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목사--예수님의 교회관외

예수 그리스도의 중생관

천국생활 2009. 3. 9. 11:09

성경…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 3:3~8)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11:19~20)

 

목표…신령한 생명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시자!

 


Ⅰ 서   론

 

  이 시간에 저는 예수그리스도의 신학 여덟 번째로 <예수그리스도의 중생관>에 관하여 중생의 의미와 내용과 결과등을 강론할려고 합니다.

 

첫째로…중생이라는 용어의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생이라는 말을 나라에 따라서 <거듭난다> · <새로난다> · <다시난다>등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한문으로 말하니까<중생 ·신생 · 재생>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경에서는 <거듭난다> 또는 <중생이라>는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 3:3과 7에 보면 예수께서 <거듭난다>는 말을 사용하셨고 벧전 1:3과 23에서도 <거듭난다>고 하였으며 디도 3:5에서는 <중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거듭난다> · <중생한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 보십시다. 박형룡 박사는 <중생은…죄인에게 새로운 영적생명을 부여하는…신적행위…>이라 하였고(박형룡 박사 구원론 P.156) 또 다른 분은 <중생이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적생명을 다시 살리시는 성령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하문호 목사, 구원론 P.124)


  그러나 이 말이 좀 어려워서 그 뜻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좀 쉽게 말씀드리면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을 구원하고 살리기 위하여 그 사람에게 새생명 · 신령한 생명을 넣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의 길을 걷도록 하시는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중생이란 죽었던 영혼을 다시 살리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새생명 · 신령한 생명을 넣어주시는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새 생명을 받아서 중생하니까 그 사람은 마음을 돌이켜서 회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중생은 어떠한 것인가? 그 성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 저…중생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물론 성부 · 성자께서는 중생에 전연 관계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마는 그러나 성경에 중생은 성령의 역사라고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 3:5~8까지에서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난다>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은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있습니다.

 

    (2) 다음에…중생은 성령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성령은 그 사람의 요청이나 협력을 얻어서 중생시키시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일방적으로 자기의 뜻대로 그 사람에게 새생명 · 신령한 생명을 주어서그 사람을 중생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성령의 일방적 역사요. 주권적 역사입니다.
  이와같이 중생은 사람이 원하여서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원하여서 성령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그다음에…중생은 성령의 불가항적 은혜입니다.

 

  성령이 자기의 뜻대로 · 자기의 주권으로 새생명 · 신령한 생명을 주셔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데 사람이 이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거나 항거할 수는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령이 우리를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도 우리가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박형룡박사는 <중생은 성령의 전능하신 공작이고 새로운 창조의 역사이며 영원한 선택이고 확실한 약속의 실현이기 때문에 사람이 성령의 중생역사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박형룡박사 구원론 P.l163)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중생역사는 불가항적 은혜라고 말합니다.

 

    (4) 또 그다음에…중생은 성령이 우리의 잠재의식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중생 즉 새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는 사람의 경험이나 감각으로 알 수있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알 수 없게 잠재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요한 3:8에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은 사람이 지각할 수 없는 신비로운 역사이기 때문에 사람이 그 역사를 감각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으신 여러분!여러분이 중생하셨습니까? 못하셨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으신 여러분들은 벌써 다 중생하셨습니다. 신령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중생하지 아니하고 예수 믿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여러분이 중생하신 것이 틀림이 없는데 그러면 신령한 생명이 여러분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아셨습니까? 느끼셨습니까? 모르셨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성령이 신비하게 무감각적으로 우리 심령에 역사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또 다시…중생은 성령의 단회적 역사입니다.

 

  중생은 한번나면 됐지 여러번 나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생명도 한번 나지 여러번 나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신령한 생명도 한번나지 여러번 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전에 어떤 집회에 갔더니 거기에서 어떤 분이<하나님이시여 이번집회에서도 우리가 더 거듭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집회마다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한번 거듭나면 그 중생은 한평생동안 그 사람과 함께 변하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가는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중생은 취소되지 않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바와같이 중생은 사람이 거부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입니다마는 동시에 중생은 성령도 취소하지 아니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신령한 생명을 어떠한 사람에게 넣어서 그 사람을 중생시켰다가 그 중생을 취소하거나 무효화하는 법은 절대로 없으십니다.
  이와같이 중생은 성령도 취소하거나 무효화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이미 중생한 우리들은 절대로 안심하여도 좋습니다.

 

 

셋째로…이러한 중생은 왜 필요한가? 그 필요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류의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어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았고 에덴동산을 쫓겨나는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죽음을 선고하신것은 그 육체의 죽음뿐만 아니고 영혼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육체도 죽었고 영혼도 죽었댔습니다.


  여러분! 육신이 죽는다는 것은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고 영혼이 죽는다는 것은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범죄한 다음에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었으니 그 영혼은 영원한 생명 · 신령한 생명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영혼이 영원하고 신령한 생명을 상실하여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자기의 소원과 자기의 노력으로서는 아무것도 신령한 일을 할 수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도 자기의 힘으로서는 전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무능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자기가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과거에 잃어버렸던 영원한 생명 · 신령한 생명을 다시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령한 생명 · 영원한 생명을 다시 넣어주시는 것 이것이 곧 다시 사는 것 · 새로나는 것 · 중생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중생하지 아니하면 사람은 예수 믿을 수가 없고 구원받을 수도없습니다.
  요한3:3과 5에 보면 예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중생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사람이 거듭나야 믿을 수가 있고 구원을 받을 수가 있고 하늘나라에 들어 갈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와같이 거듭나는 것은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데 전제조건으로 꼭 필요한 것입니다.

 

넷째로…사람이 중생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생은 성령께서 영원한 생명 · 신령한 생명을 주시는 역사이기 때문에 사람이 중생하여서 신령한 생명을 받으면 그 심령이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에스겔11:19과 36:26에 보면 <내가 그들…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또 새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줄 것이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새 신을 받고 새영을 받으면 굳은 마음은 제하여지고 부드러운 마음이 주어지는데 이것이 곧 중생의 결과로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둡던 마음이 밝아지고 완고하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신앙을 거부하던 마음이 신앙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회개하고 신앙하니까 거듭나고 중생하는 것이 아니고 중생하였으니까 회개하고 신앙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로 거듭났으니까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이지 회개하고 예수 믿으니까 중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먼저이고 회개와 신앙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결코 회개와 신앙의 먼저가고 중생이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꼭 한가지 혼동하지 말고 구분하여 기억하여 주실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생과 성화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 중생이라고하면 불정직하던 사람이 정직하게 되고 술 많이 먹던 사람이 술 적게 먹게되고 방탕하던 사람이 얌전하게 되고 이렇게 그 행동이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생은 아직 심령의 변화이지 행동의 변화까지는 가지 아니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지금은 중생과 성화는 다 같은 성령의 역사이기는 하나 중생은 심령의 변화이고 성화는 행동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구분하여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성화에 관하여서는 다음에 또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습니다.


 

Ⅲ 결   론

 

  이상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중생은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새생명 · 영원한 생명 · 신령한 생명을 넣어주시는 역사인데 사람이 이렇게 중생하면 그 마음이 변화되어서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회개와 신앙보다 먼저 가는 것이고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령한 생명으로 우리를 중생하게 하여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1994. 1. 16 부전교회에서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