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목사-개혁주의

개혁주의의 신관

천국생활 2010. 3. 18. 12:12

성경본문 : 출애굽기 3:13~15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3~14)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나를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나를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개혁주의라고 하면 넓은 의미에서는 종교개혁 사상을 말하는 것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칼빈주의 사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자존자이신 하나님

 

스스로 계신분, 한문 용어로 ‘자존자’시라고 합니다.  있다고 하는 모든 것이 다 피조물입니다마는 하나님만은 피조물이 아니시고 스스로 계신 자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은 다 피조물이요 피조물이 아닌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은 자기 창조자”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만물이 다 자기가 자기를 창조한 이러한 존재는 없습니다마는 하나님만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자기 창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13 하반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에게 “백성들이 나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무엇이라고 대답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인데 이것은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표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그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2. 영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혈육이 아니시고 물체가 아니시고 영체로 계십니다.  요한복음 4:24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좀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약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보여 주시기를 원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내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시면서 그 얼굴과 영광을 보여 주지 아니히시고 그 후광만 보여 주셨습니다(출 33:18하).
또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이렇게 부탁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는데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특별히 보여 주시지는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간혹 하나님을 한 번 보았으면 하고 원하는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꿈에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그 향을 보여 주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육안의 성능이 신령하신 하나님의 영체를 볼 수가 없고, 또 우리가 이 육안을 가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그 형상이나 영광을 보았다가는 우리의 육안과 육체는 파괴돼 버리고 말 것입니다.
또 우리가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참 믿음이 되기 때문에 참 믿음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그 성체(聖體)를 보여 주시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상을 만들지 아니하도록 하시기 위하여서 보여 주시지 않습니다.

 

3.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삼위일체는 성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우리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 참 어려운 교리입니다.  본체는 하나이시나 위는 세 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인격은 셋이나 본체는 하나라고 하니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나 이것은 성경이 명시하는 교리이기 때문에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분명히 이 교리를 믿습니다.
교리의 핵심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하시면서 성부도 하나님이라 하고 성자도 하나님이라고 하고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하니 하나님이 세 분이나 계신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하시니 하나님은 삼위일체요, 일체삼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작이 없고 끝도 없습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 합니다.  하나님은 시간적으로 안계신 때가 없습니다.  시간적으로 무시부재(無時不在) 하십니다.  성경에는 영원하신 하나님에게 경배하고 그를 찬양하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시편 90:2, 93:2에 보면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리이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느헤미야 9:5에 보면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 또 다니엘 6:26에서는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 히브리서 13:8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영원불변, 다함이 없고 그칠 줄을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5.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공간적으로 안계신 곳이 없습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예레미야 23:23 이하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호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시편 139:7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암 9:1~4참고).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은 그 형 에서의 노를 피하여서 밧단 아람으로 도망을 갔었는데 집도 없는 광야에서 해는 지고 어두워졌으니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외로왔겠습니까? 한 번도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본 일이 없는 어린 야곱이 해는 지고 피곤하니 할 수 없어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습니다.  아마 야곱은 그 얼굴이 눈물로 얼룩졌을 것입니다.  한 번도 이렇게 고생해 본 일이 없는 야곱이 무인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누었으니 아마 부모 생각도 나고 고향도 그리워서 울면서 잠을 잤을 것입니다.  그런데 꿈에 보니 땅에서 하늘에까지 닿은 사다리가 나타나고 거기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그 위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비 이삭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와 함께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이끌어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이 말씀을 듣고 꿈이 깨어서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그 베개했던 돌을 취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벧엘 제단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무소부재하신 분임을 확실히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전부 가능하시고 완전 가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사건적으로 무소불능하십니다.  전능하십니다.  성경이 이것을 증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8:14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직접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이것이 능치 못한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37에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하였습니다.

 

7.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오로지 자기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하십니다.  이렇게 하셔도 잘못 하는 것이 없으십니다.  시행착오가 없으십니다.  오판을 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고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십니다(욥 34:10참고).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자문기관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고문을 받으신다는 말을 우리는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8. 공의·자비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나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죄는 반드시 공의대로 심판하시지마는 자기 백성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자기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기 백성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십자가에서 최종적으로 심판하여 주셨고, 또 우리들에게 최종적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최종적 표현이고 또 하나님의 사랑의 최종적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저는(하나님) 정의와 공의로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시 33:5).
그러므로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시 116:5).

 

9. 초월·내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초월하여서 영화롭고 거룩하게 계시지마는 동시에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 함께 하여 주시고 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가까이 계시며 떠나 계시고 안에 계시며 초월하시고 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시고 높으신 것만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을 초절주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또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가까이 계시고 안에 계시는 것만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근절주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에서는 이 두 가지의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은 초월하시나 동시에 내재하시는 분이시라고 이렇게 알고 믿습니다.  이것을 초월주의라고 합니다.

 

10. 창조·섭리·구속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기만 하고 그 다음에는 자연법칙에 맡겨 두신다고 하는 사람들이 약간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신학이라고 합니다마는 개혁주의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지으신 만물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다스리기까지 하신다고 말합니다.
유명한 칼빈주의자 찰스 하지 박사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서 지배하시기에는 너무 크다든가 하나님께서 인식하시기에는 너무 작다고 하는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한 곳에 계신 것과 같이 모든 곳에 계시며 한 일에 유의히시는 것과 같이 모든 일에 유의하신다.  하나님은 풀잎 하나하나속에 계시며 북두칠성의 운행을 주관하시며 별들의 대군을 통수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6).
그리고 자기 백성은 예정대로 구속하십니다.  그때 그때의 기분대로 하지 아니하시고 영원하신 예정으로 구속 사역을 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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