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목사-구약의 예수그리스도

역대기에 숨어있는 그리스도

천국생활 2010. 2. 17. 15:18

역대기에는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려고 할 때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러 민족 중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야곱의 자손이 정통이라는 것을 말하고 다시 유대 나라의 역사를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 관하여서는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서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역대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주고 있습니다.

 

1. 모리아 산
모리아 산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1) 순종의 산
모리아 산은 창세기 22장에서 보듯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제단을 쌓았던 산이었습니다. 칼로 아이를 찌르려고 할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육성으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수풀에 걸려 있는 수양을 보내주셔서 그 양으로 이삭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절대 순종하여 충성을 바쳤던 산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절대 순종, 절대 충성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그 아들을 제물로 바쳐서 순종하고 충성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갈보리 산에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5장 8, 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을 배워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며”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또, 히브리서 3장 6절에서는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다”고 예수의 충성을 증거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순종한다는 것은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들든지 안 들든지, 그 말씀이 나에게 이해가 가든지 안 가든지 오직 그 말씀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예수님도 이렇게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충성한다는 것은 모든 소유와 모든 재능을 다 바치고 모든 방법, 모든 가능성을 다 기울여서 정성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도 예수님도 이렇게 충성하였습니다.
(2)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사무엘하 24장과 역대상 21장에는 다윗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조사를 한 결과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온 백성 중에 온역이 돌아서 7만 명이라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아라우나(또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가자 그는 다윗에게 소와 타작하는 농기구 등을 마음대로 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결단코 내 하나님 여호와께 값없는 제사는 드리지 아니하겠다”고 하면서 돈을 주고 그 땅과 소를 사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다윗의 제사를 받으시고 온역을 중지시키셨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제사를 드렸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여기가 곧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다윗이 값없는 제사를 안 드리겠다고 하면서 값을 주고 사서 제사드린 것과 같이 예수님도 막대한 희생으로 제사하셨습니다. 다윗은 타작마당의 제단에서 돈 주고 제물을 사서 제사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희생하셔서 제사하셨습니다. 다윗은 돈을 희생 하였으나 예수님은 온통 자기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마는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시간을 희생하든지 노력을 희생하든지 재물을 희생하든지 생명을 희생하든지 무엇인가 희생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희생이 작으면 사랑도 작고 희생이 크면 사랑도 큽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버려서 가장 큰 희생을 하여 주셨으니 그 분은 가장 큰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우리의 대속주이십니다.
(3) 여호와의 성전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곳도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역대하 3장 1절에 보면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성전 건설하기를 시작하였으니 그 곳은…… 오르난의 타락마당에 다윗이 정한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이와 같이 역사적인 땅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드리던 곳, 다윗이 제사드리던 곳에 솔로몬도 제사드리기 위하여 영광스러운 성전을 여기에 건설하였습니다.

2. 솔로몬이 지은 성전
솔로몬이 지은 성전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역대하 6장 2절과 7장 1절에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은 여호와께서 영광으로 임재하시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은 여호와께서 이렇게 영광으로 임재하시는데, 그 임하시는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과 만나시기 위하여서였습니다.
여러분,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이고 또 지성소의 중심은 속죄소입니다. 이렇게 성전의 중심에 속죄소를 두신 목적은 여호와께서 여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만나고자 하시는 뜻에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재하셔서 자기의 백성들을 만나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전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만나는 이 역할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행하시는 중보의 역할과 같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선지자 미가야
우리는 미가야 선지의 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같은 말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역대하 18장 13절에서 미가야 선지는 “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요한복음 12장 50절에 보면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고 말씀하셨듯이 미가야의 말은 예수님의 이 말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미가야는 선지자의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은 대로만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16절에서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14장 24절에서는 “너희의 듣는 말은 내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미가야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말한다”고 한 것과 같이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 아버지의 말씀만을 대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합니다.
이상에서 역대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리함의 모리아 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산을 연상케 하여 주며, 솔로몬 성전의 속죄소는 중보자되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미가야 선지의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만 대언하시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부분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대속의 주님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로,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로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