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이기느니라---환난 중에 즐거워한다"
갈대아 사람들이 그 성에 와서 그 성을 멸절시키기 시작할 때, 그들이 그들의 사람으로 채울려고 할 때,
하박국을 지탱시켜 준 것은 무엇입니가?
그것은 단순히 '좋다. 엎질러진 물을 보고 울어도 소용은 없다. 그것으로 인해 놀랄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 일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는 말을 하며 체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초연함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길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관에나 가서 영화나 보자. 소설이나 읽자.
생각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주의입니다.
또한 용기를 가지려고 노력하며 애쓰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심리적인 처방'은 영적인 방식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전력 투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할수없는 두려움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잔인한 것입니다. 만일 그가 자신을 그런 식으로 몰아 세운다면 두려워 떠는 것은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런 때에 세상이 제공하는 방식들은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한 방식들은 전적으로 육신적인 놀란 상태에 사람이 처하여 있을 때에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합3:16).
성경은 단순히 체념하라거나 용기를 내라고 권면하는 대신 그러한 조건에서 실제적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심지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합3:17-18).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것을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좋은 조건에 있으면 체념할 수 있는 인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힘을 내려는 분위기를 자아내려고 애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추천할 만한 정신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것과는 대조로 비록 육신적으로 철저하게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힘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러한 위험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합니다.
그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악한 환경 중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맞는 도전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는 다르고 또한 달라야 합니다.
이것을 보여주면 갈대아인은 물러갈 것입니다.
지옥의 권세가 아무리 득세한다 할지라도 우리는'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즐거워 해야 합니다.
그때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의 진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우리들이 그런 때에 넉넉히 이기지 못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이더 죤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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