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평화가 아니라 불화를 조장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18세기 독일의 극작가이며 철학자였던 고트홀트 E. 레싱(Gotthold E. Lessing, 1729-1781)의 작품
<현자 나탄>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쟁패를 벌이던 십자군 시대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희곡을 통해 참 종교를 분별하는 법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왕에게 소유자로 하여금 신과 인간의 사랑을 받도록 신통력이 부여된 반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그 반지는 반지의 신통력에 대해 소유자가 확신할 때만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입니다.
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다 훌륭했기 때문에 왕은 어느 아들에게 그 반지를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은 어느 날 세공사를 불러 진짜 반지와 똑같은 반지 두 개를 만들어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세공사는 정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반지를 만들어왔습니다.
왕은 아들들을 따로 불러 반지를 넘겨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들은 반지가 세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위를 두고 다투던 그들은 판결을 내려달라며 재판관에게 나아갔습니다.
재판관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혜안이 떠올랐습니다.
재판관은 왕자들을 불러 일렀습니다.
"이 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해라.
너희가 각각 반지를 아버지한테서 받았다면, 자기 반지가 진짜라고 확실히 믿어라…
그리고 아버지의 공평하고 편견 없는 사랑을 본받도록 노력하라.
자기 반지에 박힌 보석의 신통력을 현현시키려고 경쟁하라.
온유함과 진정한 화목과 옳은 행동과 신에 대한 진정한 순종으로써
그 신통력을 돕도록 하라."(<현자 나탄>, 128쪽)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진짜 반지를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증명할 길은 그 반지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아픔의 자리에 서면 세상의 모든 것들의 차이가 지워집니다.
종교도 인종도 피부색도 빈부도 유식과 무식의 차이도 없습니다.
그 아픔의 자리에 서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평화를 위해 부름을 받았으면서도 불화를 조성한다면 그 까닭은 분명합니다.
나를 이롭게 하려고 남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내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남의 나라를 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마20:25-26)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강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사람들 입니다.
다른 이들을 억압하고 세도를 부리고 거들먹거리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태도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도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고 남보다 돋보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가 택해야 할 삶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섬김과 나눔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나누려는 마음이 있는 곳에 평화도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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