움, 심지어 수도 서원 자체에 대한 미움을 주입합니다.
그는 영혼의 유익한 결단을 손상시키고 인내와 끈기를 약하게 만들며, 영혼을 무감각하고 마비되게 하고,
낙심되는 생각들의 속박을 받게 만듭니다.”(<필로칼리아․1>, 엄성옥 옮김, 은성, 112쪽)
낙담은 영혼을 갉아 먹어서, 유익한 만남을 피하게 하고, 벗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마음에 앙심과 태만함을 가득 채웁니다. 낙담을 이겨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도, 하나님 안에 소망을 두기, 성경 묵상, 경건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 등입니다(114쪽).
낙담의 마귀가 횡행할 때일수록 함께 기운을 북돋워주는 이들이 필요합니다(con-viviality/이반 일리치가 만든 용어).
오늘 우리는 지치고 낙심한 이들 곁에 다가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그들을 북돋고 일으켜 세우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 공동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서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낙심할 수 없는 것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9)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삶이 아무리 힘겨워도 우리는 기어코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옛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불화의 갈등의 세계를 건너 화해와 사랑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리 가슴에 깃든 별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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