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신앙과 우리의 신앙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게 마련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참 말씀은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예언자들의 운명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복음을 전파하다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었습니다(고전6:4-5).
물질적 보상이나 세상의 영광을 구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왜 그런 길을 택했을까요? ‘복음의 빚진 자'라는 말 속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은총을 가슴 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곧 하나님의 의의 체험이 그를 새로운 존재로 빚어주었던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은총은 율법주의의 사슬로부터 그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마18:21-35).
그 순간부터 그는 값없이 받은 은총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을 자기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경제적인 이득이나 사회적인 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그의 삶과 동떨어진 것입니다.
그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사도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특권조차 포기했습니다.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일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신앙의 본이 되기 위해 애썼습니다.
“신도 여러분을 대할 때에,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잡힐 데가 없이 처신하였는지는,
여러분이 증언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증언하십니다.”(10)
위선적으로 살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조심스럽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때로는 어머니가 자녀를 돌보듯 유순하게 처신했고(살전2:7),
때로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이 대했습니다(2:11).
더 나아가서 그는 자기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을 품고 살았습니다(2:8).
너나할 것 없이 사람은 다 이기적이게 마련인데, 바울의 이 말은 참 낯설게 들립니다.
다른 이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할 각오를 하는 사람,
그는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선을 행하려는 확고한 지향과 결의가 없다면
아직 우리는 예수와 깊이 접속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그의 결핍을 채워주려는 마음이 천국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곤경과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도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았다면서
그 까닭을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면, 이제 우리가 살아있는 셈이기 때문”(살전3:8)이라고 말합니다.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일을 자기 소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성도들을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하는 일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에 대해 실망할 때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많은 죄를 탕감받은 종임을 알았기에 다른 이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로로 삼아 당신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셨습니다.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은총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발원하여 우리에게로 흘러온 그 은총이 우리를 통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끊임없는 운동입니다.
기독교인은 자기 속에 유폐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이웃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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