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이다
가끔은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일 때문에 좌절하고 낙담하기도 합니다.
삶의 형편이 달라지면 세계관도 바뀝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은 참 수줍음이 많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그는 초심을 잃었습니다.
그가 선 자리가 그의 생각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도 인생의 절정기에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장담하는 순간 유혹자의 올가미가 우리 목에 놓이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단체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신교도들을 이르는 말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입니다. 항거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는 교회와 전통에 대해서 항거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체제에 온 몸으로 부딪혀나감으로 파란 불꽃을 일으켰습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지 않는 한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도들은 기복주의적 신앙에 깊이 물들어 있고, 목회자들은 안일에 빠져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회 변혁을 위해 나와 함께 일하자는 주님의 초대를 외면하고 있고,
교권주의에 물든 목회자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교단 총회에서 가스총을 들고 설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목회자들의 성추문 사건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이겠지요.
지금 이 땅의 교회들은 중세의 가톨릭 못지않게 혼탁합니다.
얼마 전 주간지인 <시사인>은 한국 종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종교를 묻는 질문에 천주교라고 응답한 이들은 61.8%였고,
불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55.1%였습니다.
그에 비해 개신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28.1%였습니다.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어느 사이엔가 하나님의 복음이 있는 그대로 선포되지 않고 왜곡되어 선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결과 교회는 우리 삶의 현실과 점점 괴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과 눈물의 땅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주님의 당부를 우리는 잊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척박하다 해도 말씀의 쟁깃날로 우리 마음 밭을 갈아엎고,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복음의 씨앗을 다시 뿌려야 합니다.
성경이라는 돛대에 자신을 묶고 진로를 고수했던 마틴 루터처럼
우리도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물론 우리 삶은 고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보다 우리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길은 없습니다.
그 길 위에 서는 순간 삶의 비애는 줄어듭니다.
나의 일에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우리 삶을 봉헌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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