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목사--예수님의 교회관외

예수 그리스도의 예정관

천국생활 2009. 3. 7. 15:13

 

 

성경…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4:16~19)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태24:31)

 

목표…주님같이 우리도 예정되어있는 것을 기억하시자!


Ⅰ 서   론

 

  그동안 <예수그리스도의 신학>을 여러번 말씀드려왔는데 오늘은 이제<예수그리스도의 예정관>이라는 제목으로 예수께서는 예정을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정관 또는 예정론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자기의 주권으로 사람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행4:28, 로마8:29~30, 고전2:7, 엡1:5, 11등참고)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과 만사를 다 섭리하실 때에 아무 계획도 없고 작정도 없이 그저 그때 그때에 기분나는 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미리 다 계획을 세우고 작정을 하여 놓으신 다음에 이것을 실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만사만물을 다 작정하여놓고 하시는 것을 일반적 작정이라고하고 사람들의 구원을 미리 작정하여 놓고 하시는 것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잘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일을 미리 작정하여 놓고 하시는 것은 일반적 작정이라 하고 사람들의 구원을 미리 작정하여 놓고 하시는 것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뜻에서 예수께서는 이 예정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는 미리 작정하였다고 하는 예정이라는 말보다는 많은 사람중에서 골라냈다 뽑아냈다고 하는선택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선택하는 것은 예정할 것을 전재로 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하였으나 예정은 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법은 없습니다. 또 예정은 하였으나 선택은 하지 않았다. 이러한 법도 없습니다. 선택하였으면 반드시 예정하는 것이고 예정되었으면 반드시 선택된 것이라고 말할수가 있습니다. 이와같이 선택과 예정이라는 말이 말은 다르지마는 두 단어는 원인과 결과, 결과와 원인의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단어는 거반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선생도 예정론을 말할 때에선택의 교리를 역설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께서 선택을 말씀하신 것은 곧 예정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고자 합니다.


Ⅱ 본   론

 

첫째로…예수님의 전생애가 다 예정되어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었고 또 예수님 자신도 말씀하셨습니다.

 

    (1) 먼   저…예수께서 나신 것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사야7:14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예언대로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다고 마태1:22~2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아담 때부터 내려오는 원죄가 계승되지 않았고 또 자기 스스로도 죄를 짓지 않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완전히 무죄하신 분이시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죄가 있는 분이시었다고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속주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죄인을 구속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도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미가5:2에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나올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는데 예수님은이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마2:5~5참고)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것도 예언을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마태2:23에 보면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의 예언대로 나사렛사람이라고 칭하심을 받기위하여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다음에…예수께서 병을 고치시고 복음을 전하신 것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마태8:16~17에 보면 예수께서도 자기에게 나아오는 병자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는데 이것은 이사야53:4에서 <그는 실로 우리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거늘(마8:17에서는…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루신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4:16~21에 보면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을 펴서 이사야11:1~2을 읽으셨는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포로되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신 다음에 예수께서는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너희 앞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이었습니다.

 

    (3) 그다음에…예수께서 여러 가지로 고난당하신 것도 다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마태21:4~5에서 예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수님이 입성하신 것은 스가랴9:9에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보라 네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예언하신 것을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마태26:47이하에 보면 가룟유다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나를 잡는 자들에게 대항하면…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예수께서는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대항하지 아니하고 순순히 잡히우셨습니다. 그래서 마태26:56에서 또 예수께서는 내가 이렇게 잡히우는 것은 <다 선지자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시면서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하여 잡히우셨습니다.

 마가14:21과 누가22:22에 보면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 자신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고 또 예정되어 있는대로 죽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까지 다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또 요한 19:24에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다음에 병정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라고 한 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4) 한가지더…예수께서 부활하시는 것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누가24:41~47에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예수께서 자기가 부활한 것도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둘째로…예수께서는 성도들의 구원도 예정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선택과 예정은 원인과 결과의 필연적 관계를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택은 곧 예정이라고 이러한 뜻으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선택과 예정을 합하여서 선정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먼  저…요한15:16에 보면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구주로 택정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로 택정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그렇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택정하여 주지 아니하시는데 예수믿고 구원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또주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은 전연 조건없이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주의에서는 <무조건선택>이라고 하는 유명한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선행이나 수도나 고행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무조건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은혜로 택하시고 예정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에베소1:4~5에 보면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이 기쁘신 뜻으로(주권으로)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2)다음에…마태22:14에 보면 예수께서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입은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4,000만 국민들 중에서 혹 깊은 산중에 숨어 살고 있는 사람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받았고 교회나오라고 초청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대개 전도와 초청을 받았는데도 택하심을 받고 참으로 믿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렇게  될 것을 아시고 예수께서는 <청함을 받은사람은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적은데 이 적은 수 가운데 우리도 들어있으니 이것은 참으로 기쁘고 또 감사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3) 그다음에…택하신 자(예정된 자)들은 세상에서 어떠한 형편을 당하게 되는가를 생각하여 보십시다.

 

 마태24:24에 보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선택 예정된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서 완전히 타락하여 버리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미혹하는 사람들은 기묘한 방법으로 택정된 사람들도 미혹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장래에도 이 미혹에 들지 아니하도록 절대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요한 15:19에서 예수께서는 <너희가…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속하여서 세상풍습과 세상원리대로 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택하심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교훈대로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성도들이 대단히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마는 장 차는 더 심하게 미움을 받을는지 모릅니다.
  또 마태24:22, 마가13:20에 보면 예수께서는 세상에 성도들이 지금 말씀드린 바와같이 미움을 받고 큰 환난을 당하게 되지마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을 감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 · 환난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 이것은 참으로 참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고난의 날들을 단축하여서 택정된 사람들이 이 고난을 이기도록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4)마지막으로…마태24:30~31에 보면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큰 나팔소리 울려가면서 큰 영광중에 재림하실 때에 천사들을 보내셔서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끝에서 저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와같이 택하신 자 · 예정된 자 · 성도들을 모으러 오십니다.찾아오십니다. 이때에 택하시고 예정된 성도들은 다 나가서 영광 중에 오시는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161장에 보면 <대속하신 구주께서 구름타고 오실 때 천만성도함께 모여 주의 뒤를 따르리, 고대하던 예수께서 영화롭게 오실 때 고난받던 모든 성도 구주를 환영하겠네>라고 구주 환영하는 영광스러운 광경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Ⅲ 결   론

 

  이상에서 말씀드린 바와같이 예수께서는 자기의 전생애와 우리의 구원은다 예정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예정의 교리는 사람의 교리가 아니고 성경의 교리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교리입니다. 특별히 공로없고 의없고 선도없는 우리들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여 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우리는 한없는 감격과 감사를 드립니다.

[1993. 9. 19 부전교회에서 강론]