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개신교회(개혁교회)의 교역자와 교인이면서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를 잘 모르고 오해하는 수가 많다.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 교회들이 때로는 그
신학과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개혁 교회의 범위를 벗어나고 심지어
반 개혁주의적 현상을 나타내는 수가 더러 있다.
전에 한국에 와 있던 간하배 선교사는 “한국적 현실은 비개혁 요소가 많다”고 설파하였다.(1) 한국의 개혁 교회들이 비개혁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들을 바로 인식하여 개혁 교회다운 교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가야 하겠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동기와 성질과 원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성경 인정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기독교의 신학과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하고 절대유일한 권위요 규범이요 원리요 법칙이라고 인정하였다.
(1) 성경으로 돌아갔다
① 예수께서 성경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언하셨고, 또 자기는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다고 자증하셨다.
마태복음 5:18에서 예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마태복음 26:53~54에서는 “내가 만일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면…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하시면서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 죽으시는 사실을 증명하셨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3~4에서 바울사도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였는데 예수께서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사셨을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 나시고 성경대로 자라나시고 성경대로 가르치시고 성경대로 사탄의 시험도 물리치시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사시고 성경대로 승천하시고 성경대로 재림하실 것이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다 성경대로의 생애였다.
② 초기 예루살렘 교회도 성경대로 이루어졌고 성경대로 발전하여 왔다. 그 실상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1:16에서 예수님을 잡는 자의 길을 가르쳐준 유다는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다고 말하였고 또 오순절 성령 강림시 거기 모였던 사람들에게 요엘 2장과 시편 16편 및 110편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강론하였다(행 2:14~36참고).
다시 사도행전 4:23~31에서 그때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사도들의 말을 듣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여 성령을 받아가지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 사도행전 5:17~25에도 보면 사도들이 옥에 갇혔을 때에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 내면서 너희는 “가서 성전에 서서 이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전하라.” 하였으므로 사도들은 옥에서 나와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쳤다”고 하였다.
사도행전 6장에서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기…” 위하여 일곱 집사를 택하였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져…”서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도 대제사장들에게 구약의 역사와 말씀을 인용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였다.
사도행전 8장 이하에서는 복음이 유다와 사마리아로 확장되어 가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8:4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당하였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유다와 사마리아로 흩어져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고 하였고, 8:14에서는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다고 하였다.
사도행전 13장에 와서는 안디옥에도 교회가 섰고 바나바와 사울은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 회당에서 전하였는데 총독 서기오 바울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사도행전 13:29에 보면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의 백성들과 관원들이 죄 없는 예수를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고 한 것은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다.”라고 성경이 응하여진 사실을 증거하였다.
이외에도 초대교회가 말씀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말씀대로 발전하였다는 말씀들이 많다(행 13:42, 48, 15:36, 17:2, 11, 13, 18:4, 19:9, 20, 20:7, 9, 32, 28:23, 31 등을 참고).
이상과 같이 예수님은 성경대로 역사하였고, 또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나 사마리아 교회나 안디옥 교회가 다 하나님 말씀대로·성경대로 시작되었고, 조직되었고 발전하여 왔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 교회는 차차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성경에 없는 제도, 성경에 없는 교리, 성경에 없는 행사를 하게 되었다. 특별히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이르러 이것이 극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초대교회와 같이 성경대로 제도와 교리와 생활을 부활하여 놓은 것이었다.
그런고로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종교개혁은 성경운동이다”라고 말한 것은 타당한 말이었다. 실로 종교개혁은 성경을 다시 찾은 운동이었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오직 성경이라고 하는 ‘Sola Scriptura’의 원리를 확정하여 놓았다.
(2)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독교의 신학과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하고 절대유일한 권위요 규범이요 원리요 법칙이라고 인정하였다.
성경영감은 디모데후서 3:16과 베드로후서 1:21에 기록되어 있고 성경의 권위와 규범성에 관하여서는 데살로니가전서 2:13, 고린도전서 15:3~14, 디모데후서 3:15~17등에 명시되어 있다. 영감의 방법은 유기적 영감설(有機的 靈感說), 영감의 범위는 완전축자 영감설(完全逐字 靈感說)을 취하였다.
J.칼빈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는 제자가 되지 않고서는 바르고 성스러운 교리의 미소한 부분이라도 맛볼 수가 없다고 하면서 그런고로 “성경이 없이는 모두 오류에 빠진다”고 하였다.(14)
Ch.하지 박자는 “구약과 신약을 내포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신앙과 실행의 무오한 법칙이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다.”라고 말하였다.(15)
박형룡 박사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따라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에 관한 모든 것에 신적 권위를 가지며 그 결과로 교리에든지 사실에든지 교훈에든지 전연 오류가 없다”고 말하였다.(1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제2조 끝에 “이 모든 책(성경 66권)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믿음과 생활의 기준이 된다”고 하였고 성경 소요리문답 제2문답에서는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가르치는 유일한 규칙이다”라고 하였으며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신조 제1조에 보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고 규정하였다.
2. 하나님의 절대주권 인정
하나님은 자기의 절대주권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죄인들을 구속하신다는 원리를 확정하였다.
역대상 29: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다니엘 4:34~35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의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시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1) 창 조
창조를 주권으로 하셨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시편 89:11~12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헐몬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즐거워하나이다.” 이사야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장 제1조 보면 ‘성부 성자 성령이 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능력과 지혜와 선하신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태초에 무에서 모든 것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지으시기를 기뻐하셨다’(대요리문답 15문답, 소요리문담 9문답도 참고).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여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의 권능으로 하늘과 땅을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것, 이 권능으로 모든 종류의 생물과 무생물을 산출하셨다는 것, 각기 종류에 따라 거기에 적당한 성질을 주시고 임무를 주시고 처소와 위치를 정해 주셨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17)
(2) 섭 리
섭리도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하신다. 섭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다음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거나 자연법칙에 맡겨 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속하여서 그 모든 피조물들을 보존하시고 협력(지도)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 섭리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주권으로 하신다.
섭리에 관한 말씀들을 보자.
보존에 관한 말씀들(느 9:6, 시 145:15~16, 히 1:3)
협력(지도)에 관한 말씀들(출 4:15, 잠 21:1)
통치에 관한 말씀들(시 22:27~28, 103:19, 단 4:25, 35)
칼빈은 “우리는 하늘과 땅의 무생물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계획이나 뜻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로 주관되어 그가 정해 놓으신 목표를 따라서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실을 주장하는 바이다”라고 말하였다.(18)
Ch. 하지 박사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사역은 그의 모든 창조물과 그 행동을 가장 거룩하고 현명하고 능력있게 보존하시며 처리하신다”라고 말하였다.(19)
L. 벌코프 교수는 “이 섭리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며 세계에서 생성하는 모든 일에 행동하시며 그리고 만물을 정하신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 이 정의에는 섭리 속에 세가지 요소 곧 보존(Preservation), 협력(Concurrence of Cooperation), 통치(Government)가 있음을 말해 준다. 보존은 만물의 보존에, 협력은 그 활동에, 통치는 각각 지도에 관계되어 있다.”고 말하였다.(20)
박형룡 박사는 그의 저서《신론》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일을 그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인(엡 1:11) 하나님의 작정들의 실현이다.”라고 하면서 “칼빈, 하지, 쉐드 기타 권위 있는 개혁파 교의학자들은 섭리의 요소로 보전과 정치만을 말하였으나 만근(輓近)화란 개혁파 교의학자들은 위에 말한 두가지 요소에 협력을 추가한 섭리의 삼구분법을 말하였는데 이것이 매우 보통한 것이라.”고 하여서 섭리의 삼분설을 지지하였다.(2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5장 제1조, 성경 소요리문답 제11문답,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조 제4조 등도 참고하라.
이와같이 섭리도 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3) 구 원
죄인들의 구원도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누구의 요청이나 필연적 의무에 의하여 죄인들을 구속하시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자기 자신의 자유와 주권으로 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것을 다시 살리리라.”
갈라디아서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로마서 9:11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에베소서 1:5, 9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였다.
L. 벌코프 교수는 그의 《기독교 신학개론》 (신복윤 역)에서 “우리는 구원의 과정을 시작하는 분은 하나님이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의 사역으로 이 역사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에만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22)
박형룡 박사는 “개혁파 신학은 하나님을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조성자로 높인다. 이 신학은 구속의 적용을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은혜로운 의지에 추적하여 돌아간다.”라고 하였다.(23)
L. 뵈트너는 “우리는 물론 하나님이 원하실 때에 죄인을 회개시킬 수 있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것과 같이 영혼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말하였다.(2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0장 제1조 및 성경 소요리문답 제30문답도 참고하라.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성경에 의하여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속하시는 것도 하나님 자신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하는 원리를 확정하여 놓았다.
3. 예정론 인정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예정하신 사람들을 구속하신다고 하는 예정교리를 확정하여 놓았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말씀들이 많이 있다.
(1)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예정대로 땅 위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속하셨다.
마가복음 14: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누가복음 22:22 “인자는 이미 작정된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사도행전 2:23, 3:18, 20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사람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니…”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것을 이와같이 이루셨느니라.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로마서 1:2 “이 복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 1:11, 20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유다서 17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2) 오실 예수님
하나님께서 예정대로 죄인들을 구속하여 주신다.
마태복음 20:23, 24:31, 25:34 “……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를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사도행전 13:48 “이방인들이 듣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로마서 8:29~30, 11:2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로 또한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고린도전서 2:7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에베소서 1:5, 9, 11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베드로전서 1:2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예수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칼빈은 “우리가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이라고 하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시는 것을 말한다. 만민이 동등한 상태로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우기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어떤 사람은 영원한 파멸로 예정되었다. 따라서 사람은 각각 어느 한 편의 종말을 향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혹은 생명으로 혹은 죽음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고 2중예정론을 인정하였다.(25)
벌코프 교수는 “예정은 두가지 부분들 즉 선택과 유기를 포함하고 있는데 다시 말하면 선인과 악인들의 최종적인 목표와 그들의 최종일인 운명의 실현에 있어서 도구가 되는 어떤 근접한 목표에 이르기까지 그들에 대한 예정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였다.(26)
하지 박사는 “칼빈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국가들과 단체들 그리고 각 개인들이 그들에게 일어나는 각종 선과 악에도 절대적으로 예정되었지만 성경은 특별하게 ① 선택된 사람들의 예견된 신앙에 기초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쁘신 뜻에 기초된 ② 은혜와 구원에로 ③ 개인들을 선택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였다.(27)
H. 바빙크 박사는 “이 예정은 사람의 공로나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은혜에 의한 것인데 그것은 믿음 때문이 아니고 믿음을 향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28) 다시 “이 예정의 교리는 유기와 선택의 양자를 포함한다.”고 말하였다.(29)
박형룡 박사는 “예정은 이와같이 모든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 하나님의 작정이다. 그 한 부분인 선택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선택이요 그 다른 부분인 유기는 죄인들의 영벌에 향한 준비이다.”라고 말하였다.(30)
뵈트너 박사는 “예정의 교회는 위대하고 복된 성경진리이고 여러교회들의 근본교리이다.”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불변·거룩·예지적이요 또한 주권적이다.”라고 말하였다.(3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3조에 보면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또는 그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게 예정되고 어떤 자들은 영원한 멸망을 받게 예정되었느니라.” 하였고, 성경 소요리 문답 제7문답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은 그 뜻대로 하신 영원한 경륜이신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되어지는 일을 미리 작정하신 것이라”라고 말하였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속하시는 것은 예정대로 하신다고 하는 교리를 확립하였고, 따라서 유기(遺棄)의 교리도 인정하였던 것이었다.
4. 이신득의·이신득구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以信得義),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以信得救)고 하는 교리를 확정하여 놓았다.
그러나 이 교리도 루터나 칼빈이 창작해 낸 교리가 아니고 성경에 있는 교리를 찾아내서 강조하고 확정한 것뿐이었다.
(1) 믿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8:13과 21:22에서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가라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너희가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15, 2:5, 5:34, 9:23, 10:52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소자여 네 죄사함을 방았느니라.” 혈루증 앓는 여자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누가복음 17:19에서 혼자 돌아온 사마리아인 문둥이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요한복음 5:24, 6:57, 7:37~38, 11:25, 20:27~29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믿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너희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하시니라.”
(2) 믿음에 관한 복음서의 다른 말씀
요한복음 1:12, 3: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3) 믿음에 관한 베드로의 말
사도행전 4:12, 10:43, 15:9, 1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저를 믿는 사람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하게 하사…”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 믿노라.”고 말하였다.
베드로전서 1:9, 21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너희는…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고 말하였다.
(4) 믿음에 관한 바울의 말
사도행전 13:39, 16:31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다 카톨릭 교회에서 제1대 교황이라고 하는 베드로 사도까지도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는 교리를 성경에서 명백히 말하였는데도 그 당시의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성경말씀들을 무시 혹은 경시하여서 사람이 자기들의 공덕 즉 수도, 선행, 고행, 의식을 행하기도 해야 구원 받는다고 하였고 심지어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 가있는 영혼들이 천당으로 옮겨진다고까지 선전하였다.
또 마리아와 기타 과거의 성인들의 남은 공덕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남은 공덕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마리아나 기타 성인들은 공덕이 많아서 그 공덕이 자기를 구원하고도 남기 때문에 공덕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그 남은 공덕을 힘입어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었다.(32)
이러한 모든 교리와 행사에 대하여 루터는 “교황의 사죄의 능력, 죽은자를 위한 면죄권의 효력, 마리아와 성자의 공덕이 그리스도의 공덕을 보충한다는 로마교회의 이론, 헌금으로 사죄의 근거를 삼는 것 등은 신학적 근거가 없다”고 논단하였다.(33)
이것은 몰론 신학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 근거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에서는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 다시 말하여 구원 받는 것은 사람 자신의 공로나 의나 선행이나 고행이나 수도나 의식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의나 남은 공덕으로 말미암지도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라고 하는 교리(Sola Fide)를 확립하여 놓았다.
5. 성도개위제사 (聖徒皆爲祭司)
성도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중보 삼아서) 직접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고 하는 성도개위제사(聖徒皆爲祭司)의 교리를 확립하여 놓았다.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기 때문에(딤전 2:5, 갈 3:20, 히 8:6, 9:15, 12:24) 성도들은 누구나 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서 직접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여서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베드로전서 2:5과 9절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다.”고 말씀하여 성도들은 다 제사장이 되어서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하는 원리를 확증하여 주었다(민 11:29, 욜 2:28~29로 참고).
그런데도 로마 교회에서는 마리아도 교황도 성인들도 중보인 것같이 하여서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과 교통하는 길을 막고 있었다. 《교부들의 신앙》에 보면 “천주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공경할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대도를 간구한다. 천상의 천사들과 성인들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 도와 줄 수 있거든 하물려 그들을 초월하신 성모 마리아의 우리를 위한 기구(祈求)야 말로 그 얼마나 힘이 있는 것이겠는가?
…… 성모 마리아의 기도의 힘은 천상의 모든 천사와 성조와 예언자들보다 훨씬 위대한 것이다. …… 그러므로 성모의 기구는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청허(聽許)하신다.”(34)
또 로마 교회에서는 마리아는 원죄에 오염되지 아니하였다고 하면서 ‘마리아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라는 문구가 카톨릭 관구의 화폐에 새겨져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모든 은혜의 어머니·우리들의 환희의 원천·죄인의 피난처·천국의 문·하나님의 성전·구원의 협동자’라고 최고의 존칭으로 숭배하며 가장 위대한 사도들보다 더 3위 1체의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시켜서 마리아를 ‘아버지 하나님의 딸, 아들 하나님의 어머니, 성령 하나님의 아내’라고 부르기까지 하고 있으니 로마 교회에선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같이 구세주로 추앙하는 것같이 느끼게 한다.(35)
다시 로마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는 신자에게 직접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예전(禮典) 및 제단의 중보를 거쳐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하였다.(3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8:19~20에 보면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14:13~14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두세 사람이라도 합하여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께서 우리 중에 계셔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마리아나 교황이나 교회나 성인들을 중보 삼으라든가 개재시키라는 말씀은 전혀 없다.
그래서 종교개혁에서는 아무것도 무엇도 경유하거나 개재시키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중보 삼아서 누구든지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또 그의 이름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는 것을 선포하여서 성도개위제사의 원리를 확정하여 놓았다.
6. 교회관 정립
교회에 관한 성경 말씀들을 찾아본다.
마태복음 16:18에 보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사도행전 20:28에서는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였느니라.”
고린도전서 1:2에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에베소서 1:23, 5: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골로새서 1:18, 24에 “그는 모인 교회의 머리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 카톨릭 교회의 교회관
예수께서 마태복음 16:16~19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서 “이는 베드로가 예수의 천주성을 공인함으로 이를 기특히 여겨 그 보상으로 장래 교회의 최고 권위를 부여하기로 약속하신 것이다”라고 한다.(37)
“너는 반석이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신 말씀은 베드로 종도(宗徒)로 교회의 기초를 삼으시겠다는 뜻이 명확하다. 그리고 “교회의 기초는 곧 교회를 다스리는 권위의 수령이다.”라고 하여서(38) 예수께서는 ‘베드로 개인’ ‘베드로 인격’에다가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에 틀림이 없다고 하였다.(39)
그리고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매면… 네가 땅에서 풀면…”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신앙의 성벽이요 지상의 예루살렘인 내교회의 최고권을 네게 주니 너와 네 후속자들을 세상 끝날까지 나를 대리하여 권위를 행사하라”는 뜻이라고 주장하였다.(40)
또 교회에는 천상의 대주재 천주와 천주의 권을 대행하는 유형한 수령이 있다. 가견적 수령이 있어야 한다. 교회에는 예수님께로부터 임명을 받은 권위의 수령이 있다. 성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이 곧 그다”라고 하여서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이 그리스도의 대행자요 교회의 유형적 수령이라고 하였다.(41) 다시 “천주 교회는 성신의 기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도 하였다.
(2) 개신 교회의 교회관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주장에 대하여 개신 교회에서는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하신 것은 베드로가 신앙고백한 이 반석 같은 신앙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말씀이지 결단코 베드로 개인이나 그 인격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H. 바빙크 박사는 참 적절하게 “인물이나 처소의 계승보다도 교리의 계승이 참 교회의 표지다”라고 하였다.(42) 이 ‘반석’·’열쇠’에 관한 정당한 해석은 칼빈의 《공관복음 주석》(한역판) PP. 97~104, 박윤선 《공관복음 주석》(한역판) Ⅳ.PP. 184~192 등을 참고하라.
만일 예수께서 베드로 개인이나 그 인격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하면 그 교회는 사탄의 교회가 되었을 것이요, 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바로 직후에 같은 마태복음 16;21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을 때에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간(諫)하다가 예수님께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크게 책망을 받았고 또 예수님께서 악한들에게 잡히셔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또부인하고, 다시 저주하고 맹세하고 부인하였으니(마 26:69~74) 신앙을 문제로 하지 아니하고 베드로 개인의 인격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하면 그 교회는 사탄의 교회가 되었을 것이고 또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또 천주 교회에서는 교황무오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소위 제 일대 교황이라고 하는 베드로가 무오하지 아니하고 이와같이 크게 유오하였는데 어찌 그 계승자라고 하는 교황들이 무오할 수가 있겠는가? 다시 마태복음 16:19에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년… 풀면” 하셨으나 마태복음 18:18에서는 “너희가… 매면… 풀면…”이라고 모든 사도들에게 매 푸는 권세를 주셨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대로 교회를 정의하여서 “교회를 성도들의 집단, 즉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성화되고 그를 머리로 하여 그에게 연합된 자들의 집단이라”고 보았다.(43)
다시 말하면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백성, 자녀들의 단체이고(출 19:5~6, 고후 6:17~18, 엡 2:19) 또 성자 하나님의 몸이고 신부이며 (고전 12:27, 엡 1:22~23, 골 2:18) 또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는 단체라고 하였다(골 2:2, 19, 빌 2:1).
교회의 표지(標識) 다시 말해서 참된 교회를 알아볼 수 있는 표준으로서는 말씀의 진정한 전파·성례의 정당한 거행·권징의 신실한 시행을 열거하였고(44) 종류로서는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전투교회와 승리교회를 구분하게 되었다.(45)
그리고 교회의 제도·조직도 성경대로 하여서 교황·추기경·대주교·주교·신부 등의 직분을 폐지하고 목사·장로·집사들의 직분을 두었고 교회의 운영에 있어서도 성경원리를 따르게 하였다.
7. 성례관 정립
(1) 천주교
천주교회에서는 견진(堅振), 고해(告解), 신품(神品), 혼배(婚配), 종부(終傅), 성세(聖洗), 성체(聖體) 7성사를 예수께서 제정 하셨다고 하면서 다 성례로 인정하였으나(46) 종교개혁자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성례로 인정하고 다른 다섯 가지는 성례라고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천주교의 성례관을 보면 그 7성례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과 같이 ‘영적 생활’과 ‘자연적 생활’ 사이에 어떤 유사가 있음을 지적하여서 세례는 출생에, 견진은 신체의 성장에, 성체는 영양에, 고해는 치료에, 종부는 죄의 최종 잔재를 파멸하고 최종 영광을 준비시키고 다시 사회에 관한 완성을 위하여 신품과 혼배를 첨가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7성사는 사람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적 생을 일곱 은혜의 방편에 의해 7종 은혜에 둘러싸여 복 줌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47)
(2) 개신교
개신교에서는 세례와 성만찬을 성례로 인정하는데 그 본질에 관하여서는 몇가지 의견들이 있다.
고대 교부들은 “성례는 무형한 은혜의 감각할 수 있는 표호라”하였고,(48) 어거스틴은 성례는 “유형한 말씀 혹은 내면적인 영적 은혜의 외면적이며 유형한 표호라”하였다. 또 그는 “성례란 거룩한 것의 가견적 표현이요 불가견적 은혜의 가견적 표현이다.” “원래 은혜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성례전은 눈에 보이는 은헤이다.”라고 말하였다.(49) “성례전이란 외형적인 표시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이며 또 한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건의 표현이기도 하다.”라고 말하였다.(50)
벌코프는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규례이니 감각할 수 있는 표호들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언약의 혜택들이 신자들에게 표시되고 인쳐지고 적용되며 그들의 하나님께 향한 신앙과 충성을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51)
이상의 모든 정의를 요약하면 “성례란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 외면적·유형적·가견적·감각적 표호로 내면적·무형적·불가견적 은혜를 표시하고 증거하며 인치는 것이고, 또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과 감사와 경건과 충성을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가 있다.
좀더 간단히 말하면 “성례는 주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불가견적 은혜를 가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성도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충성을 다짐하는 예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성례는 은혜의 방편이라고 인정하였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방편이고 성도들은 은혜 받는 방편이라는 말이다.
(3) 세례와 성찬의 의의
이제 구체적으로 세례와 성찬의 의의를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먼저, 세례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세 례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성인이나 유아에게 있어서 죄 사하심을 받는 데 절대로 필요하다고 한다. 천주교는 유아에게든 성인에게든 누구에게든지 세례의 절대필요를 선언한다.(52) “아담의 원죄로 전 인류가 원죄의 오염을 받은바 유아이든 성인이든 이 원죄를 면하려면 반드시 성세를 받아야 한다.”(53) “대인 영세에는 그 원죄뿐만 아니라 본죄도 사하여진다.”(54) “성세는 영혼을 성환한다.” “성세로 말미암아 천주의 형상이 우리의 영혼에 인각된다.” “성세는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계승자가 되게 하며 그리스도와의 공동사가 되게 한다”라고 하였다.(55)
이와같이 천주교에서는 세례는 사죄에 절대필요하다고 하나 개신교에서는 세례는 벌써 성령의 사역으로 믿고 죄 씻고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중생하고 죄 씻음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나타내고 확신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56) 세례를 받음으로 믿음과 죄씻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벌써 이렇게 영적으로 믿음으로 죄 씻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그 신령한 사실을 확증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가복음 16:16과 사도행전 8;12~13에 보면 “믿고 세례를 받는다”는 말씀이 있는데 믿음이 먼저이고 세례가 다음인 것을 표시한다.(57)
그런고로 박형룡 박사는 “이 세례는 중생, 신앙, 회심, 칭의를 예상하는 것인즉 로마 교회의 가르치는 바와 같이 이것들이 세례에 의하여 조성되지 않음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소요리문답 9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8장 1조도 참고하라.
이와같이 개신교에서는 세례가 구원을 얻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에 실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주께서 명령하셨고 또 구원을 확인·강화하는 은혜의 방편으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2) 성 찬
천주교에서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6;26~28에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이것이 내몸이니라… 또 잔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이것은…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축사하면 그 떡이 곧 예수님의 살이 되고 그 포도즙이 곧 예수님의 피가 된다고 하는 화체설(化體說)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평신도는 떡과 포도즙을 받는 면주양형(麵酒兩形)의 제정을 고쳐서 교회 묵허하에 점차 일형만으로 행하다가 1414년 콘스탄틴 공의회에서 그 법령을 개정하여 평신도는 다만 면형(麵形)만으로 성체를 영(領)하게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58)
그리하여서 천주교에서는 떡과 포도즙을 평신도들이 직접 받지 못하고 떡만 받는데 그것도 손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입으로 받아서 씹지 아니하고 그냥 삼킨다고 한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이 화체설과 떡만 받는 것을 반대하여서 예수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대로 떡과 포도즙을 다 직접 받아 먹는 예식으로 고쳤다.
성찬의 근본성질에 관하여서 루터는 공재설을 취하였고 쯔빙글리는 기념설(혹은 상징설)을 취하였고 칼빈은 영적 임재설을 취하였다. 칼빈이 영적으로 임재한다고 한 것은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은 아니고 또 거기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물질적으로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찬은 단순히 기념하는 것만도 아니며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살을 찢어 주시고 피를 흘려 주신 그 사실이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은혜와 감동이 되어서 성도들에게 임한다는 뜻으로 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비록 성찬에 있지 않고 장소적으로 하늘에만 임재할지라도 신자가 요품들(떡과 포도즙)을 받을 때에 생명을 주는 감화력을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59)
박형룡 박사는 “표호들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임재는 오직 영적으로서, 입으로 먹고 마실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만 그리 될 것이다.”고 말하였다.(60)
성찬의 본질에 관하여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9장과 성경 소요리문답 제 96문답을 다시 참고하라.
결국 개혁 교회에서는 성찬은 주님의 분부대로 주의 살과 피를 기념하여 행하는 것이나 이렇게 성찬식을 거행할 때에는 예수님의 살을 찢으시고 피 흘려 주신 그 은혜가 우리에게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임하는 것이라는 것이고, 그런고로 이 성찬을 받는 성도들은 이 은혜를 감사하면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8. 구원 받은 성도의 자세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선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은 죄인들이 성경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고 자기나 어떤 사람의 선행이나 공덕이나 고행이나 성례나 의식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원리를 확정하여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은혜요 복음인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일부라도 자기의 선행이나 공덕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은 당연한 보상이지 결단코 은혜라든가 복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은혜는 값 없이 거저 주는 것이고 복음은 공로 없이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한병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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