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Q.T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때 얻는 것들---죤 칼빈

천국생활 2010. 5. 14. 14:02

핍박은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합니다.

우리가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탁월한 위로의 원천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봉사자라는 증거로 단장되는

놀라운 영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은 복음을 방어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의로운 목적들을 지지하기 때문에 반대를 받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사탄의 거짓과 맞서 하나님의 진리를 방어하거나 혹은 불의와 손상에 맞서 선량하고

무죄한 사람들을 보호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세상의 증오와 혐오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우리의 소유, 우리의 평판이 위협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헌신할 때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입으로 우리를 가장 복되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우리는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가난 그 자체는 고통이요. 추방, 경멸, 수치, 투옥도 고통입니다.
모든 재난 중에도 죽음은 최후, 최악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의 은혜를 부어주시면 모든 일은 합력하여 우리의 행복과 번영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체의 거짓 견해에 동조하기 보다 그리스도께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언제나 사도들처럼 기뻐하게 됩니다. (행5:41)

 


핍박은 영적 기쁨을 가져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의로운 목적을 수호하기 때문에 모든 학대와 불행을 겪는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와같은 고난이나 십자가는 신자에게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와같은 역경들을

자아포기와 영적 기쁨으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고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극도로 배은망덕한 행위라는 비난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한 대로 우리의 고난에 의해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고상하고 자립적인 마음에 대한 거만한 공격은 백번 죽는 것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모욕이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핍박뿐만 아니라

환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도 그의 본을 따라서 "악한 보고와 선한 보고"를 만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여 모든 쓰라리고 슬픈 감정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성도들이 슬픔으로 어려움을 당하거나 비통함으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면

십자가를 감당하면서 아무런 인내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난 속에 고난이 없고, 질병 속에 고민이 없고, 모욕 속에 고난이 없고,

죽음 속에 공포가 없다면, 이런 고난을 대범하게 여기는 것이 무슨 용기나 덕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고난들 하나 하나는 저마다의 쓰라림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굴복시키기 때문에

신실한 성도는 아무리 많은 수고가 따르더라도 슬픔을 저항하고 극복함으로서

참된 능력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들은 예민하게 자극을 받을 때 인내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그들이 무절제한 폭발을 하지 않도록 억제시켜 줄 것입니다.
슬픔과 서글픔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적 위로 속에서 안식할 때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이 보다 선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벧전4:14 딤전4;10 고후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